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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Feb 23. 2023

놀랍고 아름다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작가 작품



SF 소설보다는 고전을 더 좋아하는 나지만, 읽으면서 몇 번이고 울 뻔했던 나의 인생작을 꼽으라면 단연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선정하겠다.


이 책은 단편 소설 6편 정도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이야기는 우주를 배경으로, 지금으로서는 현실적이지 않은 곳들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러 단편 중에서 특히 나의 애정이 향하는 2개의 단편을 소개해 보겠다.


(책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스펙트럼          

주인공 희진은 우주비행사이다. 30대의 그녀가 우주에서 조난당한 후 처음 만나게 된 다른 종족. 


그중에서도 '루이'는 희진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다른 종족 사이에서 마음만 먹으면 해칠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한 희진을 챙겨주고, 보살펴 주며 이들은 어느덧 사랑이라면 사랑인 감정을 키워 나가게 된다.


허나 루이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바로 몇 년 이내에 죽음과 탄생을 반복한다는 것! 이전의 루이는 죽고, 루이의 기억을 가진 또다른 루이가 희진을 찾아오게 된다. 처음의 희진은 이해하고 싶지 않아한다. 설령 기억이 같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존재를 루이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방황하던 희진은 몇 번의 회귀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루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시간도 흘러, 외계의 종족이 희진이 머물던 행성을 습격하고, 난리통에 희진은 틈틈이 수리해두었던 우주선을 타고 행성을 떠나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어느덧 나이가 든 희진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지만, 구체적인 위치나 증거가 없는 탓에 사람들은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진의 손녀만은 그녀의 기억을 신뢰한다. 인간이 다시 루이의 종족과 마주하게 된다면 다른 상황에서의 재회일 것이기 때문에, 루이의 종족을 지켜주고자 하는 의도임을 알기 때문이다.


말년의 희진은 루이가 남긴 색채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희진의 죽음 이후, 희진의 손녀는 루이가 남겼던 색채 언어가 그려진 종이를 모두 불태우며 누구에게도 침범받지 않는 그들만의 온전한 추억으로 남겨두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스펙트럼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울컥했던 부분은 맨 마지막, 희진이 유일하게 알아 낸 루이의 색채 언어였다. 


루이는 희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루이와 희진이 서로 사랑에 빠졌고, 연인 관계라는 설정은 공개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들을 보면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꼭 반지를 나누어 끼지 않아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 않아도 서로를 향한 행동과 생각은 이미 사랑이라고 말해주는 듯 하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이 이야기와 비슷한 영화가 하나 있다. <뷰티 인사이드>이다. 아직 영화로 보지는 못했지만, 매일매일 바뀌는 외면을 가진 남자와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떤 날에는 아저씨로, 멋진 청년으로, 또래의 여자로 나타나는 이 남자와의 관계를 그린 영화는 제목 그대로 '아름다움은 그 안에 있다'고 말해준다.


그럼 다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고 기록한 루이의 말에서 나는 그가 사랑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서커스에 가서 묘기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 놀라움을 느낀다. 눈에 띄게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아름다움을 느낀다. 놀라움과 아름다움은 따로 떨어져 있을 때 사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놀랍고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면 그건 사랑이 아닐까? 묘기를 부리지 않아도 그 사람의 행위가 놀랍게 느껴지고, 절세가인이나 조각미남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면 그것이 사랑이 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루이와 희진이 서로를 '사랑'했다고 명시하지는 않았으나, 마지막 루이의 문장에서 루이가 희진을 사랑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스펙트럼'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개했을까? 스펙트럼은 구분할 수 없는 존재이다. 빨간색이다가도 조금씩 노란색으로 바뀐다. 이 색이 정확히 어떤 색인지 짚어 말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스펙트럼은 참 어렵다. 또한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다. 뚜렷한 경계를 정할 수 없는 색들이 모여 하나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참 매력적이다. 뚜렷하게 달랐던 루이와 희진이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서로의 색으로 스며들어가게 된 것처럼 말이다.



2. 공생 가설

인류가 모두 같은 곳에서 왔다면 어떨까? 말도 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직 남아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흩어져, 나중에는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되는 고향을 가졌다면 어떨까?


이 이야기에서는 류드밀라의 행성이 그렇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대상으로 번역 연구를 하고 있는 한 연구실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한다. 사람들에게 왠지 모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류드밀라의 그림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서로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립다' '여기는 너무 낯설다' 의 반응들. 처음에는 기계의 오류겠거니 했지만 점차 류드밀라의 행성이 얼마나 그럴듯한 이야기인지 밝혀진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화가 류드밀라는 평생을 외롭게 살아 온 인물이다. 모든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과는 다르게, 홀로였던 류드밀라는 아직 자신의 몸속에 남아 있는 고향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들을 그림에 담아내고 있었다.


고향을 담아낸 류드밀라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왠지 모를 향수감에 젖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그리움은 그녀를 유명한 화가로 만들어 주며 <류드밀라의 행성>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류드밀라의 행성?


이유 모를 감정, 특히 그리움에 젖어 본 일이 있을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어쩌면 류드밀라의 행성과 공생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은 대략 4세 이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런 것 같다. 태어나서 약 4년, 나는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경험을 했을까?


내가 경험했지만 기억할 수 없는 순간, 그 순간에 또 다른 나의 고향이 나와 함께해 주었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언제든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고향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생긴 기분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든 생각은 아이와 두발자전거 같다. 아이는 처음에 자전거를 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위태로운 자전거 실력이지만 이때 항상 뒤에서 들려오는 말이 있다. 


"아빠가 잡고 있어! 엄마가 보고 있어!"


이 한 마디에 아이는 조금씩 페달을 구르기 시작한다. 네발 자전거부터 두발 자전거에 이르기까지... 초반의 아이는 끊임없이 확인하려고 한다. 계속 붙잡고 있는 거 맞아? 부모는 계속 붙잡으며 아이에게 페달을 밟으라 말한다.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아이는 이내 혼자 자전거를 능숙하게 타기 시작한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의 자전거 뒷부분을 잡았던 손을 서서히 놓는다.



류드밀라도 그런 것 아닐까..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를 위해 잡아 주었지만 이제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아이를 위해 자전거에서 손을 떼고 응원해 주는 부모처럼 말이다.


3. 간단한 마무리


SF 소설을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는 나에게 이 책은 뜻깊다.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기도, 하나의 스토리를 잘 풀어나가는 능력이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 단편소설은 파편이다. 고전소설의 대부분이 장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단편은 어딘가 잘려나간 느낌이다. 단거리 달리기로 빠르게 기승전결을 향해 달려가는 느낌! 그래서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은 놀랍고 아름답다! 아마 난 이 책을 정말 사랑하는가 보다. 놀랍고 아름다운 파편의 매력에 다시 한 번 흠뻑 젖어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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