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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Jun 24. 2024

어바웃 정직함과 강박

어바웃 시리즈 2

 정직함은 참 애매한 존재이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지만, 때로는 우리에게 '하얀 거짓말'이 필요하다. 정직함만이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정직함은 '하얀 거짓말'로 불리우는 선의의 거짓말보다 우대받는 것이 현실이다. 나 또한 정직함에 훨씬 더 큰 방점을 두고 살아가는 편이다. 좀 어이없을 수도 있지만 내 대표적인 예시는 '라라스윗과 다이어트 식품'에서 나타난다.




 올해 초부터인가? '저당' 과 '0 kcal'는 대한민국을 말 그대로 강타했다. 칼로리와 당류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그만한 리스크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상품은 라라스윗에서 출시한 아이스크림 종류이다. 우리가 먹는 맛있는 아이스크림과 맛은 거의 비슷한데, 칼로리와 당류는 훨씬 낮다! 다이어트를 하거나, 평소 건강에 신경을 좀 쓰는 사람이라면 (물론 그냥 아이스크림보다 좀 비싸기는 하지만) 사먹지 않을 이유가 없는 맛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으로 수많은 건면, ~를 뺀 빵, 다이어터를 위한 음식들이 등장해서 시장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여기서 내 어째보면 어이없는 정직함이 나온다. 나는 365일 다이어트를 하고 있고 칼로리에 민감한 사람이지만, 단 한 번도 다이어트 식품을 찾아 먹으려고 한 적이 없다. 나는 치킨을 먹고 싶으면 전기구이 숯불통닭으로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시원하게 황금올리브 한 마리를 때리고 (!) 다이어트를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내가 목표하고자 하는 바가 있을 때 왕도를 선택하는 건 편법 같기 때문이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가 내게는 공부 외에도 참 많은 측면에 적용되는 셈이다.



 나는 이런 정직함이 나에게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해 왔다. 정직하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솔직히 이 질문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특히 이번 상반기를 지내면서 이 질문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직함과 강박



 정직한 사람들은 다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강박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정직하지 않다는 이유로 어떤 불이익을 입게 될 것이라는 이유가 아니어도, 정직한 것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그 정직함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정직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의 본성은 정직하지 않다고 믿는 개인으로서, 정직함은 되려 인간의 본성에서 반하는 일로 이를 위해서는 강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나 역시도 강박이 꽤 심한 편이다. 정당한 방법으로 어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지만 그 달성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할 때에도 학기 시간표를 짤 때에도 항상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18학점 5전공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후회도 했다. 정직하게 어려운 과목들을 정공법으로 돌파하겠다고 했건만 학기를 거치며 스트레스를 쌓이고 정신 상태도 안 좋아져서 종강 막바지에는 그야말로 울면서 공부하는 (ㅋ_ㅋ)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능력치의 문제도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사실 세상은 정직함만이 유일한 결정 요소가 된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번 학기를 실패한 학기라고 명명하고 싶지는 않다. 힘들었던 만큼 그 과정에서 느낀 점도 많았고, 또 지금 당장은 가시적으로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겪게 된 경험들이 나중에 예상치 못한 방면에서 나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랬기에 그 때의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존재한다. 사실 정직함이라는 것은 참 모호하기 때문이다. 18학점 5전공이 아니더라도 이번 학기에는 내가 신경써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다른 학회라던가, 활동이라던가, 동아리라던가... 이런 것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수업' 하나의 주제에서만 내 강박으로 뭉친 정직함을 표출하고자 했던 점이다.

 정직함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강박은 어찌 보면 두려움이다. 정해진 길을 벗어났을 때,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던 틀에서 벗어났을 때 내가 내 자신에 대한 평을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강박의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학점과 수업이 내가 가지고 있던 '잘 살았다' 의 틀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두려웠을 수도 있고,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다이어트 식품을 먹으면 내가 괜히 지는 게 될까 봐 억지로 먹지 않고 버티는 것일 수도 있다. 정직하게 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직함만이 유일한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정직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째보면 또 다른 나름의 정직함의 틀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가끔은 다른 형태의 한 학기를 보내도 괜찮고, 아이스크림이 너무 땡길 때는 라라스윗 아이스크림을 먹고 더 먹어도 덜 쪄도 된다는, 정직함에서 벗어나도 된다

...

 

 이게 1학기의 교훈이다.

(종강을 했는데 어쩐지 글이 더 짧아진 것 같네요 ㅎ_ㅎ 다음주부터는 좀 더 성의있는 글로...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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