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뇌리에 남는다. 사실 내가 알고 있었던 문장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로 다소 왜곡된 기억이었음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지만….
이 문장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제목이라고 한다. 이 감독의 작품을 본 적도 없고 개인적으로도 좋아하지 않지만 이 문장은 참 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다.
내 멋대로 해석한 이 문장의 의미는
곱씹을수록 무언가 달라지는 대상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대상은 하나의 결론으로만 귀결되지 않는다. <어린 왕자> 는 어른이 될 수록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처럼, 대상은 변하지 않으나 그 대상을 대하는 / 겪는 우리의 태도와 상황이 변함에 따라 그 의미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이런 경험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때는 좋았고 지금은 좋지 않은 것도, 그때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좋은 것도 존재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원인의 대부분은 나의 오만과 편견이 차지하고 있었던 경우도 많은데, 이번에는 인간관계보다는 최근 있었던 하나의 경험을 통해 이 문장을 반추해 보고 싶었다.
교환에서 학기가 시작되기 전 12월 말 ~ 1월 초에는 LA에서 머물렀다. 아파트에 미리 입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안내를 받았기 때문에, 학교로 가기 전까지 있을 곳이 필요했고 캘리포니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LA로 거처를 정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LA에서의 일주일은 참으로 힘들었다 ….. 고환율로 인한 미쳐 날뛰는 물가에 그닥 럭셔리하지 않은 거주 환경에 같이 파견된 낯선 사람과 1주일을 동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안전 문제였다.
나는 걸어다니는 게 너무 좋다. 날씨 좋은 하늘 아래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but LA는…. 대중교통의 치안 문제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 블로그에서는 대중교통 말고 우버를 타고 다니라고 조언을 했고, 블록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걸어다니기란 참 힘들었다. 거기다 시차 적응까지 못했던 때인지라 교환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산재했다.
그렇게 LA에서 1주일을 보내고 교환교로 이동하면서, 웬만해서는 LA를 다시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남기고 떠났는데
이번에 내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밴드 중 하나인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LA 근처에서 공연을 했다. 같은 밴드에서 활동하던 언니와 LA 근처 Anaheim에서 만나서 콘서트를 보고 다음 날 LA 시내로 넘어가서 1박을 더 하고 오는 일정을 구상하며
LA가 아니라 다른 지역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1주일이 참 힘들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 다시 간다면 또 힘들 것만 같았기 떄문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지 아니면 다른 여러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작용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번 2박 3일 간의 LA는 이전보다 훨 ~ 씬 나았다. 내가 전에 LA에서 힘들어했던 순간들이 이전만큼 힘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익숙한 곳에 다시 가다 보니 이전과 비교해 보면서 경험하는 것도 나름의 묘미였다.
그래서 다시 LA로 와서 시간을 보내고 싶냐 ? 라고 한다면 …. 그 정도는 아니지만 어쨌든 이전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LA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사그라든 계기는 되었다. 말하자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의 경험을 제대로 하게 해 준 시간이었던 것
세종대왕은 고기는 씹을 수록 맛이 나고 책은 읽을 수록 맛이 난다 ??? (제대로 기억 안 남) 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같은 경험이라도 그 시간과 나의 태도에 따라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고, 같은 장소이더라도 나의 상황과 상태에 따라 다른 추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장이 내게 좋았던 지점은 무엇이냐. 라고 묻는다면 일종의 위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지금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일들은 항상 존재한다. 이전에는 그게 나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했고 그때의 스코어는 불변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괴로워했다. 그러나 같은 기억도 여러 번 꺼내보고 곱씹다 보면, 같은 경험도 꾸준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는 상황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어떤 안도감이다. 물론 반대의 유쾌하지 못한 순간도 존재하겠지만
한 대상과 결론이 일대일 대응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이상의 대응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지금 당장의 결과에 조금은 덜 매몰될 수 있지 않을까?
설령 지금 틀리더라도 괜찮아, 다시 검토하고 곱씹어보면 언젠가는 맞는 순간이 올 수 있어
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실패에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