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부의 아내

어느 날 문득 인생을 바꾼다

by 포포

미술학원 강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건 정말 쉽고 보람이 있다. 때로는 놀라운 영감을 '배우는 아이들'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건 고역이다. 특히 40 이후 사람들이 뭔가를 새로 배우기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중년 이후 새롭게 뭔가를 배우겠다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매몰차게 느껴지는 말이다. 그래서 왜 그런지 물었다.


강사의 답이다.

“산이나 강, 나무나 꽃을 그린다고 쳐요. 이러저러 그림의 기본과 기법을 알려주는 게 우리의 일이죠. 어린아이들은 쉽게 받아들이고, 심지어 우리가 생각도 못한 방식을 스스로 시도하곤 해요. 나이든 사람들은 그게 안 됩니다. 몸이 굳어 기법을 익히기 힘든 건 그렇다 쳐요. 문제는 생각이죠. 몸보다 더 굳어 있어요. 산은 이런 모양, 나무는 이런 모양, 꽃은 이런 것... 그 정형을 못 벗어나요. 그러니 가르치는 입장에서 재미도 없고 힘들기만 하고 그렇죠.”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해 발행된 <모지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에 산 증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얼마 전 브런치에도 소개되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책과 기사로 전해진 이 할머니의 인생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골 소녀 ‘시시’는 열두 살 때 한 농장의 가정부가 되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고단하게 열심히 살았다. 27세 때,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농부와 결혼했다. 농사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소를 키우고 버터를 만들고 통조림과 잼, 시럽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그렇게 열 명의 아이를 키우며 어머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하게 살면서 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시시도 그렇게 살았나 보다. 아주 많은 사람들보다 조금 더 고생을 했는지, 조금 덜 고생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조금 더나 덜이나 사실 큰 의미도 없다.


어느 날 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그림물감을 발견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좋아했지만 물감 살 돈이 없어 엄두를 못 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제 농사지을 힘도 떨어진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 볼까, 하고그림을 그렸다. 그때껏 한 번도 그림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건 당연하다. 그러니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작은 마을과 동네 사람들과 주변 풍경을 그릴 뿐이었다. 자꾸 그리다 보니 점차 그럴 듯한 그림들이 나왔고 그 중 괜찮은 것들을 엽서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그 마을 약국에서도 할머니의 그림을 벽에 붙여 놓곤 했다. 그 시골 약국에 들른 미술 수집가에 의해 할머니의 그림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무명인 할머니의 첫 전시회 명칭은 <어느 농부의 아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림들이 팔리고, 소문이 나고, 할머니 화가의 이름은 점점 유명해진다. 한평생 농부의 아내로 살았던 여인이 70대 후반부터 그림 그리는 할머니가 되었고, 100번째 생일 때 뉴욕시는 ‘모지스의 날’을 선포하며 이 할머니를 축하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시시 모지스 할머니가 그린 그림은 1600여 점, 이 중 250점은 100세 이후에 그린 것이고, 그 중에는 14억 원에 팔린 그림도 있다. 할머니가 유명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좀더 일찍 그림을 그렸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토로하곤 했는데, 그때 할머니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사람들은 내게 늦었다고 말하지만 지금이야말로 뭔가를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입니다.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추구할 수 있는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때이죠.”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작품들이 팔리면 ‘농촌기술 지원금’과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70대에 선택한 새로운 삶이 이후 30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다며 인생 총평을 이렇게 정리했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마치 좋은 하루였던 것 같다. 삶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국은 초고령 사회로 진입 중이다. 노인들은 과거와 달리 대접도 못 받고 존경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전철에서 만나는 노인들의 태반은 뭔가 불만 가득한 표정, 화난 듯한 얼굴들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노인들처럼 드라마틱한 인생사, 역경을 이긴 저력은 지구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80세 이상의 노인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살았다. 식민지 시대-해방-자유인가 싶었는데 동족끼리 전쟁-독재와 투쟁-쿠데타의 연속-민주화-경제발전-제2의 민주화-촛불혁명... 인간살이 최저점에서 최고점에 이르는 모든 걸 겪은 노인들을 보유한 나라--->대한민국)


그분들에 비하면 시시 할머니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시시 할머니는 좋은 하루를 보낸 듯 미소 지으며 떠났단다. 그녀가 꼭 그림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건 아닌 듯 싶다. 삶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이리라. --- 이 내용에 영감을 준 글은 브런치 미전 님의 <상도 못 받았는데 14억원에 팔린 할머니 그림>입니다. 미전 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을축제-모지스할머니.PNG 시시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 <마을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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