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 계란을 사러 갔다. 여러 브랜드의 판란들이 쌓여 있는 곳에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헷갈리기만 했다.
싼 것으로 살까, 비싼 것으로 살까. 첫 고민은 이렇게 가볍게 시작되었다. 이리저리 살피다 보니 고민이 점차 늘어났다. 가까운 동네에서 출하된 것으로 살까, 대기업 브랜드로 살까. 일반 계란으로 살까, 친환경이나 무항생제 인증 계란으로 살까. 유기농 계란이 더 나을 텐데, 그것이 과연 더 맛있고 더 안전한 걸까? 고민의 수위가 점점 높아져 마침내 방사란은 없는지 찾기에 이르렀다. 점원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퍼뜩 정신이 돌아와 아내에게 혼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항생제 계란을 처음 시장에 내놓은 기업 브랜드를 선택한 뒤 서둘러 귀가했다. 식탁 위에 당당하게 올려놓으며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품질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모르겠지만 계란 종류가 엄청 많드만.”
계란 포장을 열어본 아내가 수고했다는 말 대신 어머나 감탄사를 내뱉었다.
“아니 뭘 이런 걸 사왔수?”
뭘 또 잘못했나 싶어 개봉 계란을 보니 말도 아니었다. 난좌가 비어 있는 곳이 세 개나 있었고 껍질이 깨진 계란들도 몇 개 보였다. 장고 끝에 악수 난나더니, 고민 쏟아질 때부터 불길하긴 했었다.
바꿔 오라는 부인님의 명령을 받고 마트로 가면서 심경이 복잡해졌다. 기껏 고민해서 이미지 좋은 기업 것을 샀는데 이럴 수가 있는가. 게다가 영수증도 안 챙겼으니 어쩐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블랙 컨슈머도 많은 세상, 순순히 교환해주기나 할까? 책임 소재를 따지며 언쟁을 하게 되면 어쩌지? 그런데 불량 상품의 책임 소재는 제조업체일까, 유통업체일까....
마트에 들어서서 최대한 당당하되 담담하려 애쓰며 직원 앞에 (불량) 계란을 내놓았다.
“이것 좀 봐주세요. 조금 전 사간 건데....”
마트 직원은 내 말을 끊고 사과부터 했다.
“죄송합니다. 검품에 문제가 있었나 봐요. 새것으로 골라 오십시오.”
그 순간 쌓여 있던 고민과 불만들이 휙 날아갔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새 계란을 들고 오는 걸음이 가뿐해지며 머릿속이 맑아졌다.
유통업체 서비스가 선진화되었군. 친환경 식품 전문기업이라 유통 거래도 신사적으로 하는가. 불과 5분 전만 해도 불만과 불신과 의심덩어리에 눌려 있던 마음이 만족감과 기대감으로 돌변했다. 계란 한 판을 두고 북 치고 장구 치며 고민에 휩싸였던 것이 민망하기도 했다.
독일 여행 중에 시골 마을의 마트에서 계란 매대를 봤다. 비교적 단촐하게 세 종류의 상품이 있었다. 가격대도 세 개로 일반 계란, 친환경 무항생제 계란, 방사란 순으로 제법 큰 차이가 있었다. 포장에 양계 농가의 가족사진과 농장의 사진이 실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어떤 것이 더 많이 팔리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진열 매대를 보고 추정할 수는 있었다. 깨끗한 농장을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실은 포장 계란 쪽이 쑥 내려가 있었다.
나는 세 종류의 계란을 모두 구매해 맛을 비교해 보기로 했고 그날 저녁 엄숙하게 계란 프라이를 했다.
비교해 본 맛의 결론은…
알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건강 기여도 역시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친환경과 무항생제 사육을 선호하고 권장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가까운 식품 과학자가 이런 답을 내놓았다.
“식품은 약이 아닙니다. 약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만 먹거리의 효과는 아주 천천히 일어나지요. 건강만이 목적이라면 줄기차게 건강기능식품만 먹으면 될 텐데, 우리가 왜 그렇게 살지 않겠어요.”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다.
“친환경 생산은 단순히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연환경을 위해서 필요한 게 우선입니다. 그러니 식품을 구매할 때 어떤 게 건강에 좋을까 고민하지 말고 어떤 게 더 공익적일까를 고민하세요.”
문득 계란 앞에서 고민했던 내 마음이 떠올랐다. 찔끔 오금이 저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중국에서 이송해 온 교민들을 둘러싸고 아산과 진천 지역이 한동안 이슈가 되었다. 지역 주민들이 어떤 순간 이기심의 악마처럼 보였다가 어떤 순간 훈훈한 천사들로 바뀌었다. 사실은 그들이 바뀐 게 아니라 뉴스가 바뀐 것이리라. 우리에게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해 있다. 무엇을 내놓느냐의 차이는 백짓장 하나일 것이다. 끊임없이 북 치고 장구 치는 미디어와 상술, 두 푼어치의 이기심에 휩쓸리지 않기가 의외로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