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바웃 시리즈 2
나름 오랜만의 어바웃 글이네요.. 그동안 지능 좀 복구시키고자 했습니다.
철학개론 수업에서 언젠가 상쇄의 개념이 나왔다. 상쇄라고 하면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개념은 물리학에서 각각 10N, 15N의 힘으로 상자를 밀던 철수와 영희.. 두 힘이 맞붙는다면 결국 물체는 15N-10N=5N만큼 움직이겠죠??
여기서 바로 '힘이 상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물리적 법칙 말고.. 인간의 상황에서 우리는 상쇄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개인적으로 나는 이에 대해 회의적이다.
'병 주고 약 주고' 라는 말이 있다. a가 b를 때리고 나서 성심성의껏 치료해 준다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과 같은가? 감정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 흉터가 남을 수도 있고, 결코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내가 병을 줬네? 약 줄게, 그럼 없던 일이 되는 거지? 아무 문제 없지? 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이런 상쇄의 오류는 평균과 뺄셈을 생각하면서 발생하는 것 같다.
1) 평균
극단치가 존재하는 경우 평균은 전체 자료의 특성을 대표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졸업생 중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학과는 지리학과였다. 왜 지리학과였을까.. 마이클 조던이 지리학과 출신이다. 그가 모든 평균값을 미친 듯이 끌어올렸다.
목욕탕에 가서 17도짜리 냉탕과 43도짜리 온탕을 한 번씩 들어간 것과 30도짜리 탕 하나를 들어간 것과 같아질 수는 없다.
2) 뺄셈
사람의 일이란 참 복잡해서 단순한 물리적 힘을 계산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환원되기란 참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만 요즘에는 이런 뺄셈의 계산을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 같은 때가 있다. 힘든 a와 b가 서로의 고충을 토로한다. 이때 대략적인 계산으로, a가 10만큼 힘들고 b가 15만큼 힘들다면?? 우리는 b-a=15-10=5라고 하며 어느 순간 '그래도 b가 5만큼 더 힘들잖아'고 하며 a의 힘듦을 상쇄해 버리는 것 같다. 이 경우 a의 힘듦은 쉽게 부정될 수 있고, b의 힘듦은 a의 힘듦을 상쇄하느라 적어진다. 사실 둘 다 힘든 게 맞는데 ..
살다 보면 이런 나름의 계산을 배제할 수 없을 때는 종종 있겠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것을 이렇게 적용할 수 있을까?? 종종 사람들은 본인의 불행, 행복 등 그 감정의 종류와 관계없이 누가 더 큰지 '배틀'을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특히 감정/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이런 상쇄의 오류를 느꼈던 적이 있어 특히 이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는 흔히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말을 흔히 듣고, 마음에 새긴다. 하나하나 사소한 일에 지나치게 붕 뜨거나 착 가라앉지 말라는 일종의 중용을 지키라는 말이 아닐까? 이 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충분히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내 경우 이 말을 잘못 이해해서 상쇄의 오류를 적용시켜버렸던 경험이 여럿 있다!
앞서 말한 평균과 뺄셈의 오류를 내 감정에 대해서 무작위로 적용하고 이를 믿었던 것
그리고 이는 내 부정적 감정보다 긍정적 감정에 더 많이 적용되었다 .. 기쁜 일이 있으면 '하나하나에 붕 뜨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온전히 느끼지 못했던 때가 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기쁜 감정과 슬픈 감정의 평균치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직은 이 감정을 향유하지 말고/평균을 산출할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슬픈 일이 생기면 그걸 온전히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기보다는, 그래도 내가 가진 기쁜 일이 더 클 거니까 결과는 어차피 양의 값이니까 슬퍼할 필요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감정의 평균치를 내고 뺄셈을 통해 스스로를 위안하는 것도 나름의 효율적인 측면은 존재했으나 .. 궁극적으로 인간의 감정이나 인간관계란 그렇게만 적용되기에는 분명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느꼈다.
인간관계의 예시에서 생각해 보자면
a라는 사람은 나에게는 끔찍이 좋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무자비한 사람일 수 있다. 이 사람이 나에게 +100, 다른 이에게 -100의 사람이라고 해서 0의 중립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생각해보면 상쇄의 개념이란 사람들에게 적용되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개인의 감정으로 돌아와서 ..
감정이란 상쇄되기 너무나 어려운 것이고 상쇄의 방식으로 살아가기에는 인생을 좋든/안 좋든 진정으로 향유할 수 있는 방식일까?? 잘 모르겠다. 지나치게 오락가락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설령 슬픔이라 하더라도 그 감정을 온전히 담담히 경험할 수 있어야 그만큼 기쁜 감정 역시 향유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 수록 어느 하나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반추해 봤을 때는 그렇다. 생각해보면 우울을 부정하고 애써 위안을 삼았던 것보다, 그냥 우울함을 인정하고 그 감정을 충분히 향유했을 때 그걸 좀 더 빨리/쉽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구 .. 내 행복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걸 꺼리며 조심조심 있었던 것보다 활짝 웃을 때 나와 내 주변 사람들도 더 좋았던 것 같구 ..
감정이란 참 다루기 힘든 아이이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상쇄하고자 하는 시도도 의미가 있겠지만
그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법을 배우고 기분좋게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것 역시 성장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