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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빈말과 chill guy

어바웃 시리즈 2

by 싱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어려운 건 뭘까 함부로 정답을 주창할 수는 없으나

나에게는 사람들 사이의 ’빈말‘이라는 것이 가장 어렵고 복잡했다.




내가 생각하는 빈말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밥 한 번 먹자” “우리 꼭 만나자“ … 인간관계에서 이런 빈말들은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빈말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빈말을 잘 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고 인간관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능력일 것이다. 빈말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는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 라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나도 밥 한 번 먹자는 이야기를 어색한 사람들 앞에서 자주 (거의매번) 이야기하곤 한다.

나에게 빈말이 어려웠던 이유는 어디서부터가 빈말이고 어디서부터가 진담인지 가늠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금 이 사람이 나에게 하는 말은 빈말인가, 진심인가?

이 문제는 타국에 와서 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모국어도 아닌데, 지금 이 말의 뉘앙스가 뭔지 해석하기가 힘든 순간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런 문제에 있어서 예민한 성정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너무 추상적으로 말한 것 같으니 예시를 들어 보자면

방학 기간 동안에 계획이 있냐는 친구의 질문에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지만 아마 혼자 ~ 를 갈까 생각 중이다“ 라고 답했을 때, 친구는 ”혼자 여행하니까 외로운 순간도 있었는데, 안 그래도 나도 거기 가 보고 싶었거든. 만약에 필요하면 말해! 같이 여행 가자“ 라고 말한다면 ?

So kind of you, thank you! 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때부터 내 머릿속은

난 아직 확정된 게 아닌데, 사실 누군가랑 가면 내 일정을 전면적으로 공유하고 수정해야 하는데, 아 얘는 내 여행 스타일하고 잘 맞을 수 있을까? 얘는 진짜 나랑 여행이 가고 싶은 건가, 혼자 간다고 하면 서운해하려나?

의 절차를 거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거의 대부분 진담으로 상정하고 거기서 비롯된 가능세계를 끊임없이 상상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사실 그건 큰 의미 없이 말한 빈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럴 경우 이러한 친구의 말은 두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1) 빈말

2) 진담

1) 빈말의 경우 …..

내가 한 고민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2) 진담의 경우 …..

이것 때문에 항상 고민하게 된다. 빈말이겠지 ~ 싶으면서도 ”혹시 진담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고, 결국 사람들의 말들을 대부분 진담으로 처리하며 크고작은 속앓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말을 모두 진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걸 처리하는 내 에너지는 말 그대로 남아나지가 않는다. 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 내가 이 친구의 말을 진담으로 여기고 어찌저찌 결국 여행을 같이 간다면 ?? 좋을 수도 있겠지만 힘든 점이 분명 꽤 많이 존재할 것이다.

아무튼 사람들의 말을 다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그걸 지키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면 결국 제대로 된 나는 그 가운데 설 자리가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럼 이렇게 빈말과 진담 사이가 고민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여기에서도 진리의 ‘케바케‘는 존재한다. 뉘앙스가 모두 다르기 때문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기본 시스템을 진담으로 깔고 가기보다는 빈말로 깔고 가는 게 개개인의 정신 건강에 더 이로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필요할 때만 에너지를 쓰는 것과 늘 긴장하고 있다가 가끔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 간에는 큰 에너지 효율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설령 진담이었는데 빈말로 받아들여 상대방이 서운해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상황을 가장 두려워하지만) 그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건

어이없을 수도 있겠지만 chill guy다….



한창 유행하고 있는 이 chill guy의 정체로 말할 것 같으면…

이 말 자체는 “편안하고 긴장하지 않으면서 쉽게 화내거나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묘사할 때 쓰인다고 한다. 한마디로 어떤 상황에서도 쿨하고 여유로운 성격을 대표하는 캐릭터라는 의미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chill guy 스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해 하는 사람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넘기는 chill ~.. guy의 면모인 것이다. 너무 쉽게 세상의 모든 input에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조금 더 관망하는 시선에서 이 자극들을 대하는 chill함이 개인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chill ~.. 스러움은 타인과의 인간관계에서만 적용되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는데

이런 면모는 그 무엇보다도 개인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느꼈다.

교환학생으로 학교의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큰 도전을 한 건 intro to acting이라는 연기 수업을 들은 일이었다. 말 그대로 연기 수업인데 …. 내향형인 나로서는 너무 큰 도전이었기에 정말 초반에는 드랍이 너무 하고 싶었으나 어쨌든 버텼다…. 여기서는 수업 시간에는 신발을 벗고 자신의 몸을 속도와 높낮이를 조절해 가며 표현하고 땅을 구르고 감정을 표현하고…. 여러 가지를 하곤 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은 cup in the head 라는 활동이었다.

한 상황을 상정하고, 그 상황에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5개 문장으로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면, 무언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1) 폭음하고 싶음 2) 누군가의 얼굴을 아주 세게 한 대 때리고 싶음 3) 폭식하고 싶음 4)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음 5) 차를 아주 빠르게 몰고 싶음

과 같은 식으로 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실제로 내 예시이다….

한 친구가 가장 먼저 자신의 cup in the head를 발표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말할 때마다 학생들이 지원해 그 문장을 대사와 몸짓으로 표현하게 된다. 이후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그 상황에서 느낀 부정적인 문장들을 다시 긍정적인 문장으로 치환해 표현해 보는 것이었다. 이게 설명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게 너무 인상깊어서 자원해서!! 이 문장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활동이 가장 인상깊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 나는 평상시에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으면 이런 cup in the head에서의 문장들을 정말 많이 떠올린다. 그런데 내 생각 안에서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타인의 입을 통해 이런 문장들을 듣고 보게 되니 그 정도가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싶은 문장도 존재했다.

정작 나 자신에게는 이런 문장들을 참 많이 되뇌이면서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타인이 나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조금 더 따뜻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을 텐데, 그렇게까지 mean하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둘째, 이걸 긍정적으로 바꾸는 과정이 신선했다. 같은 상황에 있더라도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훨씬 긍정적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chill ~하게 바라본다면 말이다. 어차피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면 나의 마음이라도 바꿔야 좀 더 살 만 하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 내 추구미는 chill ~..이다.

무어라 정확히 정의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모든 자극에 아등바등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관망하는 자세로

때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더라도 우선 조급해하기보다는 어쩌면 머릿속을 좀 비우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수 있는 자세로

좋을 때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끄덕거릴 수 있는 자세로

좀 더 chill ~..하게 지낸다면 어떨까

가 요즈음의 생각과 경험과 chill guy 밈에서 얻은 제 나름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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