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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든다

어바웃 시리즈 2

by 싱가

개인적으로 참 공감하면서 읽은 문구였는데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이 생각이 났다.

신지상/지오, 만화 베리베리다이스키에 나오는 문구라고 한다.

"

아빠는 말씀하셨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너를 울리게 할 테니까.

나는 나쁜 아이였나 보다.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음에도

나는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고,

비 오는 날 무작정 날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내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었고,

내 머리를 쓱쓱 문질러대던 아빠의 큰 손을 사랑했었다.

그래서 구피가 죽었을 때,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 샌들이 낡아 버려야 했을 때, 이사를 오며 인형을 버렸을 때,

그리고,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그때마다 난 울어야 했다.

아빠 말씀이 옳았다.

내가 사랑한 것들은 언젠간 날 울게 만든다.

"



엉엉 ..

정말 슬픈 문구다.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어 본 사람이면 더 절절하게 공감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마 울고 슬퍼하는 시간이 너무 힘들어서일 것 ..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거나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 힘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대상이/사람과 가까이 지낼 수 있어서 너무 좋아도, 좋은 추억이 쌓이고 사랑하게 될 수록 나중에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은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 라는 이유였다. 이후에 있는 '우는 시간'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은 마냥 해맑게 '우리도 강아지 키우자'고 할 수 있지만, 그 슬픔의 힘듦을 잘 아는 부모들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에전에 sns에서, 강아지 데려오는 걸 누구보다 반대했지만 막상 데리고 오고 나니까 강아지'바보'가 되어 버린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콘텐츠를 꽤 많이 봤던 기억이 난다. 물론 흐뭇하고 좋은 영상인데, 또 한편으로는 왜 반대했을지 공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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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

2011년 내가 8살일 때 4개월이었던 아이를 처음 만나서 2025년 지금까지 같이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에는 부쩍 노견의 모습을 종종 실감한다.

나는 일단 가장 슬픈 순간을 상정하고 대비하면서 그때의 심리적 리스트를 최대한 줄이려고 하는 .. 일종의 방어적 비관주의자라서 결국 맞이하게 될 눈물의 순간을 가끔씩 생각해 보는데

오열

인스타툰 작가 중에 키크니 님이라고 있다.

이분이 가끔 이런 주제로 만화를 그리시는데 그거 볼 때마다

오열

평상시에 딱히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주제나 기타 등등 .. 확실히 내 눈물샘이 취약한 지점이 몇 있다.



아무튼 다시 원래 맥락으로 돌아오면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건 참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 만큼 좋은 순간도 많았겠지만, 사랑한 만큼 힘들고 괴로운 순간도 참 많다. 같은 강도라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부정성 편향 (negativity bias)' 를 가지고 있는 인간의 특성 상 차라리 사랑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수많은 인간들이 지구상에 존재했다 사라졌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은 멈출 수가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당장 나를 봐도, 이후에 있을 눈물의 순간을 상상만 해도 너무 슬퍼지지만 그렇다고

그럼 그때로 돌아가서 너희 집 강아지랑 만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래? 라는 물음을 받는다면 당연히 '아니'라고 답할 것이기 때문 ..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이 아이랑 추억이 참 많았다.

신발주머니 들고 다니면서 수학익힘책 풀던 초딩 때

교복을 처음 입고 화장을 하기 시작했던 .. 중딩 때

대학 가겠다고 뺑이치던 고딩 때

대학생이 됐다고 술도 먹고 엠티도 가고 이것저것 바뀌었던 성인 이후까지

웃긴 것도 아찔했던 헤프닝도 많았으니 ..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가장 초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를 이 아이를 빼놓고 설명할 수 있을까? 라고 하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니까 사랑 이후에 오는 것들로 인해 우는 날이 참 많아도 이 추억들이 내게 준 것이 너무 크고 소중해서, 슬퍼하지 않기 위해 내지는 울지 않기 위해 이 추억들을 포기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라는 것

나는 이 문구를 읽으면서 우리 집 강아지를 떠올렸지만 위의 문구에서 나와 있는 예시처럼 사랑의 대상은 참 다양하다. 애착을 갖는 어떤 물건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은 참 많다.

글을 쓰면서 위의 문구를 여러 번 봤는데 나름의 억지긍정심리학적 마인드로 생각해 보자면

사랑하는 것들은 언젠가 나를 울게 만드는 것도 맞지만 그만큼 나를 웃게 만드는 것도 많다는 점

빨간 꼬리가 예쁜 플라밍고 구피를 사랑했으니까 ->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을 것이고

비 오는 날 무작정 자신을 따라왔던 하얀 강아지를 사랑했으니까 -> 강아지와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했을 것이고

분홍색 끈이 예뻤던 여름 샌들을 사랑했으니까 -> 그 샌들을 신고 다녔던 여름날에는 더 기분이 좋았을 것이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갈색 긴 머리 인형을 사랑했으니까 -> 그 크리스마스는 참 좋았겠구나

우리가 울게 되는 순간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가져다 주었던 웃는 순간들도 생각할 수 있다면 좀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 다른 의미에서 이 구절에 마냥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너무 작은 것들까지 사랑하지 말라고.

작은 것들은 하도 많아서 네가 사랑한 그 많은 것들이 언젠간 모두 너를 울리게 할 테니까."

어떤 맥락과 의도였는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몇 년 전 인기 키워드로 사람들 사이에서 급상승한 것을 떠올려 보면, 사실 아주 작은 행복을 찾고 사랑을 찾는 게 사람들에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나타내 준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상 속에서 작은 것들을 찾고 그걸 사랑할 수 있는 게 우리 삶에 있어 참 필요한 일이 아닐까?




예전에 남성보다 여성이 더 장수하는 이유로 '감정 표현'이 하나의 기여 요인이 될 수 있다 ~ 는 연구들이 존재한다는 걸 봤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남성들은 비교적 감정 표현이 덜하고 (울음 등), 여성들은 감정 표현의 빈도가 높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물론 인과관계로 나아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어쨌든 긍정적/부정적 감정의 경우에서 그걸 느끼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들의 건강이 좋다는 뉘앙스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실제로 성별 간의 수명은 아니어도, 감정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정서적/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연구 결과들은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도 그걸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참 용기 있는 사람들이고, 사랑을 하면서 웃고 울 수 있다는 건 건강하다는 하나의 표시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3시라고 머리가 안 돌 아 간다

아무튼 그게 어떤 대상이 되었던 사랑하는 존재와 나 자신은 일생 모든 순간을 공유할 수는 없다.

교집합의 순간에서는 참 행복하지만 그 여집합의 시간에서 우리가 겪어야 하는 슬픔과 울음은 때로 사람들을 사랑 앞에서 두렵고 주저하게 만들지만

그 교집합인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면서

웃고 울면서 용기내어 사랑할 수 있는 게 진짜 건강한 사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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