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도대체 언제 행복할까
비가 오면 습도가 높아져서 찝찝하고 , 겨울은 손발도 차가워지고 옷도 두꺼워져서 힘들다. 여름은 땀나고 벌레가 많아서 싫다. 사람이 많은 곳은 기 빨려서 싫고, 없는 곳은 핫플이 아닌 것 같아서 매력이 없어서 싫다. 단점에 집중하다 보면 내가 행복한 시간은 영영 만날 수가 없다. 신기하게도 뭔가를 싫어하다 보면 더 극도로 싫어진다. 싫어하는 적절한 이유와 명분이 생기게 된다. 그럼 과연 언제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정말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부터 맨 끝문장은 긍정어로 끝났다. 아무리 욕을 하고 밉다고 힘들다고 썼어도 그 끝에 한 문장은 반드시 ‘그래도 ~해서 좋다’라는 문장으로 끝내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고, 지금도 어쩔 수 없는 본능처럼 의식 자체가 그렇게 된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성격적인 특징인 것 같다. 죽을 듯이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같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그 사람의 장점 찾기 놀이를 시작해 보는 것이다. ‘과연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보석은 뭘까?’라면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빛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그럼 그 부분을 잘 파악해 둔다면 언젠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그에게 내가 도움을 주면서 서로 윈윈 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내가 대학교 때의 이야기이다. 모든 학교마다 학생들이 따르지 않는 외톨이 선생님들이 있듯이 그때도 한 교수님은 유독 인기도 없고, 수업에 집중도도 최 하위였다. 그때 나는 그 과목에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다고 생각했다. 3D 프로그램에 대한 강의였는데 그 당시에는 우리 과 학생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과목대표를 자처했고 스스로 수업에 책임감을 가지도록 환경을 만들었다. 내가 발견한 교수님의 보석은 아는 게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다만 너무 많아서 한 수업에 몰아서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이 매번 지쳐했다. 그래서 오히려 매번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시면서도 눈을 반짝이면서 여러 꿀팁 대방출을 해주셨고 나는 스펀지처럼 최대한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배웠던 프로그램의 기술들을 활용해서 현재 3D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면 꽤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사이에 교수님이 싫었던 적도 분명 있지만 계속 좋은 부분을 보려고 노력했다. 뭐든 빛이 있으면 반드시 어둠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크게 힘들지 않다.
비를 좋아하지만 실내에서 빗소리를 듣는 걸 좋아하지 직접 우산 쓰고 맞는 건 별로다. 높은 습도로 인해서 꿉꿉해진 버스를 타는 출근길은 언제나 달갑지 않다. 출근이라는 퀘스트를 깨러 가는 길이 평소보다 2배 더 길게 느껴진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비나 눈이 올 때면 30분 늦게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30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늦게 일어날 수도 있고(1분도 소중하다) 아예 일찍 출근해서 일기나 글을 쓸 수도 있고, 공부를 할 수도 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으면서 하루를 에너지 있게 준비할 수도 있다. 이제 아침에 빗소리가 들리면 왠지 모르게 설렌다. 30분의 여유가 마음에 여유로움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종종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창문 밖을 보며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그러면 창밖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인다. 내가 저 길을 걸었을 때는 분명 머릿속에 힘듦이 가득했는데 지나고 보니 정말 ’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 여유가 있어서 발견한 깨달음이었다.
그래서 이런 여유로움을 일상에서도 틈틈이 적용시켜보고 있다. 지인을 만날 때는 오전/ 오후에 꼭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내 여유시간을 만든다. 그럼 상대와 만날 때는 그 시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고 진심으로 교감할 수 있게 된다. 예전에는 타인과 만날 때 반드시 충전시간이 필요해서 그다지 약속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나만의 여유를 확보해 주니 꽤 괜찮아졌다. 사람의 인성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여유에서 나오는 듯하다. (몇몇 고장 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당장 보유하고 있는 여유시간이 없으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예민해져 버린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갈 일도 내 갈길이 바쁘다 보니 앞에 있는 대상이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당장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기까지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여유가 있으면 정말 다르게 보인다. 내가 소중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는 걸 여유를 찾고 나서야 알게 된다. 대부분 그때가 되면 이미 사이가 데면해졌거나 관계가 끝나버린 후이다. 그래서 나와 주변을 보호할 수 있는 여유를 튼튼하게 잘 만들어둬야 한다.
모든 신체가 매번 활력 넘치는 봄, 여름 계절만 있는 건 아니다. 낙엽이 떨어지고, 다시 재정비의 시간으로 쓰이는 가을, 겨울도 분명히 온다. 남자도/여자도 각각 신체에 비수기가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여자를 기준으로 말해 보자면 인체의 신비로운 작용으로 인해 매달 마법의 기간을 가진다. 그때에는 몸, 호르몬의 변화로 평소 일상과는 분명히 다른 패턴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식욕이 과다하게 늘어난다거나, 단것을 찾고, 예민해지며 기분이 너울을 탄다. 그 기간을 단순히 짜증 나고 힘든 구간으로 생각하기에는 앞으로도 꽤 많이 마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금은 괜찮은, 혹은 나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까?
나의 경우는 그 기간은 단것에 대한 금지를 풀어주는 기간이다. 평소에도 간식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유혹이 많지만 평소에는 자제를 해주고 마법의 기간이 오면 자유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먹고 싶어서 (침을 참 키며 벼르고 있었던) 눈여겨봤던 간식들을 마음에 찜해뒀다가 이때 먹는다. 개수도, 양도 따로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아무거나 막 먹지는 않는 게 조건이다. 이왕 먹는 거 좋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 위주로 먹으며 만족이 되었을 때는 내려놓는다.
이런 고당도, 열량의 간식을 먹을 때 오이, 토마토 같은 저열량의 간식들도 곁들여서 먹으면 좋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냐 싶지만) 이런 습관을 몸에 익혀두면 입이 터지더라도 우주 폭발까지 가지 않는다. 대기권에서 다시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때는 진정한 배고픔, 배부름보다 욕구에 초점에 맞춰진 때라 약간의 잔꾀가 필요하다. 초콜릿 먹다가 가끔 오이를 집어먹는다거나, 토마토를 먹어주면 몸은 행위만 인식해서 내가 계속 초콜릿을 먹는다고 착각한다고 한다. (뇌과학에 관련된 유튜브에서 배운 것들을 이런 이상한 곳에 쓰는 잔머리만 늘었다.) 씹을 때 나는 소리가 강한 간식일수록 더 좋다. (오이, 당근, 셀러리, 파프리카 등등 > 그냥 먹으면 심심할 경우 한입 크기로 먹기 좋게 썰어서 후추 뿌리고, 저당 마요네즈에 찍어 먹으면 그것도 꿀맛이다.)
맛이 궁금하다고 생각했던 두바이 초콜릿을 최근에 먹어봤다. 뭔가 참았다가 먹는 맛이 있다.
유행에 한참 느리다 보니 중소기업을 비하하는 말이 ‘좋소’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그것도 같은 직원이었던 사람이 현재회사를 그런 식으로 말해서 꽤나 충격적이었다. 그때당시는 어떻게 본인이 선택하고 다니고 있는 회사를 저런 표현으로 말할 수 있을까? 라며 궁금해했다. 나도 현재 회사에 만족도가 100%라서 눈에 꿀 떨어지는 사람처럼 다니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내가 말한 게 사실이 되는 거고 내가 대접해야 그 결과물이 나한테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처음 입사를 했을 때 기본시급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이유는 정말 간단하다. ‘발전‘. 그것도 나 혼자만 하는 발전이 아니라 회사도 같이 더불어서 시너지를 일으켜야 한다. 단순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만 잘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회사도 나도 서로 알고 있다. 내가 이곳에 영원히 몸담고 있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서 굳이 번역기를 돌려도 되는 걸 직접 소통하려고 중국어를 배우러 다녔다. 덕분에 자격증도 딸 수 있었고 올해는 새로운 비즈니스 회화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자격증은 단지 증명하는 종이에 불과하고 내가 얻은 건 소통하는 기술이다. 그게 있으면 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번역, 통역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몸값을 높여서 이동할 수 있다. 이동하지 않을 경우라도 현재 회사에 당당하게 나의 기여도와 역량을 어필할 수 있다. 입사 초반에는 월급인상보다 학원비를 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직원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나만의 장치였다. 강제성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게 된다. 회사와의 약속을 해버리면 나는 지켜야 하고 결괏값을 제출해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중국인 친구와 주말에 놀러 다니며 수다를 떠는 게 일상이 되었다. 아직도 완벽히 알아듣지 못하지만 나는 나의 값을 계속 키우고 있다. 영원한 관계는 없다. 회사가 나를 자를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내가 내 사업을 해보고 싶다. 그래서 오히려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최대한의 에너지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