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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사이클과 롤러코스터

어바웃 시리즈 2

by 싱가

사람은 유치하고 미숙한 어린아이로 태어나 성숙의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었다가, 다시 어린아이같은 노인이 된다고들 말한다.

시간이 너무나도 느리게 흐르던 어린 시절을 거쳐 순식간에 청춘과 중년기를 보내고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는 노년기를 겪는다고들 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인생은 하나의 사이클을 반복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랐다가 익을수록 벼를 숙이며 다시 낮아지는 벼와 같이, 사람의 인생도 그 고저를 반복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비단 개인의 인생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이클‘이라는 개념을 우리의 삶과 연결시키기 시작한 것은 <대지>라는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였다. 방대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은 무려 4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읽은 지 오래되어 상세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정말 가난했지만 성실했던 1대부터 시작해 한 집안이 어떻게 부를 이루고 풍요로운 가정을 일구었다가, 그 후손들의 우둔함과 오만함으로 다시 몰락해가는지의 과정을 성실히 기술한 책임은 기억이 난다. 어떻게 받은 것 하나 없이 가난 속에서 부를 이룰 수 있었을까? 보다 더 궁금했던 건 후손들의 무능함이었다. 왜 선조들이 힘들게 일군 부를 후손들은 지탱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변을 생각해 보았다. 1대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서서히 가정을 풍족하게 한다. 2대의 자손은 그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라며 부를 일구기 위해서 어떤 요소들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이를 테면 근검절약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3대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가난을 체험하지도 공감하지도 못하는 이들은 근검절약의 필요성을 느끼기 힘들다. 4대는 더하다! 그들과 가난의 교집합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들이 부를 일굴 수 있었던 요소들을 등한시하게 되며 가문은 쇠락해 간다.

어쩌면 이런 과정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점이 있으면 저점도 수반될 수밖에 없고, 동시에 저점은 고점을 수반한다. 이 책 속에서는 그걸 한 가문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개인 차원의 사이클을 살펴 보자.


사람들은 어떤 사이클 안에서 일생을 살아가는 듯 하다. 좋은 때도 있고, 안 좋은 때도 있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다.

인생의 시기마다 각각의 사이클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는 조금씩 다를 수 있겠으나, 큰 틀 안에서는 하나의 사이클일 것이다. 그리고 각 순간마다 우리는 롤러코스터에 탄 것마냥 긍/부정적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사람의 삶이 하나의 사이클의 형태를 가진다는 것까지는 이해했으나, 나에게 여전히 어려웠던 부분은 각 지점에서의 롤러코스터라는 개념이었다.

나는 오로지 나 혼자의 롤러코스터에만 탑승해 있었다. 내가 기쁜 순간, 힘든 순간에 대한 이해는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과의 롤러코스터를 비교하면서부터는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사진이 없네요

대표적인 예시는 ‘네포 베이비’라고 불리는 금수저들의 이야기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 이 용어는 참 유명한데, 말 그대로 셀럽인 부모님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연예계에 화려하게 데뷔하는 ‘스타 2세’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할 수 있고, 연예계의 거물을 ‘엄마/아빠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다. 본인은 ‘치열한 노력을 통해’ 연예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의 ‘치열한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과연 ‘본인의‘ 치열한 노력을 통해서였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신인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쇼에 서고, 오디션을 보지 않고도 캐스팅이 되는 건 분명히 오롯이 본인의 노력이라고 하기에는 힘들다.

그래서 대중들은 이런 네포 베이비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감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네포 베이비들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눈물을 흘리며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스스로를 입증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배부른 눈물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시선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네포 베이비들을 싫어한다!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누리는 기회 때문에 다른 신인의 자리가 하나 줄어들지 않았을까? 과연 똑같은 스타트에서 시작했다면 그들이 지금의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고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기본값이었다.


그런 생각이 최근 몇 년 사이 아주 조금씩 바뀌었다. 네포 베이비들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느꼈던 힘듦은 힘듦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사람들마다 롤러코스터의 높이는 아주 다르다. 누군가는 이미 높은 위치에서 시작해 끝도 없이 올라가다 잠깐의 내리막을 만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낮은 위치에서 간신히 출발했다가 아래로 곤두박칠 수도 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는 이 둘의 ‘저점‘ 구간 높이는 확연히 다르지만, 어쨌든 각 롤러코스터에 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내리막이다. 그들은 정말로 ‘내리막길‘ 혹은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차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배부른 눈물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게 만들었겠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우리의 시선과 위치에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금수저라는 단편적인 예시를 들었다.

그러나 금수저들에게 ‘이미 너희는 충분히 높으니 찡찡거리지 말고 감사하게나 살아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 사람도 나름 힘든 거니까 그 사람의 힘듦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현재 자신이 얼마나 높은 지점에 있는지를 떠나 본인의 힘듦만을 우선시하는 것은 미성숙과 공감의 부재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높이를 고려하며 나의 힘듦만을 피력하지 않을 수 있는 건 공감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공정한 출발과 높이를 원하지만, 사실 모두는 다른 높이에서 출발하고 다른 고점을 경험한다.

모두가 같은 상태에서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적어도 그 차이가 서로에 대한 혐오와 미움으로 번지기 이전에 진정으로 필요한 방법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고려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고점과 저점은 있으니 지금 내가 고점이라고 해서 자만하지 말고, 저점이라고 해서 의기소침해지지 않을 것

한 개인의 인생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사이클 내에서 개개인의 고점과 저점을 오가며 본인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성숙한 개인의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생각을 글로 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전체적으로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정리하자면

- 사람은 롤러코스터처럼 다양한 고점과 저점을 반복한다고 생각

- 하나의 사이클처럼

- 그러나 각 롤러코스터의 높이와 선로는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정한 위치에서 비교하기 불가능

-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위치를 무조건적으로 재단할 수 없고 나의 위치가 무조건적으로 이해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x

- 고점이라고 오만해지지 말고 저점이라고 낙심할 필요 없다

- 잘 살자


어렵습니다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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