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걸린 기억상실

힘들 때 나는 어떻게 이겨내었을까

by poppy

요즘은 이혼이라는 단어가 그리 어둠 속에 숨어있지만은 않은(그렇다고 쉽지만도 않은) 느낌이다.

하지만 사회가 아무리 별거 아닌 거라 해도 본인이 힘들면 힘든 것이다.


심리 치유에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힘든 본인의 상황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게 정말 어려웠었다. 심리상담에 가서도 밝은 척, 괜찮은 척 거짓말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선생님이 내 말을 듣고 나를 판단하거나 분석하는 게 싫어서 그냥 침과 함께 꿀꺽- 말을 삼켰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적는 글이 아니다.

내 안에 있었던 우울을 토하는 글이자 상처 위에 새 살을 돋게 하는 과정일 뿐이다.




[목차]

1. 구멍이 뚫려버린 인생

2. 그래서 영영 우울하기만 할 텐가?

3. 내가나의 부모가 되어




1. 구멍이 뚫려버린 인생


난 부모님이 이혼하셨던 순간을 '구멍이 뚫렸던 시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크고 작은 충격을 받아서 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던 시기.

아버지가 죽겠다며 집을 뛰쳐나가서 경찰들이 집을 찾아오고, 어머니가 심리적으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던 그 모든 기억을 아예 없던 일처럼 지워버리기는 어렵다. 동생과 내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이혼하는 척 교훈을 주려했다며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던 우리를 가정법원 앞으로 불러내는 과감한 이벤트(?)를 하셨던 아버지는 도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아버지에게서 받은 충격으로 '너도 아빠의 핏줄이니 항상 바람기를 조심해야 한다'라며 충고한 어머니의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부모님 간의 있었던 너무나도 사적인 일들을(그때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웠던, 지금도 어려운) 세세하게 말해주셨던 어머니는 나를 위한 말이었을까 본인께서 미치지 않기 위해 그저 말을 토해낸 것이었을까.


그 모든 것에 원인이 나한테 있지 않았나 계속 자책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이랬더라면..' '내가 그 말을 하지 말았더라면...'


사람이 극도로 스트레스받으면 그 상황을 기억 못 하게 되는데 이때는 뇌가 [기억]보다는 < [생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그때 우리 가족은 각자 대혼란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우린 몇 주 동안이나 친척 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기억하는 이 가 없었다.

난 딱 한 장면만 기억난다. 멍하니 바닥을 쳐다보던 장면. 딱 그 장면 하나다.

뭘 먹었는지, 잠은 잤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전혀. 아무것도 기억할 수가 없다.

그때 같이 겪었던 일들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꽤 재미있고도 슬픈 일이다.


2. 그래서 영영 우울하기만 할 텐가?


과거에 일어난 일은 안타깝게도 지우개로 지울 수가 없다.

나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부러운 가정환경을 지닌 사람의 삶이나 기억을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인생을 다시 리셋할 수도 없다.

지금은 꽤 규칙적인 루틴 속에서 자발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가끔 몸과 마음이 약해질 때면 과거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아.’라면서 과거의 상처를 돌보지 않았던 나를 스스로가 벌하는 것 같다. 나는 그때 그 시기에 멈춰있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하곤 했었다. 다른 가족들은 다 이사를 갔는데 나만 아직 그 자리 그대로였다.


우울은 한번 빠지면 내 발에 맛이라도 들렸는지 계속 끌어당기려 한다. 불규칙적이면서도 나름의 규칙적인 패턴으로.

온 지구의 중력이 나한테만 적용되는 느낌이다. 길을 걸으면 땅이 울렁이는 이상한 경험도 하게 된다.

심장도 불규칙적으로 뛰고 뻐근하거나 찌릿한 통증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건강검진을 받으면 이상하게도 모두 정상이다.

썩어서 냄새나는 깊은 하수구에 인생이 머리끝까지 빠져버린 그 느낌 때문에 나도 쓰레기가 된 기분이다.


여기서 포인트가 있다.

느낌.


보이지 않는 느낌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우울, 기억, 추억, 감정(분노, 좌절) 등등

실체가 없는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역할을 부여하는 순간 정말 거대한 괴물이 되어서 목을 조른다.

삶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을 항상 깨우쳐야 한다. (습관처럼) 역할분담을 해주는 사람인 것이다. 가치 없는 것들에게는 먼지 같은 하찮은 역할만 주고 힘을 쓰지 못하게 한다. 악몽을 꾸고 나서는 해몽을 찾지 않는 버릇이 여기에서 생겼다. 그러면서 우울의 단계를 나눠서 구별한다.


[우울의 단계별로 하는 루틴]

10~60% = 공부+운동+대인관계 [에너지가 가득 차있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60%~80% = 공부/ 운동 택 1 [사람 만나는 횟수를 줄이고 성장 루틴에 집중한다]

80%~90% = 명상, 글쓰기 [육체적인 에너지가 고갈되는 시기라 내면 성장루틴에 집중한다]

90%~100% = 걷기, 밥 먹기, 잘 씻기, 회사 잘 다니기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산다]

(공통) 감사할 것 3가지 찾기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아보면 경험치가 쌓인다.

스트레스의 카테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걸 역이용할 수도 있다.

우울이 60% 이상일 때는 오히려 같이 하기보단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정말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치를 하나씩 만든다. 공통점으로 해야 할 일은 하루에 3개씩 감사할 것 찾기. 침대에서 일어나 정신이 약간 몽롱할 때 스트레칭을 하면서 "오늘은 왠지 감사할 일 3개가 일어날 거 같아"를 웅얼거린다. 이거 웃기게도 진짜 일어난다.

1차원적으로 생각하면 태어났으니 삶을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밥 한 숟갈을 떠서 입으로 넣을 때도 스스로에게 감사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밥을 먹어주는구나!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든다. 운동을 할 때, 공부할 때도 동일하다. 감사를 찾으면 어디에나 존재한다.



3. 내가나의 부모가 되어

그럼 부모, 가정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자식들은 영영 본인만의 가정도 못 이룬 채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야 될까? 그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도 본인의 부모보다 더 좋은 삶을 살 수 없을 거라는 걱정과 의심으로부터 발목을 잡혀 정반대 되는 삶을 살 때도 있다고 한다. 가정의 모습에 정답은 없다. 부모가 이런 삶을 겪었으니 난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 내가 자식일 때 이런 상처를 겪었으니 내 자식한테는 이런 상처를 주지 말아야겠다 등등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나에게는 분명히 있다.


지금은 나 스스로의 부모가 되어서 살아보고 있다.

'어렸을 때 이런 이런 것을 받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해줘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일종의 보상심리라고 볼 수도 있겠다. 다만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정신적인,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주로 찾아준다. 내가 뭔 헛소리를 해도 해보라고 응원해 주고, 지원해 주는 것이다. 안정적인 미래와 자산을 확보해 주고, 양질의 지식을 채우고, 체력을 꾸준히 비축하는 것, 원하는 꿈을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 힘들어할 때는 최대한 안정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것.


힘들다는 것 자체가 열심히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애초에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힘들다의 기준은 굉장히 주관적인 부분이라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고 했다. 내게 힘든 것도 타인에게는 별게 아닐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이 걱정되는 때는 잠시 다 무음모드로 돌리고 본인만의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그곳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치유를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혹은 타인의 힘을 빌려서. 나의 힘들었던, 힘든, 힘들(그래도 이겨낼) 모든 시간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