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사람은 누구나 불운의 순간을 마주한다. 경중은 다르겠지만 어쨌든 불운은 닥친다.
불운이란 무엇인지 엄밀하게 정의내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불운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이게 궁금해진 이유는 별 건 아니고 그냥 오늘 내가 나름의 불운을 마주했기 때문ㅋㅋ..
오늘은 다운타운에 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브런치 식당에 친구랑 프렌치 토스트를 먹으러 갔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perfect brunch라고 했으나 사실 그렇게까지 perfect한 날은 아니었다. 이날의 불운?을 나열해 보자면..
사이드 메뉴로 베이컨을 시켰는데 소시지가 나왔다. 그러나 그냥 먹었다.
다 먹고 브랜디멜빌에 귀걸이를 사러 갔다! 지난 번에 괜찮아 보였던 귀걸이를 사고 재미있게 수다를 떨면서 버스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왔는데, 도착하자마자 내 귀걸이가 double charged된 걸 알아차렸다.. 매장에 전화해 보니 직접 오지 않는 이상 우리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그게 안 되면 고객센터에 전화하거나 메일을 보내라는 답변밖에 받지 못했다.
국제우편을 보내고 꼬박 10일이 걸리는 미쿡^^답게 주말에 고객센터가 할 리가 없었고,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찝찝하게 문제를 끌고 있는 게 싫어서 버스를 타고 꼬박 30분이 걸리는 다운타운으로 다시 갔다가 돌아오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다운타운.. 막상 매장에 갔더니 영수증에는 quantity가 1로 적혀 있다며 그럼 우리 매장 잘못은 아닌데? 이걸 결제한 bank에 연락해야 할 듯ㅇㅇ 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아뉘그럼왜직접오라고한건데????
다시 20분 동안 버스를 기다렸다가 30분을 달려서야 비로소 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었던 뺑이데이였던 것
나는 좋게 말하면 규칙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루틴에 집착하는 인간이다.
이날도 브런치 다 먹고 아파트 오니까 2시 정도 되길래 조금 쉬었다가 평소 루틴대로 유산소 하러 가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이중결제 건으로 다운타운에 다녀오게 되면서 이 루틴이 제대로 틀어졌다!! 거기다 문제도 해결이 안 된 상태니까 이날 오후 내 마음은
돌아오자마자 다시 다운타운 다녀와야 한다 - 루틴 틀어진다 - 가뜩이나 오늘 유산소 많이 하는 날인데 - 그럼 저녁도 밀리고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부루퉁했다. 아 오늘 대 뺑이네 라고 중얼중얼거리면서 속으로는 각종 불평불만을 쏟아내다가 엄마아빠한테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켜서 오늘 있었던 일을 보내려는데
내가 겪은 불운을 있는 그대로 툴툴거릴 필요가 있나 싶었다.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건 맞지만 굳이 그 불운을 가감없이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해서 이 상황이 나아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지난 쿼터 연기 수업에서 했던 활동인 ‘cup in the head’가 떠올랐다.
부정적인 상황 하나를 가정해 보고, 그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법한 부정적인 문장 5가지를 떠올린다. 5명의 학생들은 그 문장에 맞추어 몸짓과 말로 문장을 표현한다.
이후가 제일 중요한데, 같은 문장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게 한다. 인생이 뜻대로 안 될 때 —> 술을 퍼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면 이걸 긍정적인 문장으로 치환해서 표현해 보는 것 시간이 좀 지나서 나도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이 활동을 통해 내가 느낀 건 두 가지였다.
1) 우리는 이런 스트레스와 불운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 상당히 가혹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스트레스 받을 때 떠올리는 문장들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까 너무한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인지는 알겠으나 이 정도까지 반응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이 불운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너무 필터 없는 입력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그리고 이걸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꽤 다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다.. 기존의 부정적인 문장들을 긍정으로 치환하면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보법이 살짝은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엄마아빠에게 연락할 때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 라고 보내면서 마지막에 ‘그러나 이런 날도 있는 것이겠지예‘
문장을 하나 보냈더니 이전보다는 좀 더 편안해진 느낌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 루틴대로 흘러가는 하루가 있다면 살짝 삐그덕거리는 하루도 있는 것
또 이런 날이 있으니까 저런 날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전히 내 이중결제는 해결이 안 됐고 매장 직원들의 묘한 성의없음??과 버스 타고 다운타운을 왕복한 내 뺑이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객관적 상황 자체는 그대로지만 마음은 조금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어떤 불운을 마주했을 때 그걸 필터링 없이 소화하며 스트레스를 왕창 받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말해 준다는 느낌으로 상황을 마주하는 자아와 그걸 해석하는 자아를 분열?시켜서 조금 naive하게 소화해 볼 수 있다면 같은 상황이어도 좀 더 나은 정신건강으로 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람을 이걸 정신승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전 오늘 승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