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사람들은 교환학생을 꼭 가 보라고 이야기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노라고 말한다. 진짜 교환학생은 그럴까?
오늘은 6개월 간 한국을 떠나 캘리포니아에서의 교환학생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귀국까지는 며칠 남았으나.. 말 그대로 이곳에서 ‘살았던‘ 교환학생 생활은 끝인 셈이다. 나에게 교환학생은 어떤 의미였던가 생각해 보게 된다. 반 년의 조각조각 생각들을 모아 놓은 일종의 기록집이다.
1. 루틴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이다. 안정적인 루틴이라는 것은 사람의 심리 상태에 생각보다 참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놓일수록, 본인만의 가장 기본적인 루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함을 체험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운동은 빼놓을 수가 없다. 몸과 마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고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유산소 운동을 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운동은 가장 확실하면서도 안전하고 건강한 자기효능감의 지표가 아닐까?
2. 콘텐츠
교환학생 초반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뭔가 콘텐츠가 있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유튜브 브이로그에 나오는 다른 교환학생들처럼 현지 친구들을 만들거나 / 다른 한국인 교환학생들과 한식을 해 먹거나 / 어딘가를 끊임없이 놀러 가야 한다거나 등의 콘텐츠였다. 그러나 여기에서까지 ’~해야 한다’ 라는 생각에 시달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지냈다. 많은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어도 좋은 하우스메이트들을 만나 매일 스몰톡을 하고, 가끔 맛있는 걸 같이 먹으러 다녔고 평소에는 운동을 하고 건강한 재료로 요리를 해 먹었다. 적응하고 나니 이런 나만의 소소한 콘텐츠도 썩 마음에 든다!
3. 의존
나는 애초에 발이 넓고 인싸다~~ 와 같은 성격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에 교환학생 생활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올 때에도 사람들과 떨어지더라도 그냥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이게 막상 지내 보니까 나는 다른 사람들 / 엄밀히 말하면 내 바운더리 안이라고 인식하는 사람들한테는 참 의존을 많이 하는 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ㅎㅎ..
혼자 있는 시간 / 자유롭게 멍을 때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 수 있게 된 것 같은데,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꽤 의존을 한다는 건 한국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측면이라 신선하고 새로웠다.
4. 건강
이곳에 와서는 반 년 동안 신기하게도 딱히 아픈 적이 없었다! 두어 번 몸살인가? 싶을 때도 있었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곧 괜찮아졌다. 서울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병원에 가고 약물남용자였는데..
여기는 건강보험 극악의 America라는 걸 내 면역계도 인지했는지 잘 버텨 주어서 다행일 따름이다. 물론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 + 규칙적인 운동 + 느긋한 생활패턴이 없었다면 이루어내기 힘든 결과였을 것이다..
5. 대학원
아이러니하게 교환학생을 거치며 심리학 대학원도 하나의 진로방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옵션이었으나..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심리학은 쭉 재미있었다.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전공과목도 욕을 좀 많이 하긴 했으나 내용은 흥미로웠고, 뇌를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나 이상심리학과 같은 분야도 재미있게 배웠다. 다만 연구는…….
이것도 교환을 거치며 새롭게 배운? 알게 된?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6. 자식
연장선으로 대학원 등 진로 생각이나 교환에 있어서나 여러 측면에서 자식이란 참으로.. 염치없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자아실현과 주변 사람들의 희생? 의 균형은 어디까지인가?? .. 참 어려운 질문
7. 교환학생
이 글 제일 처음 시작처럼, 사람들은 교환학생은 기회만 되면 무조건 가라 /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다고들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까지 천지가 개벽하고 눈이 트이는 경험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교환학생의 가장 큰 특징은 1) 기존 생활과의 단절 2) 혼자 있는 시간 늘어남 3) 낯선 환경 속에서 몇 개월을 보낸다는 것인데, 물론 바뀌는 부분도 있지만 몇 개월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유튜브에서의 화려한 콘텐츠만 보고 유레카 or 답을 얻겠다고 교환학생을 와서는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여전히 소중하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던 건 맞다!
8. 강제시차
나는 승부욕이 엄청 세고 뭐든지 이겨야 하는 인간이라기보다는 뒤처진다는 것이 너무 싫어서 열심히 한 나머지?? 좋은 성과를 거두는 유형에 가까웠다. 이기는 것도 좋아하지만.. 지는 게 진짜 싫은 느낌 뭔지 아시나요?
아무튼 그렇게 살다가 이미 시간적으로 뒤처진 캘리포니아로 나르면서 나는 내 뒤처짐을 정당화할 수 있게 되었다. 16시간의 시차라는 정당한 명분으로 모든 뒤처짐을 합리화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마음 편한 일인가! 그렇게 반 년 동안 사람들이 수업을 듣고 학회를 하고 스펙을 쌓는 동안 그 16시간을 핑계삼아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살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번 반 년을 kbs로 지낸 걸 후회하지 않는다.
여기 와서 제일 많이 한 말 or 생각
어떻게든 되겠지
안 되면 뭐 아쉬운 거지
9. 보법
많은 이야기들이 함축되어 있지만.. 반 년 동안 또 다른 보법을 경험했다. 지금의 보법을 그대로 한국에 가져갈 수도, 그 반대도 힘들겠지만 어쨌든 다른 보법을 경험해 본 것 자체로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쉴 새 없이 종종걸음으로 다녔었다면 이곳은 조금 더 느긋한 걸음으로 한적한 마음으로 보냈던 시간들
시간이 지나면 이곳의 기억들도 또 다른 의미가 되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의 생각은
이 기억들을 가지고 부단한 그러나 차근~한 보법으로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