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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m May 22. 2023

나도 끼워주면 안 되겠니?


친가는 천주교였다. 색 바랜 성모마리아 상이 할머니 이불 옆 화장대 위에서 고아하게 손을 모으고 있었다.

반면 외가는 불교였다. 성경을 읽는 할머니와 불경을 읽는 외할머니 사이에서 나는 무교를 택했다.


결혼하고 엄마는 아빠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현재는 두 분 다 무교 혹은 '무교에 가까운 불교'에 가깝지만)

오빠도 성당 유치원을 다녀 '마리오'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우리 가족들 세례명이 있다, 물론 나 빼고.

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성당 유치원이 문을 닫았다. 집에서 거리가 있는 다른 성당 유치원을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난 우리 집에서 부모님 일터로 걸어가는 길목에 있는 교회 유치원을 다녔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육아의 고단함은 종교를 이긴다.


그러고 보면 유치원 때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나는 끼고 싶어 했고, 세상은 그리 쉽게  끼워주지 않았다.





특별히 뭘 안 해도 그냥 잘 풀리는 사람이 있다.

오빠는 우리 집에서 기어서도 5분이면 도착하는 초등학교에 다녔고 6년을 그렇게 신선처럼 통학했다. 이후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그곳은 마침 오빠 중학교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아파트였다. 오빠 중학교를 보고 이사한 것은 아니었는데 운 좋게 오빠가 근처 중학교로 배정이 됐다.


오빠와 3살 차이인 나는 4학년 때부터 혼자 30분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다. 이사한 아파트 바로 뒤에 초등학교가 있었지만 '괜히 전학 갔다 적응을 못 할까 걱정된다'는 이유로 엄마는 전학을 시켜주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우리 집 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에메랄드색 체육복 무리들 사이로 독야청청 새파란 체육복을 입은 채 나는 거꾸로 거꾸로 내려갔다.


분명 나도 사회의 어딘가에 속해 있기는 했지만, 내 주변과는 자주 조금씩 어긋났다.

제 곳에 놓이지 않은 물건처럼 나는 틀린 건 아니었지만 달랐고 그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평생 나는 끼고 싶어 안달이 났다.





과연 인간의 욕구 5단계 안에 '소속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요즘 몸으로 절실히 느끼고 다.

지금 내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두려움이 속절없이, 하염없이 나를 덮쳐온다.


작은 퍼블리싱 회사에 작사가로 소속되어는 있지만 그것이 나의 경제적인 자립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사실상 허울 좋은 간판이다. (물론 회사는 나에게 좋은 기회들을 주고 있고, 난 그것에 감사한다. 탓해야 할 것은 수익화가 안 되는 내 실력과 조급한 마음이겠지. 흑흑)


눈을 뜨면 두렵고, 글을 쓰는 순간에는 두렵지 않다. 

그래서 전보다 요즘 글을 더 자주 쓴다.

플랫폼 안에서 많은 분들 사이에 함께 있음을 느낀다. 비슷한 사람들, 다양한 이야기 속에 나도 같이 둥둥 떠 있다. 얼렁뚱땅 나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한 데 뭉뚱그려지길 바라면서.




 * Cover Image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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