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이 열차는 종착역에 다다랐습니다. 지금 타고 계신 승객 분들께서는 모두 하차해 주시기 바랍니다."
옛날에 우리 집은 지하철 호선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거의 종착였이었다는 소리다. 지하철이 종착역에 다다르면 때로는 직원 분들이 내려와 지하철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등 기차의 마무리를 위한 준비를 한다.
종착역
언젠가는 아무 생각 없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다 종착역에 도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종착역이라는 것은 참 애매모호하면서도 나름의 매력이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버스나 지하철의 종착역은 어느 경계에 위치해 있다. '대중교통'이라는 수단에 비교적 충실하게 유동 인구가 어느 정도 확보되는 곳을 운행하는 대중교통의 특성 상, 종착역은 사람들이 아주 적은 것도 아주 많은 것도 아닌 그 경계의 지역에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각 역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전체적인 특징이 어렴풋이 보인다. 주로 2호선을 타고 있는 나는, 평일 오전 출근할 때는 약간 피곤해 보이는 직장인들의 경우 역삼에서 가장 많이 내리고, 주말 오후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은 강남에서 내린다. 이에 반해 (2호선은 내선순환이므로 끝이 없다... 다른 호선으로 옮겨가 보자) 5호선의 종착역에 가까워지게 되면 역삼이나 강남 같은 비교적 뚜렷한 특색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제각각도 아닌 것이, 적당한 다양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종착역에 가까워지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은 점점 내리기 시작하고, 너무 뚜렷하지도 모호하지도 않은 다양성이 남아 있는 종착역 부근의 색깔은 그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계와 경계를 매개하는 하나의 경계로 작용하는 종착역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 하나다.
마침표
그러다가 문득 마침표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사실 종착역은 언제까지나 종착역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부터였다.
우리 집은 과거 거의 종착역이었지만, 지금은 그 뒤로도 주변 지역이 개발되면서 뒤에 몇 개의 정류장들이 새로 생겼다. 집에서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있는 9호선의 종착역은 지금 9호선 연장 사업으로 여러 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환경이 변하고 어떤 상황이 변한다면 이제 종착역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전의 나에게는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던 '끝'을 표방하는 종착역이 다른 위치로 옮겨 가는 순간이다.
우리가 문장을 쓸 때의 마침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지적받았던 것 중 하나는 쉼표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쉼표가 많은 게 무엇이 문제냐, 라고 한다면 우선 나는 쉼표로 시를 쓰는 게 아니라 문장을 꾸역꾸역 늘렸다. 시험 시간에 '한 문장'으로 서술하라는 지시문을 받았을 때는 써야 할 것만 같은 내용은 많은데 제대로 쓰면 내용을 다 담지 못할 것 같아 수많은 쉼표로 이루어진 기적의 문장을 창조하기도 했다. 아무튼 문장은 좀 짧게 써야 확실히 읽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편하다. 그 후로는 의식적으로 문장을 좀 분절하고 마침표를 쓰고자 했다.
생각해 보면 종착역도 나에게는 하나의 마침표로 다가온다.
쉼표로 계속되어 왔던 상황 속 지금은 이 문장을 끝내기 위해 점을 찍었으나, 사실 뒤에 어떤 문장이 추가로 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큰 이변 없이 다른 글쓰기로 넘어가서 지금의 종착역은 그대로 마침표로 남을 수도 있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종착역과 마침표는 확실하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타고 있는 지하철의 종착역은 계속해서 종착역이자 마침표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문장의 덧붙임으로 새로운 종착역으로 옮겨 가게 될까?
여러분에게 종착역의 정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