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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Mar 06. 2023

늘 그렇듯 [오만과 편견]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고전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오만과 편견>을 말하곤 한다. 


책 읽는 걸 꽤 좋아하면서도 n회독 해 본 책은 손에 꼽지만, 이 책만큼은 적어도 5번 이상은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책 <오만과 편견>, 오늘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책 내용의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음 - 줄거리 요약이 좀 기네요!)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베넷 가의 다섯 자매 중 둘째이다. 학문을 사랑하지만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는 아버지 베넷 씨와 아름답지만 경박하고 속이 깊지 못한 베넷 부인, 출중한 외모와 선한 마음씨를 가진 첫째 제인, 지식을 뽐내기에 급급한 셋째 메리, 철이 없고 우유부단한 넷째 키티, 그리고 가장 가볍고 시끄러운 막내 리디아까지.


이들은 영국의 시골 롱본에서 살아가고 있는 도중, 옆집에 아주 근사한 신사 '빙리 씨'가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후 사랑에 빠지게 된 빙리 씨와 첫째 제인 외에도 나름의 관계는 싹트고 있었으니. 바로 빙리 씨의 친구 다아시 씨와 둘째 엘리자베스다. 다정다감하고 유쾌한 빙리 씨는 모두의 호감을 얻지만, 딱딱하고 차가워 보이는 다아시 씨는 이내 사람들의 비호감이 되어 버린다. 이는 엘리자베스도 마찬가지! 한편 선량해 보이는 군인 위컴과 엘리자베스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게 된다.


어머니의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는 제인은 선하지만 속내를 잘 비추지 않아 친구를 아끼는 다아시 씨의 의구심을 돋는다. 결국 빙리 씨의 누이들과 다아시 씨의 계획으로 제인과 빙리 씨는 멀어지게 되고, 제인은 크게 상심한다. 


이 때 베넷 가에는 그들의 한정상속 대상인인 콜린스 씨가 찾아온다. 목사직을 맡는 콜린스 씨는 베넷 가의 여식 중 한 명과 결혼할 생각으로 방문하게 된 아둔하고 편협한 인간이다. 첫째 제인을 제외하고 가장 적절한 사람은 엘리자베스였기에 그녀에게 청혼하나, 그녀는 기겁하며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둘째 엘리자베스가 평소에도 썩 예쁜 딸은 아니었던 베넷 부인은 그런 그녀를 힐난한다.


콜린스 씨는 이내 방향을 바꾸어 엘리자베스의 친구 샬럿과 결혼한다. 외모가 뛰어나지도 않아 노처녀로 늙어 죽을까 결혼하던 그녀는 남편감을 얻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결혼 후 집을 떠난다. 친구의 선택에 실망했으나 그녀와의 우정을 놓을 수 없었던 엘리자베스는 샬럿의 신혼집에 몇 주간 머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아시 씨의 친척인 드 버그 영부인과 몇 차례 만남을 가진다. 이미 엘리자베스에게 푹 빠져 있었지만 티를 내지 않던 다아시 씨 역시 드 버그 영부인의 집으로 오며 엘리자베스와 마주치게 되고, 떠나기 직전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평소 다아시 씨를 싫어했던 엘리자베스는 단칼에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위컴과 제인의 일을 들며 거절한 그녀에게, 다아시 씨는 장문의 편지를 적어 그녀에게 해명을 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 선량한 줄 알았던 위컴의 추악한 실체가 드러나고, 이에 반해 다아시 씨의 선량한 모습을 알게 되며 엘리자베스는 갈등에 빠진다. 여기에 위컴과 리디아의 도피 사건과 제인과 빙리 씨의 만남, 일련의 사건들을 거쳐 마침내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1. 오만


다아시 씨는 훌륭한 외모와 엄청난 집안이라는 대단한 배경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다. 첫만남에서 사람들은 그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이내 딱딱하고 쌀쌀맞은 그의 태도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엘리자베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의 오만한 태도를 지적하며 그를 '친해지고 싶지 않은 부류'라고 여긴다.


하지만 내용이 전개되며 더 깊이 그를 알수록 다아시 씨가 꽤 괜찮은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는 빙리 씨처럼 다른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면 다아시 씨가 짠해지기까지 한다. 다른 사람들만큼 적당한 가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자신이 가장 혐오하는 남자 때문에 미움받는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일까!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이해되기도 한다. 물론 여기서 그를 멋대로 오해하고 음해한 사람들을 칭찬해 주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아시 씨는 그 존재 자체로 다른 이들보다 앞서 있는 인물이다. 옛말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성숙하거나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 앞에서 먼저 숙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관계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내가 봐 온 것들, 혹은 들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생각해본다면 그럴듯하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훨씬 잘난 사람을 보았을 때, 크게 세 부류로 나뉘게 된다. 아예 동경하거나, 무관심하거나, 싫어하거나.


하지만 누구나 동경할 만큼 대단한 사람이 되기는 어렵고,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연예계 뿐만 아니라 직장 동료, 학교 생활 내에서도 하나의 가십은 사람들을 설레게 만들고, 그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기에 일쑤이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대부분 싫어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나와 같은 레벨이 아니라는 이유로,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은 미워해 버리겠다는 '여우와 신포도'처럼 말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많은 것들을 가질수록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아시 씨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는커녕 미움을 사게 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 다아시 씨는 자신을 낮추지는 않아도 결코 높이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집안이 얼마나 대단한지, 수입은 얼마나 높은지도 말하지 않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출발선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볼 떄에는 이미 자신을 높인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이게 그를 언짢은 사람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의 '오만'은 '낮추지 않음'과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사람들에게 가진 것을 탐하려는 호감 외에 진심어린 호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낮추지 않음은 다른 이들에게 오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아시 씨와 같은 사람들은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자신을 낮추는 것은 그닥 유쾌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낮춤'은 무자비한 자기 비하도 아닌 듯하다.


그래서 나는 자기 자신을 잘 낮출 줄 아는 사람이 진정 멋있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낮은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신감! 이렇게 쓰면서 나 역시도 아직 제대로 해보지 못한 '고개 숙이기'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2. 편견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그를 미워하게 된다. 반면 위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편견을 가지며 그를 옹호한다.


편견은 음의 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기 전부터 내가 만들어 놓은 가상의 이미지 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편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편견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음의 방향으로의 편견이다. 이건 우리가 가장 잘 아는 방향의 편견의 정의에 가깝다. 첫인상이 별로다, 들리는 소문이 별로라는 이유만으로 직접 한 사람을 겪어보기 전에 벽을 쳐 놓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말과 같이 편견이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인상이 실제로 다가오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편견은 합당한 명제가 될 수 없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수많은 반례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사례는 스터디였다. 내가 스터디를 꾸릴 때, 한 스터디원이 평소 열의 없이 참여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가뜩이나 인원이 많지 않은 스터디에서 한 명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스터디의 분위기에도 악영향을 미칠 터, 시작 전에는 걱정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스터디원은 한 학기 동안 진행되었던 집현 내내 빠진 적 없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 주었다. 물론 정말 고퀄리티였다! 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스터디원으로서의 역할은 충실히 해 주었다. 워낙 기대치를 낮추고 그 친구를 바라보니, 오히려 그런 친구의 모습이 더 고맙게 다가왔고 더 적극적으로 리액션을 해 주며 선순환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음의 방향으로의 편견'은 긍정적 기제로도 충분히 작용할 수 있다. '가성비'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싼 값에 기대하는 서비스의 정도보다 조금만 더 나으면, 사람들은 이 제품이 꽤 괜찮다고 여기게 된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소문이든, 첫인상이든 별로 긍정적이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는 그대로 나쁜 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가성비'처럼 낮은 기대 속 그 사람의 괜찮은 면면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 사람을 대하는 나 자신의 만족도도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양의 방향으로의 편견이다. 이런 편견을 떠올리면 '연예인' 들이 떠오른다.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는 연예인들은 이슬만 먹고 살 것 같다. 그들의 집을 호텔처럼 깔끔하고, 언제나 세팅된 머리와 자다 일어나도 침 한 방울 안 흘릴 것만 같다.


하지만 이따금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모습은 처참할 정도로 우리네와 같다. 아침에 팅팅 부은 얼굴로 냉장고를 열어보고, 운동하는 걸 귀찮아하고, 많은 염색을 하느라 머리는 세팅하지 않으면 부스스하게 올라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그들의 '컨셉'을 바탕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자신의 편견에 연예인의 외모를 빌려 원하는 이상향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청순하고 조용한 이미지의 연예인이지만, 실제로는 선머슴 같을 정도로 털털한 경우 소속사에서 '신비주의 컨셉'을 잡으며 기를 쓰고 연예인의 이미지를 만드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편견은 그들에게 돈이 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편견이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닌 것처럼, 다른 사람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게 되는 양의 방향으로의 편견 역시 좋은 점만 있지는 않다.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10번 중 9번 오케이 해주던 사람이 1번 '노'를 외치면 9번의 오케이는 까먹고 더 섭섭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 때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이상향을 덧씌우지 말자. 긍정적으로 바라바주되, 거기에서 나의 편견을 뺄 줄 아는 것이 나와 상대방을 지킬 수 있는 안전선이 될 것 같다.


3. 오만과 편견


이렇게 오만과 편견에 대해 떠들었지만 나 역시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좋은 관계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때도 많았다. 그리고 사실 인간관계에서 이들을 떨쳐 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를 완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성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계속 수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이를 계속해서 의식하고 고쳐 나가려는 행동은 주변인 뿐 아니라 나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콤플렉스를 자신의 개성으로 승화시킨 사람들이 있듯이, 이 오만과 편견을 무조건 없애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는 잘 사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처사인 듯 하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서로의 오만과 편견을 깨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와 같은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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