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10대에게 사춘기가 있다면 20대에게는 이십춘기가 있다. 20대 중후반,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시기가 되면 대개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어른으로서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시기
어쩌다가 이 시기에 20대의 사춘기라고 불리는 ‘이십춘기’ 가 흔히 도래하게 되었을까?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대략적인 이십춘기는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태도에 돌입해 취직을 준비하거나, 취업에 성공했다면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래들에 비해 늦은 느낌을 받거나 / 나는 딱히 무언가를 준비해 둔 것이 없는데 정말로 사회에 대해 나가야 할 때 / 아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생계를 위한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때 등등 변화와 혼란, 성장통이 교차하는 시기 라고 아주 대략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인스타그램의 한 만화로 이 용어를 제일 처음 접했는데, 그 만화의 내용 중 와닿았던 부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자동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시기가 끝났다‘ 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유치원-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삶의 대부분을 업그레이드하며 살아왔는데, 이십춘기가 시작하는 시점에는 더 이상 명시적인 업그레이드가 없어지며 혼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다.
생각보다 ‘업그레이드’라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걸 해내지는 않았더라도 가시적인 업그레이드가 보이는 순간, 어느 정도의 자기효능감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기분좋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그게 부담감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다.
그렇게 평생을 대략 1년에 한 번씩 당연한 업그레이드를 겪다가 자동 업그레이드 기간이 끝나 버린다면? 이전 나의 성장 지표는 자동으로 갱신되는 학년과 나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어떤 일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몰두하지 않는 이상 잘 나타나지 않는다.
거기다 내 주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간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해지는 시기가 바로 이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전에도 친구들과의 차이는 나타났을 수 있다. 서로 다른 계열의 고등학교에 갔을 수도 있고, 이과/문과/예체능이 나뉘어 다른 전공을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다름‘은 사실 큰 시스템 안에서 두고 보면 아 ~ 주 큰 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대와 공대가 배우는 학문은 많이 다르지만 벚꽃의 꽃말이 중간고사인 건 비슷비슷하다. 같이 개강을 하고 종강을 외치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르긴 한데 그렇게까지 다르지는 않았던 이전의 상황들에 비해
직업의 선택에서부터 그 생활과 기타 양상들의 차이가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비단 직업의 유형으로만 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주변에는 결혼을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수도 있다. 차가 있는 사람과 차가 없는 사람으로 나뉠 수도 있고, 직업적 측면에서 보면 워라밸과 연봉과 같은 기준으로도 나뉠 수 있다. 자동 업그레이드 서비스는 끝났는데 사회에서 수많은 업그레이드를 요구한다면, 그리고 취업난을 비롯한 저성장 국가에서의 악재를 감당해야 하는 20대의 입장에서는 이십춘기가 안 오고 배길 수가 없지 않을까!
나는 이십춘기를 겪지 않았지만 (20대 초반) 자동 업그레이드의 종료는 큰 타격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취업 등 사회초년생으로서의 출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요즘 인사관리의 트렌트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 ‘지나친 계급화의 방지’로 직장 내에서의 직위를 단순화하고, 뚜렷한 ’승진‘의 개념이 이전보다 희미해진 추세이다. 그렇다면 나의 공로를 인정받는 ’직위 업그레이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이전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현재, 업그레이드를 하고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소속감은 줄어들고 +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자기 효능감 혹은 업그레이드를 경험할 순간이 적어진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리적인 안정을 갖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십춘기에 대해서 쓰다가 생각한 거지만, 나는 이십춘기에서 ‘자동 업그레이드의 소멸’이라는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했는데
지금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시간이 흘렀을 때 삼십춘기, 사십춘기도 더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3,40대의 이미지는 취업을 하고 난 후 결혼을 하고 본격적으로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최근은 결혼을 하지 않고 /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를 갖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출산율은 더욱 떨어졌다. 나는 자녀를 낳고, 그들이 자라면서 앞서 말했던 초등학교-중/고등학교-대학교 등 자동 업그레이드 단계를 거치는 것이 그 부모에게도 일종의 간접 자동 업그레이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가 삶에서 사라진다면 이런 유형의 사람들 역시 자아정체감이나 성장의 측면에 대해서 느끼는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해서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나 상황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그럼 뭘 해야 하지
조금은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해 낸 나만의 방법은 그냥 루틴 만들기였다.
업그레이드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자기 효능감이라고 생각했기 떄문이다. 내가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구나! 내가 또 1년을 견뎠구나! 성장이다 라고 느끼는 것은 개인으로 하여금 어떤 과제나 행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낼 수 있는가에 관한 개인의 신념인 자기 효능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과정에서 사회로부터 획득하는 자기 효능감이 적어진다면, 적어도 나 스스로 자기 효능감을 부여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개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루틴일 것이다.
물론 자격증 취득이나 스펙 쌓기, 시험 통과 등 더 다양한 방법도 있지만 이 방법들은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처럼 자기 효능감도 그 크기보다는 횟수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루틴의 예시는 다음과 같다. 매일 9시 이전에 일어나기, 일정 체중범위 내에서 유지하기, 하루에 30분 운동하기, 배달음식은 1주일에 n회 이하로 제한, 단어 n개 외우기, 수업 그날그날 복습하기 등
아주 대단한 것들은 아니지만 즉각적으로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시작하면 쉽지 않은 세상으로부터 깎이기 일쑤인 자기 효능감을 조금이나마 보전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교환학생 생활이 막 시작되고 심적으로 힘들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자기 효능감을 확인할 기회를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몰랐던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과제를 하고, 동아리/학회를 하고, 학점을 받는 것으로 내 효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학점도 딱히 아니고, 그럼 친구를 최대한 많이 사귀어야 하는 건가 /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는 건가 / 또 다른 특별한 경험은 없나 등 확인의 기회를 찾으려고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난다. 결과적으로는 하루에 운동하고, 학교에 걸어 다니고, 삼시세끼 밥 잘 차려먹고, 잠을 충분하게 자되 n시 이전에는 일어나기 등의 루틴으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런 루틴에서 오는 자기 효능감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컸다는 것도 이번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는 것의 교환의 의미라면 의미이다.
물론 반 년 교환학생 생활과 20대 중후반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는 그 크기와 부담감에서 완전히 다를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루틴 말고 아직까지 딱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십춘기라는 단어가 생겨나고,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다는 반증이기에 슬픈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그러나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이라면 거기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기에
루틴 만들기 말고도 많은 이십춘기를 겪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건강한 돌파구를 찾아 몸도 마음도 건강히 이십춘기를 졸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