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상담을 받는다는 건 마치 털 없는 닭이 되는 기분

평소에 쓰고 있었던 가면을 벗을 때 조금 부끄러워지는 것.

by poppy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심리상담을 총 50회 차정도 받았다. 심리상담에 사용하는 돈은 왜 이렇게 아까웠던 건지.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나라에서 무상으로 제공해 주는 정책이 나와서 참여한 뒤로 심리를 돌보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금까지 꾸준히 받고 있다.

청년, 전 국민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해 주는 정책이 계속 시행되고 있다. 참 좋은 복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약간은 안타까운 마음이 동시에 든다. 돈을 주거나, 눈에 보이는 물건을 지원해 주는 게 아닌, 사람의 마음을 돌보는 것으로 국가사업이 확장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실제로 이 사업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삶에 큰 과제이지만 심리는 더욱 고차원적인 문제다. 그래도 이전보다 상담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서 다양한 지원사업이 만들어지고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지인들 중에 종종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그거 받으면 눈에 띄는 도움이 돼?”라고.


상담은 마음을 위한 근력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몸도 근육을 붙여서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분명 단련을 해서 몸집을 키워놔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폭풍이 휘몰아쳐도 단단히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상담을 받다 보면 생닭이 되는 것 마냥 벗겨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생긴다. 상담을 받기는 받아야겠는데,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질적인 감정이라 뭔가 불편하기도 하고 낯설다. 다 모르겠고 상담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이 감정이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그럴 때는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하면 좋을지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본다.






왜 굳이 과거를 들춰야 하는 걸까


왜 심리상담을 하면 무조건 과거로 돌아가서 원인을 찾는 것일까? 상담을 받으면 분명 현재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린 시절, 과거의 이야기, 지난 기억들을 통해서 답을 찾고는 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생각하면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뇌 안에는 다양한 기억(=영화에서는 ‘구슬’로 표현된다)들이 존재한다. 기억들이 쌓여서 데이터가 되면 그걸 기반으로 본인의 정체성, 기준, 균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어디선가 새롭게 탄생한 무언가가 아닌 과거의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가깝다. 그러므로 삶에서 가끔 방향을 잃었을 때 과거로 돌아가 그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어디에서 시작했기에 현재라는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 파악하지 않으면 계속 이유를 알 수 없는 패턴이 반복될 뿐이다. 반복해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에 커다란 바위도 언젠가 깨진다. 나를 괴롭히는 대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고, 그러려면 나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의 시작(=누수가 발생한 원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본인 안의 다양한 연령대의 '나'들이 가지고 있는 기억들을 들춰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심리, 감정을 마주해야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물며 전시회에 가봐도 모든 역사, 시대의 배경이 시작점부터 흐름대로 정리가 되어있다. 이야기의 시작을 알아야 진정한 이해가 된다. 그 과정이 꽤나 불편하고 아플 수 있다. 그래도 빙빙 돌아가지 않고 지름길로 가는 건 나와 마주하는 일이다. 외부에서 아무리 요인을 찾아봐도 답은 언제나 내 안에 있다. 입구가 안 보일 때는 담을 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선생님과의 티키타카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며 감정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기계와는 달리 상담자, 내담자 모두 감정이 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예전에 상담을 받았을 땐 이걸 깨닫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때 받았던 상담은 총 10회 중에 2회만 받고 더 이상 가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상담을 받을 당시 담당선생님이 미웠다. 왜 내 안의 불안이랑 마주 보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상담시간이 불편했다. 또한 너무 축 쳐지는 분위기, 내 안에 우울이 반드시 있고 그것과 마주해야 한다는 압박감, 울어야 할 것 같은 그 분위기가 싫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내 마음이 아직 스스로의 민낯을 볼 준비가 안되어 있었던 거였다. 선생님이 미운 것보다 내 자체가 미웠다. 왜 이제 와서야 다 지난 일들을 꺼내고, 어렵게 덮어둔 과거의 상처를 들쑤시는지 이해가 안 되었던 거다. 상담은 2회로 끝났지만 정말 중요한 경험들이었다. 선생님도 결국 사람이라는 것, 사람마다 서로 잘 맞는 ‘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는 상담을 받을 때’ 이렇게 심리에 대해서 연구 한 선생님도 나와 같이 흔들리는 사람이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애써주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경험 덕분에 오히려 지금의 선생님과의 라포형성이 조금 더 수월할 수 있었다. 라포는 간단히 말하자면 [정서적으로 서로 믿고, 편안한 느낌]이다. 이 사람은 나를 판단하지 않을 거란 믿음,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는 느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상담을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물론 상담이 맞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다. 실제로 선생님과의 관계, 환경에서 확실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상담은 반쪽짜리 지폐처럼 온전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양쪽이 다 최선을 다해야만 그나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삼담을 받고 나서의 결과


상담을 받고 나면 마지막 회에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정말 형식적인 질문들이다. ‘상담으로 인해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는지?’ ‘실제로 삶의 질이 개선이 되었는지?’ 같은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지를 작성할 때는 심한 고민에 빠진다. 상담을 시작했을 때 보다 끝날 때의 상태가 더 안 좋을 때도 있다. 다만 이건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으로 일종의 리바운드 현상(일종의 요요현상) 같은 것이다. 원하는 목표로 가는 길은 일직선이 아닌 굴곡이 상당한 길이다.


일반적으로 심리상담 후 달라지는 삶은 파란선같이 평탄한 상승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밑에 꼬불거리는 초록선이 실제의 모습이다.
굴곡 그 안에서도 다양한 업다운이 무수히 반복된다.


이런 현상을 처음 겪는 내담자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상담을 받기 전이 더 상태가 좋았던 거 같아"라고 말할 수 있다. 아예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 좋지 않은(듯 보이는) 과정 또한 성장하고 있는 과정의 증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담을 시작한다고 모든 게 즉각적으로 괜찮아지고 꿈같은 새로운 삶이 펼쳐지지 않는다. 걷기가 수월한 계단길도 있지만 물웅덩이가 가득한 진흙길, 발이 땅밑으로 푹푹 빠지는 사막, 홍수가 나서 물살이 빠른 강도 건너야 한다. 안타까운 것은 그 길을 걸어보기 전에는 목표만 바라보니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던 것을 깨닫고 “이건 내가 원했던 삶이 아니야!”라며 중도 포기가 발생하게 된다. 아쉽지만 발전을 위한 고통의 구간을 뛰어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몇 번 상담을 받았다고 드라마틱하게 문제가 개선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오히려 더 깊은 암흑의 구간을 지나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인만의 크고 작은 목표를 이뤄 본 사람은 안다. 그 길을 걸어야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진부한 말이지만 ‘동이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건 진리다.


"대나무는 4~5년 동안은 단 1cm도 자라지 않아. 그러다가 5년이 지나면 6주 만에 15~30M까지 자라는 거야. 겉에서 눈에 띄는 성장이 안 보여도 넌 계속 성장 중인 걸 잊지 마.


예전에 회사업무 때문에 중국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실력이 늘지 않아서 우울해하는 내게 중국인 친구가 해줬던 말이다. 나를 위로하려고 지어낸 말이 아닌지 의심이 들어 찾아봤는데 진짜였다. 심지어 많이 자랄 때는 하루에 1M까지 자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물며 대나무도 포기하지 않고 자라는데, 내풀에 지쳐서 포기하기에는 아쉬웠다. 언젠가 급속도로 성장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은 회사에서도 혼자 중국 출장을 다니며 현지 담당자들과 미팅을 하면서 언어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원어민처럼 잘한다는 게 아니다. 아직도 갈길이 구만리다. 그래도 눈에 띄지 않는 성장기를 버텨냈기 때문에 지금의 발전된 나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매번 상담을 가는 길이 행복할 수 없다. 사실 귀찮고 쉬고 싶을 때가 더 많다. 솔직히 말해 ’이 시간에 조금 더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지금의 시간이 의미 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분명 성장한다. 멈춰있는 것만 같은 지금이 사실은 폭발적으로 자라기 바로 직전 단계일 수 있다.




생각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상담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때 조금 더 심오하게 생각을 할 기회가 생긴다. 털이 많은 닭에서 생닭처럼 말끔한 의식을 가지게 되는 그때는 평소에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다니는 잡념들, 고민들을 입 밖으로 꺼내는 과정을 거친 뒤라서 생각이 더욱 또렷하고 맑아진다. 그러다 보면 평소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잘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민을 하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전체적인 내 삶에 대해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고민하고, 발전하고, 성장하는 게 내 삶에게 있어서 어떤 역할인 것인지. 생각을 하지 않고 살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인류역사상 아직도 명확한 답을 내지 못한 '삶의 이유'라는 문제에 대해서 괜히 심각한 표정으로 혼자서 토론한다. 다만 이런 질문들은 항상 답이 없고 계속 파고들어 가는 경향이 있어서 너무 깊게 들어간다 싶을 때는 생각을 멈춘다. 꼭 필요한 질문들이지만, 짧고 굵게 생각하고 빠져나와야 한다. 이럴 땐 집에 가만히 앉아있을 경우에는 생각을 제어하기 어렵다. 환경을 바꿔버리면 그에 맞춰서 생각도 변화한다. 의식의 흐름을 위해서 장치를 마련해 주면 좋다. 실제로 내 삶에서 가장 큰 장치는 [심리상담/운동/공부]다. 상담을 가서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생각 정리를 하는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본인의 귀로 다시 한번 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상대방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또 한 번 시각적으로 각인된다. 확언이라는 걸 할 때 괜히 입 밖으로 말하고 글로 쓰는 게 아니다. 운동을 할 때도 무거운 무게를 들거나, 기구 위에 올라가서 동작을 할 때면 다른 잡념들이 사라진다. 하나의 동작에 온전히 몰입하면 지저분하게 마구잡이로 떠오르는 생각을 어느 정도 컨트롤 할 수 있다. (사실 기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정신을 집중하는 것에 가깝다.) 공부도 아주 좋은 장치다. 답이 정해진 것을 향해서 나아갈 때면 머리가 맑고 깨끗해진다. 삶의 이유에 대한 본인만의 답을 계속 업데이트하되, 너무 심오해지지 않기 위해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너무 깊이 잠수하면 물 위로 올라올 때 마실 숨이 부족하니까.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다 느낀 게 아닐까 싶어’ 영화 her에서 남자 주인공이 이런 말을 한다. 삶 속에 이런저런 장치를 많이 만들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삶 자체에 대해 지루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번 다니던 익숙한 길을 역방향이나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보는 거다. 나는 중국출장을 종종 가는데 매번 같은 공장, 비슷한 숙소를 다니다 보니 약간의 무료함이 생긴다. 그럴 때는 자유시간에 목적지까지 지도를 보고 간 다음, 돌아오는 길은 지도를 최대한 보지 않고 돌아온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목적지로 가는 길은 다시 돌아올 때 지도가 없다는 생각에 건물, 풍경에 디테일한 부분을 관찰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은 내가 눈으로 기억에 저장해 뒀던 표지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잘 가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다. 지도어플만 보고 걸었다면 눈길도 가지 않았을 것들의 형체를 외우고 다시 그것들이 보이니 그렇게 반갑다. 새로운 것은 신선함을 주고, 익숙한 것은 무료하지만 안정감을 준다. 특히 흔히 말하는 ’ 무료하다 ‘라고 느끼는 감정이 사실은 엄청나게 소중한 것을 깨닫는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볼 때 두근거림은 없지만 이전에 겪어본 경험을 가지고 있으니 이미 큰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익숙함을 잘 버티는 기술만 있으면 삶이 조금 더 수월해진다. 이럴 때 보면 삶의 이유 중에 ‘본인이 지닌 재산을 인식하고 잘 가꾸는 것’이란 과제가 하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꼭 정식으로 받는 심리상담이 아니어도 좋다. 본인에게는 지루할 수 있는 반복되는 삶의 패턴은 타인에게 신선한 시각을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주변에게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것, 글로 적어 공유하는 것 그런 모든 과정들이 무료함을 잘 버틸 수 있는 재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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