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대단하게 성취해 낸 사람보다 자신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멋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취향이야말로 가장 얻기 어려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어떤 취향을 가지고 계세요?” 라는 질문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자신의 취향을 얘기하고 그걸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알고 있고 그 분야에 대해서 진정 애정을 가진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들을 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다. 나는 그 질문에 유창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https://youtube.com/@hyejinparkluv?si=Ok7qi-mPMftJJy9m
내가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의식 속으로 가지고 들어온 것은 이 유튜버를 비롯한 주변의 사람들을 지켜보게 되면서부터였다. ‘우런니 출근길 (제목 길어서 기억 안 남) 샌드위치’ 라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다양한 일상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인데, 매일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고 재료를 준비하고 좋아하는 빵 종류를 알고 그걸 센스있게 편집해 내는 두 자매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매일매일 쳇바퀴처럼 흘러갈 수 있는 일상 속에서 ’샌드위치’를 비롯한 다양한 취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영상 속에는 수많은 빵과 잼과 치즈와 햄, 각종 페스토들이 등장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취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단순히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취향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지금까지 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 였다. 적어도 취향이라면 그것에 대해 꽤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있고 깊이 있는 무언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 내 취향은 뭐지? 하고 생각해 보니
락밴드를 아주 좋아한다.. 밴드에서 했던 음악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제일 좋아했던 건 메탈리카, RATM 같은 강성 락밴드들이었다. 신나면서도 파괴적인 멜로디가 좋고 그냥 그 특유의 강한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곡을 잘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자신이 없다. 나는 메탈리카의 멤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들의 모든 곡을 듣지도 않으며 그냥 메이저한 곡들 몇 개를 가지고 좋아하고 있다. RATM은 해체되었다는 건 알고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했고 멤버들 개개인의 역사는 잘 알지도 못한다!
유튜브에서 이들의 공연 영상을 보면 댓글에는 늘 ‘~잘알‘들의 댓글로 넘쳐난다. 이들이 언제 시작해서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 멤버는 어떻고 저 멤버는 어떻고…… 그러나 나는 이걸 하나도 알지 못하므로 취향에서 탈락 ?
모네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미술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다. 실제로 새내기 때 여러 미술 교양들을 들으면서 미술의 역사를 배우고 각 시대와 화가의 특징을 배울 수 있었으나 지금은 대부분 까먹었고 모네도 인상주의 화가라는 것 빼고는 이 사람이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는 전혀 모른다.
그냥 이 그림의 느낌만 가지고 좋아하는 거니까 취향에서 탈락 ..?
딱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멕시칸 음식이다. 타코 부리또 다 너무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건 치폴레에서의 식사다. 맛있는 주문 조합도 이미 다 외우고 있다! 그릭요거트를 아침으로 먹으면 딱 좋은 느낌이라 별 일이 없다면 아침으로 그릭요거트에 바나나를 하나 넣어서 먹는다 캐슈넛을 비롯한 견과류도 너무 좋아해서 매일 견과류는 꼭 먹는다.
브런치도 빼놓을 수가 없다 최근에 알았는데 나는 반숙 요리를 꽤 좋아한다 (!) 전에는 완숙이 아니면 거의 먹지 않았는데 부드러운 노른자의 향이 살짝 감싸고 있는 에그 베네딕트를 먹으면 기분이 정말 좋아진다. 격식을 차려서 먹는 것도 좋지만 그냥 풀밭이 있으면 덩그러니 앉아서 멍 때리면서 먹는 순간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릭요거트 제품을 하나하나 꿰뚫고 있는 것도 아니고 먹는 건 별로 질리지 않는 스타일이라 한 번 먹으면 주구장창 그것만 먹는다. 브런치도 갔던 데 또 가고 또 가고의 연속이다. 무언가를 굳이 탐험하려는 성격도 아니어서 내 입맛에 맞다 싶으면 몇 년이고 먹을 수 있다.
주변에서의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같은 요거트여도 이곳저곳 탐방하고 비교하면서 구글맵에 평가를 남겨 놓던데 나는 그런 사람은 못 된다 그럼 이것도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것인가 !..
걷는 건 정말로 좋아한다! 웬만해서는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냥 걸어다니는 걸 선호한다. 날씨가 좋을 때 음악을 들으면서 길거리를 거닐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순간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걷기 좋은 곳을 새로 시도해 보는 건 당연히 아니고, 그냥 갔던 길을 또 가고 또 간다.
사실 나는 그렇게 재미있는 인간이 못 됨을 느낀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줄줄 읊을 만큼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는 게 생기더라도 그냥 거기서 끝.. 그것과 관련된 또다른 무언가,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해 보려고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신기한 동시에 나는 취향도 딱히 없는 미적지근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나름대로의 콤플렉스 ?? 도 있었다.
아 ~ 그런데 요즘에는 취향에까지 그렇게 엄격한 규준을 적용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유튜버와 같이 샌드위치라는 단적인 주제를 적용해 보았을 때 좋아하는 빵 종류를 알고, 주말이면 그 빵들을 사러 곳곳을 돌아다니고, 햄과 치즈를 사고 그걸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센스와 재력 (!) 을 가진 사람들도 물론 존재하고 그 사람들의 멋있음을 폄하하려고 드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취향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면 그냥 좋아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서서히 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그 장벽이 너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거나. 미쳐 있거나 완전히 무관심하거나. 온탕과 냉탕 사이 미지근한 사람들은 애매 ~ 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걸 좋아하기는 하는데 쟤만큼 해박한 지식을 뽐내지 못한다면? 서서히 자신의 취향 리스트에서 지워내 버리기도 하는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이분법적으로만 취향을 나누기에는 사람들의 색깔은 다양하고 그들의 미적지근한 좋아함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설령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 그것과 관련한 장소를 항상 수집해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가던 곳만 가서 한 가지 메뉴만 먹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 또한 취향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밴드나 그룹에 대해서 수록곡과 멤버 개개인의 역사를 줄줄 꿰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어쨌든 취향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싫음을 표현하는 것이면 몰라도 좋아함을 표현하는 것에까지 각박해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좋아하는 게 있고 그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 너무 주저하지 말고 미적지근한 취향도 충분히 개인의 취향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담없이 찾아나갈 수 있는, 당당한 미적지근한 취향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