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바웃 낭만과 굳이

어바웃 시리즈 2

by 싱가

최근에는 ‘낭만’ 이라는 키워드가 대세인 듯 하다. 나에게 인식되는 낭만은 이제 청춘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싱그러움을 넘어서 전 세대가 향유할 수 있는 무언가로 자리잡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낭만이란 무엇일까

낭만에 대해서 제일 와닿았던 말 중 하나는 ‘굳이‘ 라는 키워드였다. 한 가수는 한 달에 한 번씩 낭만을 위해 ‘굳이 데이‘를 지정했다고 했다. 굳이굳이 소리가 나오는 일을 하나씩 한다고, 조개구이를 먹고 싶으면 굳이 인천까지 가서 먹고 오는 것이 그 예시가 될 수 있겠다… 조개구이는 동네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굳이 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서 찾아 먹는 것은 분명 효율적인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꽤 괜찮은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낭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들도 ‘굳이’ 에서 파생되었던 듯 하다.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굳이 걸어가면서 햇빛을 쬐고 음악을 들었던 순간, 그냥 치킨을 시켜 먹어도 되지만 굳이 각자 해 온 음식을 가지고 와서 서로의 음식을 보고 깔깔거리며 피크닉을 했던 순간, 일상복이 아니라 굳이 교복으로 갈아입고 와서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던 순간 등

사실 낭만은 효율과는 좀 거리가 먼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동의 정당성을 주창하기 위해 수많은 효율과 이유를 대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낭만은 우리의 마지막 합당한 비효율의 영역 아닐까?

효율과 이유는 우리 삶에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이런 합당한 비효율도 우리의 삶에 때로는 정말 간절히 필요하다. 이런 ‘굳이‘의 낭만은 특히 혼자 있을 때 필요하다고 느끼는 편인데


지난 여름에는 너무너 무 더웠다. 그렇다고 혼자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기에도 귀찮고 그냥 축 늘어져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동을 하고 나왔는데

갑자기 팥빙수가 먹고 싶었다! 화려한 팥빙수가 아니라 딱 얼음에 달달한 팥이랑 쫀득한 떡이 올라간 팥빙수가 간절했다. 그래서 굳이 이촌에 있는 팥빙수 맛집을 혼자 찾아가서, 챙겨 간 줄이어폰으로 굳이 음악을 들으면서 신나게 팥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더운 날 굳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서 여러 전시를 보고 왔다.

대단한 행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아무 생각 없이 무료하게 보낸 하루가 아니라, 무언가를 찾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던 하루였기에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날로 남아 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 특히 스스로에게 인색해지는 면이 없잖아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흔쾌히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어딘가에 갈 수 있고,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면 혼자 있을 때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순간이 많았다.

그러나 때로는 효율과 이유의 공식에서 조금 벗어나서 생각을 해 보면, 나 자신의 낭만을 챙겨 주는 것은 또 다른 원동력과 어떤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

물론 낭만과 낭비의 차이는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이건 낭만이야 ~ 라고 하면서 아무 생각 없이 과소비를 하거나 단순한 쾌락에만 본인을 내맡기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낭비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럼 낭만은 책임 있는 비효율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낭만 하나하나에도 책임을 부여하는 건 오바 같아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겠으나 !



내가 요즈음 실천하고 있는 아주아주 작은 낭만이다.

그냥 있는 거 대충 꺼내서 먹어도 되지만 굳이굳이 접시에 예쁘게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하자면 플레이팅 …

그냥 근처에서 빵을 사 가도 되지만 굳이굳이 도시락에 담아 와서 깎아 온 사과와 오렌지와 함께 굳이굳이 산 돗자리와 함께 피크닉을 했다.



학교에서 직접 꽃다발을 만들 수 있는 행사를 하길래 가지고 와서 마땅한 꽃병이 없길래 굳이 핫소스 통을 개조해서 며칠 더 이 꽃들을 감상하려고 했다. 버스를 타면 20분 만에 오는 거리를 40분 동안 굳이 걸어 다닌다.

그리고 이런 ‘굳이‘들은 효율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기는 하나 .. 이런 것들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좀 더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굳이‘ 들은 낭만이고 이것들은 우리 생활에 꽤 필요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순간들일수록 이런 ’굳이’의 순간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은데, 3월이 도래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달을 맞이해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는 시기일 만큼

현실에서 완수해야 하는 수많은 효율과 이유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자신에게 이런 ’굳이‘의 낭만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시간을 다들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0화어바웃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