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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고학번

어바웃 시리즈 2

by 싱가

‘누구나 고학번이 된다’ 는 멘트를 20살 새내기 때 새터 (새내기배움터?) 에서 처음 봤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웃었던 게 기억이 난다. 고학번이 된다는 건 저렇게 자조섞인 멘트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인가?

새내기 때 두 학번 이상의 선배들을 보면 무언가 대단해 보였다. 전공 강의도 많이 듣고 뭔가 미래에 대해 뚜렷한 생각이 있겠지? 나에게는 어떤 의미에서의 어른이었던 고학번의 존재..


그리고 내가 고학번이 되어 버 렸 다

내가 고학번이 되는 상황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엄청나게 파란만장한 저학년 시절을 보낸 것도 아니고 그 사이에 나름대로의 아등바등을 겪기는 했지만, 막상 내가 고학번인 상황은 그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여전히 과방에 가면 동기들이 있을 것 같고, 전공 강의에서 수업 시작 전 쉬는시간 중간중간 사방에 있는 동기들이랑 수다를 떨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제 내가 고학번?

대학교 2학년을 보내면서.. 나는 아직도 전공에 대해 무지한 인간이고 이것저것 고려해 보니 미래는 더 모호해지고 체력은 떨어졌다. 이 상태에서 고학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교환으로 날랐다.. 그렇기에 완전한 고학번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긴 하지만



고학번이란 무엇일까..

최근에 시차를 극복하고 친구들이랑 줌을 하면서 문득 느꼈다


같은 동아리에서 만나서 활동을 하고 나름의 저학년을 보내던 친구들이 이제 누군가는 학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누군가는 전공 강의뿐만 아니라 튜터까지 되어서 누군가의 강의를 도와주고 누군가는 또 다른 나라에 도전을 하러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었다. 딱히 미래가 걱정되는 아이들이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각자의 자리와 상황에서 다들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기특? 했던 순간이면서도

이제는 무언가가 또 다시 달라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또다시 나는 어떤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동시에 들기도 했지만, 거기 있을 때만이라도 제발 좀 편하게 지냈으면 싶겠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 생각들은 우선 한 구석에 밀어두었다..

아무튼 이 생각을 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떠오른 게 있는데


https://m.blog.naver.com/poppiesinart/223159439417


2년 전 즈음에 내가 썼던 어바웃 글이었다.

대충 요약하자면 고등학교 때의 획일화된 평가 지표와는 달리, 대학교에서는 서로의 길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우열을 가리기가 너무 어렵다 ~ 는 것을 느꼈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친구들끼리 듣는 강의가 너무 다르다, 여름방학을 보내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등을 예시로 들었다.


거의 2년이 지난 지금 이 길은 강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는 휴학을 하고 누군가는 교환학생을 가고 누군가는 군대에 있다. 어쩌면 내 가까운 지인 중에는 학교 재학생 신분보다 휴학생 신분이 더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생활을 해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배울 점이 많아 좋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전처럼 한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모이기는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 씁쓸해지기도 하는데 사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고학번이 너무너무 두려웠는데, 전만큼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없다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라기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내 길을 내가 온전히 정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과목을 듣고 시험을 쳐서 성적이 나왔던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내 주변의 사람들만 보아도 단순한 직업부터 시작해서 희망하는 삶의 방향이 다들 너무 다르다! 이 상황에서 내 에너지를 어떤 방향으로 쏟아야 할 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길이 과연 미래의 내가 후회하지 않을 만한 선택이 될 지에 대한 확신이 도무지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쏟을 준비는 되어 있었지만 이게 이 길이 맞는지, 다른 길은 없을지 등등

에 대한 고민 때문에 대학교 2학년 때는 생각 과부하로 고통스러워했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 이 생각 브레이크를 멈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과 동기들은 이제 본전공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수전공을 듣기 시작했고, 무언가 미래를 위한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이야기하는 주제도 미팅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보다는 자취 시세와 학점과 진로 선택 등으로 서서히 옮겨 가기 시작했다.


그럼 고학번은 이렇게 뭔가 쌉싸름한 느낌밖에 없을까 생각해보니

새내기 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 투성이었고, 누구와 친해질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긴장되어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마음에 맞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쌓은 추억을 바탕으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고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전공 강의를 들으면서 나름대로의 도전을 할 수도 있었고

어색하기만 했던 첫 시도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성인 이후 나름의 홈그라운드를 다졌다는 느낌도 받았고

너무 많은 가능성 때문에 어지러웠던 스무살과는 또 다르게 내가 누군지 조금이나마 더 알 수 있었고


딱히 자조할 만한 건 아닌 것 같다 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로 얼굴 보는 게 당연한 게 아닐 수록 만나는 사람들이 더 소중해진다는 게 장점이면 장점일지도!


새내기의패기 였던 시절ㄷㄷ

그래서 고학번이란 무엇인가 ..

누군가는 사신(*건물 별명) 에 갔는데 아는 얼굴이 한 명도 안 보이는 때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더 이상 새로운 단체 카톡방이 만들어지지 않는 때라고도 이야기한다. 또 누군가는 같이 먹는 밥보다 혼밥이 익숙해지는 때라고도 이야기한다.


위의 말들도 공감이 되고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하기 시작하는 때라는 것도, 이전만큼 ’낭만‘을 외치기 어렵다는 것도 (학점, 학회 etc..) 공감이 된다.


어째보면 저학번 때만큼의 버라이어티함이나 새로움은 줄어들고, 현실적인 불확실함의 상황을 겪어야 한다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이기에 어쩌면 성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비교를 하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내가 가는 길이 괜찮은 길인지 의구심을 품는 시기일 수도 있겠지만


자조만이 존재하는 고학번이 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추억들은 스무 살 그 이후를 보내야만 쌓을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동기들 선배들 모두 이전 같을 수는 없겠지만 각자의 길을 응원하고 자신의 길에 너무 두려워하지 않고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그런 고학번이 되었으면


그리고 고학번들도 아직 어른은 아니다 이건 확실함

저도 아직 응애 ^^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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