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이혼이 자식에게 닿는 과정

둘이 좋아서 한 결혼의 끝을 왜 자식한테 물어요

by poppy

사랑했던 사람에게 받았던 상처들은 더욱 세심한 치료가 필요하다.

그들에게 받은 상처는 더욱 날카롭고 깊게 새겨지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이혼을 이렇게 글로 적어 내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래 방치해 왔던 나의 묵은지 같은 상처들을 다시 들춰내어 제대로 마주 보고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아팠던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얇은 천에 덮여있는 것이다. 깊은 구덩이가 파인 채로.

그럼 시간이 지나서 기억을 잊고 그 길을 무심코 지나가다가는 갑자기 깊은 구덩이로 떨어지는 날벼락을 맞게 되는 것이다. 구덩이에 빠지면 올라오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글로 적거나 상담을 받으면 구덩이에 사다리를 놓거나, 구덩이를 메꾸는 작업이 되어준다.








목차

1. 이혼의 결정권자

2. 나를 위해

3. 부모도 부모의 삶은 처음





1. 이혼의 결정권자

이 세상 모든 이혼이 사연이 다양하고 너무 힘들겠지만 난 내 인생에서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사건이 제일 암울했고 힘들었다. 마치 세상에 걸레를 빨고 난 구정물 같은 색깔이었다. 쿰쿰한 냄새도 나는듯한 회색빛의 시절이었다.


한창 공부를 할 무렵 친구들이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로 머리를 뜯을 때 난 엄마, 아빠 이혼한다고 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학교 선생님이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며 집에 가보라고 당황하셨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 다 같이 가정법원까지 다녀왔다. 아버지는 우리가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이런 쇼를 했다고 했다. 내 부모님이지만 참 이해하기 어려운 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 것은 두 분이 결혼을 했으면 설령 자식에게 나쁜 역할이 되더라도 두 분이서 그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게 맞다. 우리 아버지는 '이혼'이라는 결정에 아주 친절하게도 자식인 나의 의사를 물어보셨다.

너의 생각은 어떠냐며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듯하다.

거기서 자식 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은 뭐였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난 "아버지가 원하신다면 저는 아빠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지금까지 키워주신 게 감사하다. 앞으로는 아빠의 선택대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한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마치 밖으로 나가도 된다고 허락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안도하는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이질감이 들었다. 내 말이 힘을 입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결국 이혼하셨고 그렇게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우울증이 많이 심해지셨는데 그 시점부터 모든 게 내 탓이라는 죄책감에 우울감이 찾아왔고 온몸에 정체불명의 두드러기가 났다. 살이 15kg 이상 빠지고 눈에서 삶의 초첨을 잃었었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살아서 글을 쓰고 있으니 생명력이 질긴 생명체다.


그들의 결혼에 내 선택권이 있었나?

내 의견을 물어보고 한 결혼인가?

난 동의한 적도 없는데 끝을 맽을때가 되니 나의 의견을 묻는다니.

참 아이러니다.


자식이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

부모의 이혼에 자식은 결정권이 없다는 것.

그건 온전히 두 분의 이야기가 마침표를 찍는 것뿐이다.

대본으로 치자면 이야기가 딱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2. 나를 위해

내 마음속에는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서 누군가의 잘못을 가리는 정의의 심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잘못을 했다면 내가 아닌 하늘이 언젠가 알아서 벌 할 일이다.

한 톨의 증오하는 감정도 허용하기 싫다. 공간이 아깝달까.


아직도 아버지를 만나는 이유는 내 마음이 바닥을 보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다. 이 만남이 설령 언젠가 끝이 난다고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후회 없게, 그렇다고 무리 없이 내 몫을 하는 것뿐이다.

그것 역시 쉽지는 않다.

그래서 항상 적정 거리와 단호함도 중요하다.

그분들도 그분들의 의견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듯이 나도 내 의견대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

예전에 나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 행동들을 하나씩 도전하고 있다.

실제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가 많이 달라짐을 느낀다.

내 의견을 말하고, 싫은 것, 좋은 것 의사를 확실히 표하는 것.

오히려 아쉬운 거 하나 없는 지금 상황에서 연습하기 더 좋기도 하다.

난 받고 싶은 것도 없고 드릴 것도 없다. 그저 그분들은 그들의 인생을 잘 사시길 바랄 뿐이다.





3. 부모도 부모의 삶은 처음


부모라도 모두 난생처음 해보는 것들이다.

호르몬이 폭발할 무렵 서로가 좋아서 부모가 되기로 약속했지만 마음이 식었다면 서로가 잘 마무리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한쪽만 마음이 식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하기 전에 '만약 상대방이 본인이 마음이 식었다며 헤어지자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앞으로 그려나갈 꽃길만을 꿈꾸며 시작하는 게 보통이다. 그리고 그 상황이 닥치면 정신줄이 툭하고 끊기며 오직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해 버리게 된다. 이성은 찾아볼 수 없는 야성의 세계가 펼쳐진다. 정말 정글 같은 상황이 된다. 칼부림이 나지 않으면 다행이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나쁜 일을 염두에 두고 하나하나 대비하라는 게 아니다.(그렇게 할 거라면 진짜 암울해진다. 혼자 사는 게 더 마음이 편하겠다.)


절대, 평생, 영원 이런 단어들은 사람의 눈을 멀게 만든다.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 더욱 조심해야 하고, 의리를 지켜야 하고, 배려해야 한다.

결혼을 하면 몇 년간은 하트가 뿅 뿅 튀고 행복하겠지만 그 이후의 삶은 반복적인 삶이 펼쳐진다.

서로 건강할 때 만났지만 누군가는 아플 것이고, 무너질 때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 누군가는 그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다시 일어나기를 응원해 줄수도 있고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은 종종 엇나가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번생이 처음이라는 이유로 잘못된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부모가 되기 전에 미리 그 단계를 위한 공부 해야 한다.

잘 살고 있는 선배를 만나서 조언을 듣고, 그들이 헤쳐나간 방법을 본인들의 삶에도 적용시켜봐야 한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다 결정해 둔 결론을 가지고 자식에게 이혼을 할지 말지 물어볼게 아니라.


최선을 다했음에도 손을 떠난 일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하늘의 뜻을 미천한 인간이 다 헤아릴 수가 없다.





1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가끔씩 울컥하고 그날의 기억들이 올라온다.


아직도 사람을 만나면 벌써부터 만남의 끝을 먼저 생각하고.

날 떠나갈 거라고 걱정하며, 언젠가 배신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나를 지키려고 하는 보호본능이 너무 과하게 작동하는 탓이다.

이런 과정을 지혜롭게 잘 지나간다면 과거의 아픔도 나에게 좋은 양분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