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코로나 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여러 신조어들이 생겼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말은 ‘마기꾼’이었다.
마스크를 쓰다 보면 하관을 볼 수 없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마스크를 썼을 때는 예쁘거나/잘생겨 보이지만 실제로 마스크를 벗으면 엥? 하게 되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었다. 뭐 이런 마기꾼들은 속이고 싶어서 속였겠나 싶지만.. 나도 이런 경험이 꽤 있었다. 딱 고등학교 1학년 때 코로나가 터져서 새로운 친구들을 마스크를 낀 채로 봤었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그 친구들이 마스크를 벗은 걸 보고 내가 긍정/부정 어느 쪽으로든 내가 생각했던 얼굴과는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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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마기꾼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Kamatani et al. (2021) 연구에서는 일반적인 마스크 착용 조건에서 사람들은 가장 높은 매력을 느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는 마스크가 얼굴의 하관 (입, 턱 등) 을 가리면서 관찰자가 상상으로 결점을 보완하거나 이상화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Orghian & Hidalgo (2020)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에서의 핵심 개념 역시, 얼굴의 일부가 가려지면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평균 이상으로 추정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얼굴 부분을 실제보다 더 대칭적이고 더 매력적으로 상상함을 나타낸다.
역으로 코로나 초기 ’의료용’ 마스크의 경우 감염 위험이 있어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으나 (Patel et al., 2020) 이건 특수한 상황이므로 논외로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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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심리학적 연구 결과로 뒷받침된 이 현상은 결국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한 인간의 ’상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 대해, 우리는 가장 좋은 것들로만 상상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마스크를 벗고 나면 실망한다. 결국 우리의 상상은 하나의 캐릭터를 창조해 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정보 (마스크 위의 얼굴) 를 바탕으로 나의 상상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위의 연구는 마스크를 쓴 얼굴을 주제로 진행되었지만, 사실 이런 마기꾼은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느낀다. 특히 나는 그렇다 !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대개 잘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편이었다.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얼굴 / 성격 / 능력 어떤 면이건 내가 좋다고 느낀 사람이기에 친해지고 싶다고 느끼긴 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친해지려고 했다가 내가 원하지 않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아주 멀찍이서 바라 본 그 사람의 모습에다가 내가 생각하는 온갖 이상적인 요소를 짬뽕시켰고 그 이미지를 좋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모습을 빌린 내가 만들어 낸 이상적인 캐릭터를 동경했던 것 같다.
어차피 다가가서 친해지게 된다면,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게 된다면 적어도 한 부분에서는 맞지 않게 될 것이고, 그럼 나는 실망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냥 내가 원하는 긍정적인 감정 그대로를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연예인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대박이 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큰 인기를 얻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건 그 사람 자체로서의 인기라기보다는, 그 작품 속 연예인의 외형 + 시청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대본의 대사와 행동의 결과이다. 우리는 연예인을 보면서 종종 그 사람의 외형을 빌린 나의 이상적인 이미지를 주입하고 그 모습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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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태도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아서였는지, 반대로 나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이런 점을 참 많이 의식했었다.
나랑 친한 사람들은 내 어떤 면면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을 것이다. 사람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 나의 모습은 조금씩 다를 것이고.. 그런데 내가 내 모습을 너무 드러내다가 그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모습까지 보여주면 어떡하지? 과연 그때도 사람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줄 수 있는가?
내가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했던 것처럼, 반대로 나와 친한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워서 내 속 이야기/찬반이 갈릴 만한 이야기는 슬금슬금 피했다. 누군가는 내가 자꾸 벽을 친다고 이야기했는데, 친해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실망시키기 싫어서였다.
가끔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블로그에 글을 쓸 때도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사람은 나의 어떤 이미지를 보고 긍정적으로 여기고 있을까, 내가 하는 이 말이 그 사람 입장에서 깨지는 않을까? 괜히 자기공개를 해서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라고 하기에는 지금은 내 기준 자기공개를 너무 잘 하고 있지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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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나 싶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 글과는 조금 다른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선 마스크를 벗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적어도 실망의 위험은 줄어드는 것이니 금까지는 아니어도 똥은 아닐 것이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있는 게 가장 최선의 방법인가 라고 자문을 해 보면 적어도 나의 자답은
depends ~
때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게 나을 때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의 모든 생각/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힘들다. 나 또한 모든 사람들의 맨얼굴을 딱히 보고 싶지는 않음…. 사회적 상황 속에서 그 관계의 거리에 따라 어느 정도는 침묵을 지키고 마스크를 쓸 수 있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고 여기기는 하지만
또 때로 정말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에게 실망의 위험을 안고서라도 한 발 다가가 보는 것, 나를 긍정적으로 봐 주는 사람들을 위해 실망하면 어쩌지 라는 두려움을 조금은 내려놓고 나의 말을 들려주고 나의 마스크를 벗을 줄도 아는 것도 필요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스크 낀 나의 모습만을 보고 사랑해준다면, 내가 마스크를 쓴 모습을 사랑하는 건지 / 맨 얼굴까지도 사랑하는 것인지 몰라서 자존감이 더 낮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상의 일면만 보고 부풀린 환상 속에서 덧씌운 이미지를 동경하다 보니, 정작 그 사람의 맨얼굴을 보고 나서는 실망하고 뒤돌아서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 사람의 모르는 모습을 단정지어 폄하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보다야 긍정적인 시선이 낫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도 상대방을 위해서도, 내가 확실히 볼 수 있는 그 사람의 모습과 내가 상상한 이상적인 이미지의 모습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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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결론은
모든 상황에 적용 가능한 일관된 방법은 없다!
사람과 세계는 너무 입체적인 것이어서 하나의 정답으로 모두 귀결시킬 수는 없지만,
마스크를 끼고 벗을 때를 적당히 조절할 줄 아는 것, 타인에 대한 나의 인식에는 나의 상상이 가미되어 있음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마기꾼이라는 웃기면서슬픈 용어와는 달리 말과 사고 그리고 행동은 가변적인 것이니 이런 부분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장할 수 있다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