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나는 어떤 면에서 진짜 정직 진실된 몸의 소유자이다. 좀 무리할라치면 몸에서 즉각적인 신호 (ex. 몸살, 감기) 를 보내고, 먹으면 먹은 만큼 찌고, 카페인을 마시면 곧바로 심장이 엄청나게 빨리 뛰어서 카페인도 잘 못 마신다. 유튜브에 나오는 마른 대식가들이 신기하고, 쇼트 슬리퍼들이 신기하고 하루에 커피 몇 잔을 몇 샷씩 마셔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이전에는 이런 내 몸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연비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속상했었는데, 오히려 이런 몸이다 보니까 더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일종의 긍정적 효과인 셈 ….
그렇다고 건강하게만 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작년부터 꽂힌 키워드가 있다면 바로 저속노화 라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다 보면 한 번쯤은 추천 동영상에 떴을 수도 있는데, 정희원 교수님의 저속노화 채널을 가장 많이 본다. 저도 의학 전문가는 아니라서 뭐가 맞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 번쯤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https://youtu.be/6WDdId9IrSk?si=dRl2mSQvZcC73aoF
이걸 보다 보면, 생활습관을 이런 식으로 개선해야겠다 ~ 도 느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은 정확히 고속노화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슬퍼지기도 한다.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밥은 꼭꼭 여유있게 챙겨먹는 것 등 영상에서 나오는 내용은 엄청나게 신기하거나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사실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상식을 전공자가 신뢰도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전달해 주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속노화 라는 키워드가 요즘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이 ‘혈당 스파이크 방지법‘ ‘애사비 (식전에 먹으면 혈당이 올라가는 속도를 늦추어 준다고 함)‘ ‘건강식’ 등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B (Birth)와 D (Death) 사이의 C (Choice)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결국 우리가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고, ‘노화‘라는 것은 비단 중장년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기가 얼추 끝나는 20대부터도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노화의 정도가 얼마나 가시적으로 나타나는가가 다를 뿐 우리는 결국 하루하루 노화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어차피 모두가 노화를 겪고 있다면, 그 노화를 없애지는 못해도 조금 천천히 그리고 노화를 마주했을 때의 내가 조금 더 건강해지기 위한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저속노화 식단이라던지, 이런 유튜브 채널이 사람들의 인기를 얻게 된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럼 저속노화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나에게 대입해 보았다.
1) 밥
미국 와서 맨날 햄버거피자이런것만 먹으면 어떡하지 ?? 라는 걱정을 하고 왔는데 오히려 아파트에서 요리를 해 먹으니까 양념도 덜 하고 건강하게 먹게 되었다. 왜냐하면 양념을 사기가 귀찮았음 !
그냥 재료 본연의 맛으로 우걱우걱 먹다가 스리라차 소스 뿌려먹으면 그냥 행복하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는 것은 사람에게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이 정도로 먹을 것에 엄청난 건강 강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 있을 때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것도 메뉴 선정이었다. 학생 때는 방학이 진짜 싫었던 적이 있었는데, 한 번은 방학 내내 대치동에서 하루종일 특강을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 사이에 쉬는 시간은 30분 밖에 되지를 않으니까 제대로 된 식사는 꿈도 못 꾸고 뚜레쥬르 들어가서 빵을 하나 집어서 먹는 게 다였는데, 급하게 먹느라 속은 얹히고 제대로 먹은 것 같지도 않아서 고통스러웠다. 이렇게 한 번의 방학을 보내고 부들부들 떨며 다시는 대치동에 가지 않았다 …. 집에서 여유롭게 밥 먹으면서 공부하는 게 저한테는 더 맞았어요
대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강 때문에, 밴드 합주 때문에 서둘러 대충 끼니를 떄우는 것이 힘들었다. 편의점 음식은 자극적이어서 맛있긴 하겠지만 별로였다. 그래서 악착같이 빠나나랑 두유 같은 것만 사 먹기는 했는데 .. 편의점에는 건강한 탄수화물이 별로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천천히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초가공식품의 경우 ‘이미 씹어서 나온 음식’ 을 먹는 것과도 같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먹는 초가공식품의 대부분은 굉장히 부드럽고 먹기에 편하다는 소리다. 우리는 먹으면서 일정 시간이 지나야 배부름을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식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되는데 먹기가 너무 쉬운 초가공식품은 그 시간에 이르기도 전에 훨씬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하게 한다. 이건 과식이 되고 더 나아가 우리 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 ..
2) 잠
예전에 갓생 브이로그들을 보면 다들 잠은 언제 자나 싶었다. 시험기간에는 밤샘이 기본이고 평상시에도 할 일을 다 하기 위해서 3-4시간밖에 자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왠지 멋있고 대단해 보였는데
최근에는 잠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니면 내가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듣기 시작해서일지도 ?
사실 잠을 줄이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다. 얼마 잠을 자지 않아도 진짜 컨디션이 괜찮다는 쇼트 슬리퍼들도 있지만 우선 나는 아니다. 잠을 줄이는 것은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인지 기능을 초래하게 된다는데, 난 술 마셨을 때보다 잠을 못 잤을 때 더 인지 기능이 퇴화되는 것 같 다 …
2학년 때는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을 듣고 다른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잠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가장 바빴던 시기에 내 잠을 돌이켜보면
1학기 전공수업 토론 준비 사건 : 아침 7시에 일어나서 계속 할 일 하다가 새벽 2시 넘어까지 줌 회의를 해야 했음 +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다시 토론 준비
2학기 전필 실험 준비 사건 : 마찬가지로 새벽 2시까지 계속 자료를 찾고 계획을 수정하고 6시 좀 넘어서 또 하루종일 실험
아마 이때가 내 잠 스코어에서는 커리어 로우였던 시기일 것이다 .. 특히 무언가를 같이 준비해야 하는 팀 활동의 경우에는 오후나 이른 저녁 시간은 각자 스케줄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밤 11시가 넘어서 회의를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회의를 하다 보면 보완점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결국 늦게 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 시기에는 잠을 못 자는 것 외에도 이러저러한 사연들도 있었긴 하지만, 잠을 자야 좀 살 것 같은데 잠을 못 자고 계속 머리를 써야 하니까 그야말로 미 칠 것 같았던 기억이 난다 …
최근에는 작년과 비교했을 때 잠을 아주 잘 자고 있는데, 덕분에 좀 살 것 같다…..
위에서 말했던 의사님은 세상이 무너져도 잠은 7시간 자겠다는 의사 라는 제목으로 영상을 만들기도 했는데, 7시간 이상의 수면은 사람의 기본값을 훨씬 더 올려주는 듯 그러나 현대인이 7시간 이상 자는 게 쉬운 일일까요 ? ㅜ.ㅜ
3) 술담배커피
술담배는 너무 당연한 얘기라 말하긴 애매하긴 하지만 얘네들도 고속노화를 촉진한다고 합니다 …..
내 경우 담배는 안 피고 술은 가끔 마시는데, 웃기지만 담배 피면 이가 누래진다고 해서 안 피고 술 마시면 모든 음식을 푸드파이팅해 버리기 때문에 자제해서 결과적으로 술담배를 잘 안 하는 사람이 됐다. 내 체중강박이 긍정적? 인 효과를 낳은 몇 안 되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현대인들은 하루의 끝에서 수고했다는 의미로 시원하게 한 잔 하고 한 대 피우는 경우가 많지만, 궁극적으로 이것들은 수면의 질도 떨어뜨리고 마찬가지로 삶의 질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알코올은 각성제가 아니라 진정제라고 한다. 간혹 사람들 중에 ’나는 술을 마시면 더 흥분되고 외향적으로 변하던데?‘ 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초반에는 이러한 각성제 같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알코올은 CNS (중추신경계)의 활동을 억제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진정제라고 합니다. 본인이 술을 마실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고 활달한 느낌이 든다면, 평소에는 억눌려 있던 긴장들이 풀리는 진정제의 효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일 수도 ㅜ.ㅜ
그러나 지나친 음주가 아니라면 건강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하는 의견이 많으니 가끔 친한 사람들과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건 정신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삶이 너무 힘들 땐 이 방법을 좀 사용했던 것 같기도 ….
커피를 여기 넣은 이유는 밥에 넣기는 애매하고 잠은 아닌 것 같아서인데, 커피도 지나치지 않으면 고속노화에는 별 이상을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커피는 달달하게시럽왕창추가한 바닐라 라떼는 아니겠지요 ^^..
4) 스트레스
위의 것들은 비교적 육체적인 요소들이라면, 스트레스는 말 그대로 정신적인 요소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한 과정을 거쳐서 (기억 안 남) 결과적으로 노화를 촉진한다고 하는데, 사실 개인의 입장에서 이 스트레스가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요소가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가 노화를 얼마나 촉진하는지 실감한 적은 딱히 없지만 당장 근시안적인 건강에도 안 좋다는 것에는 정말로 공감한다. 어떤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맛이 아예 없어지거나 계속 먹을 것 찾거나, 잠이 안 오거나 etc 의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이것들은 결국 위에서 말한 요소들에도 영향을 주는 거니까 당연히 안 좋고
우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가 않으면 사람이 참 여러 면에서 취약해진다는 것을 느꼈던 시기가 바로 작년 한 해였다 …..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예민해지고 > 예민하니까 더 많은 자극이 스트레스가 되고 > 스트레스는 다시 예민해지게 하고 를 반복하게 됐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도 다들 참 스트레스가 많았던 특정 시기가 있었을 텐데 그때를 떠올려 보면 될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은
이걸 누가 몰라서 안 하겠나 는 것이다. 다들 편의점에서 대충 때우는 게 아니라 건강하고 맛있는 걸로 제대로 밥을 먹고 싶을 거고, 잠은 꼬박꼬박 자면서 좀 개운하게 살고 싶을 거고, 스트레스 덜 받고 싶을 것이다. 다들 알고 있는 상식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저속노화를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비단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사회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그 속에서 뒤처지면 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먼 미래의 노화를 생각하기보다는 당장의 생존이 그 개인에게는 더 중요해질 것이다. 건강한 식재료로 밥을 차려먹기에는 너무 비싸고, 시간이 많이 든다. 성적이 나오는 과목의 팀플을 하는데 팀원들이 다같이 맞는 시간이 늦은 밤밖에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새벽까지 깨어 있고 밤을 샐 수밖에 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이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되고 재촉하는 환경이라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저속노화를 하기 위해 너는 8시간 이상 잠을 자고 붉은 고기를 멀리하고 지중해식 식단의 일부를 ~ 스트레스를 덜 받는 ~ 운동은 꼭 해야 하고 술담배는 자제해라
는 말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말일까.
내가 속한 사회의 시계가 너무 빨리 돌아간다면 사람들은 노화를 인식할 겨를 없이 그 속도에 맞추어 가기 위해 본인의 식사와 잠과 정신건강을 포기하기가 더 쉬워질 것이다.
물론 저속노화가 이상적인 소리만 하는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당장 건강에 좋은 n첩 반상을 차려먹지 않더라도 아침에 시리얼 대신 그릭요거트를 먹을 수 있고, 9시간 숙면을 취할 수는 없어도 잠을 자기 전에 폰을 보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할 수 있고 술담배를 줄이려고 할 수 있고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뭐 명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의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내가 저속노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노화를 늦추기 때문이 아니다. 노화를 늦춤과 동시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것이 저속노화에서 제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인 만큼, 우리 사회가 사람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저속노화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
이 저속노화를 생각하다 보니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