'그냥'은 안 된다
단어도 나이가 들면 색이 바래고 뜻이 바뀌곤 한다. 나이가 들어 시들고 초췌해지는 단어, 세련되고 깊은 풍미를 더하며 진화하는 단어가 있다. 또 국적을 바꿔 엉뚱한 이미지로 재탄생하는 단어들도 제법 많다.
중국 여행을 할 때 일이다. ‘熱狗(열구;뜨거운 개)’라는 간판을 보고 유심히 살펴봤더니 핫도그 판매점이었다. Hot dog를 직역한 표현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왜 음차를 하지 않고 굳이 의미를 딴 번역을 했을까 의아해 했는데 소시지의 본고향을 여행하며 의문이 해소됐다.
핫도그의 고향은 독일이다. 소시지의 기원이지이고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시지를 생산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소시지와 햄, 빵과 감자. 이 네 가지 식재료를 빼고는 독일 음식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핫도그는 소시지를 빵에 넣어 익힌 즉석음식이다.
어느 독일인이 1600년 경에 닥스훈트(dachshund ; 몸통이 길고 사지가 짧은 독일 개)의 모양으로 소시지 빵을 만들어 히트를 쳤다. 그때만 해도 프랑크푸르터 소시지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름이 ‘핫도그’로 바뀐다. 개 모양으로 생긴 간편 빵을 팔던 사람이 “따끈따끈할 때 드세요(Hot)”라고 외친 것이 동기가 돼 ‘Hot dog’로 불리게 됐다. - 박찬영·문수민, <독일의 지리와 음식(네이버 지식백과)> 중 일부 재정리
핫도그는 그러니까 소시지 즉석 빵의 미국식 이름이고 우리나라에서 대중화된 막대기 모양의 핫도그는 ‘콘도그(corn dog)’라 부르는 게 맞다는 주장도 있다. 막대에 끼운 소시지에 밀가루 반죽을 입혀 튀긴 것이 옥수수 모양과 같기 때문이다.
핫도그도, 콘도그도, 뜨거운 개 ‘열구’도 소시지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소시지를 소시지로 팔지 않고 뭔가 다르게 만들어 팔면서 새로운 이름이 태동한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개’는 없고 ‘개 모양’만 있을 뿐인데, ‘도그’가 끝까지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농촌 산업계에 불고 있는 융복합 산업을 6차 산업이라 부른다. 이 용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단어’라고 비판했다. 1차×2차×3차 산업군의 융복합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힐 수 있다는 이론을 열심히 설명해도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참 많았다. 얼마 뒤 어려운 단어를 쉽게 푼다며 ‘농촌 융복합 산업’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6차 산업’이 더 쉽고 명쾌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종종 나타났다. 변덕이 다반사이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게 대개 그렇다.
6차 산업을 최초로 개념화한 사람은 일본 도쿄대 교수였던 이마무라 나라오미 박사로 알려져 있다. 그의 주장 핵심은 “농사지은 생산물을 그냥 팔지 말라, 뭔가 하나라도 바꿔 팔라”였다. 옥수수를 그냥 팔지 말고 쪄서 팔든, 구워서 팔든, (막대기에) 끼워서 팔든, 뭐라도 바꿔야 많이 벌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17세기, 독일에서 소시지를 팔던 사람들도 그랬다. 그냥 소시지를 팔기보다 빵에 끼워서 판 이가 등장했고, 그로부터 한세월 지난 뒤에는 그냥 빵이 아니라 ‘개 모양의 빵’에 끼워 파는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 뭔가 바뀌려면 세월이 필요하다. 또,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도무지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유통 시장에서 통용되는 지론도 ‘그냥 팔지 말라’이다. 제 아무리 좋은 상품도 ‘그냥’ 내놓으면 안 팔린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사람도 하루하루 자기를 팔며 사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하루든 한달이든 ‘그냥은 안 된다’고 핫도그가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