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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사람

세상과의 숨바꼭질

by 모모



참 듣기 싫었던 말.


임신 중에 입덧이 심해서 눈물의 밥을 먹어야 했을 때,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야경증으로 잠을 자지 않아 예쁘지만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다들 같은 말을 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때는 지금 당장 힘든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참 무책임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믿고 싶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햇빛을 피해서 집에 박혀 지낸 지 한 달이 지났다.

방사선의 부작용이 가장 빠르고 거세게 나타났던 피부는 회복도 제일 빨랐다. 불에 덴 듯 새빨갛던 얼굴은 본래의 색을 찾았고, 피부 깊은 곳에서 칼로 긁는 듯한 통증도 잦아들었다.


"피부가 나았으니 외출하셔도 됩니다. 아니, 이제는 외출을 많이 늘려 주세요.

적당한 운동도 하고 바깥공기도 쐐면, 다른 증상의 회복도 빨라질 거예요. "



용기를 내어 문 밖을 나섰다.

여전히 눈구멍에서 진물이 흐르고, 얼굴 반쪽은 안면마비와 붓기가 남아 꼴이 썩 좋지 않지만,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얌전히 산책만 하고 돌아오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다.


"어! 오랜만이에요. 눈 왜 그래요? 눈병 걸리셨어요?"

"네? 아…네."

"예전에 안대 써 봐서 아는데, 진짜 힘들잖아요. 안대는 언제 떼세요?"

"그게…

사실은, 올해 초에 눈 밑에서 암을 발견해서 급작스럽게 큰 수술을 받았어요."

"눈 쪽이요? 이런..."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거운 이야기를…"

"제가 죄송하죠. 괜한 이야기를 해서 미안해요. 그럼, 몸조리 잘하세요."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서로 자기가 더 미안하다며 뒷걸음질을 친다.

아이 친구의 엄마를 만났을 때에도,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과 마주쳤을 때에도 그랬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공기는 무겁고 숨 막히는 연기로 변해 버린다.


대충 둘러댈 거짓말의 패턴을 몇 가지 만들어 두면 좀 나을까.

괜찮은 척 밝게 웃는 연습을 해 둬야 할까.




수술 전에는 외모의 변화야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누가 물어보면, 내 목숨과 눈을 맞바꿨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예쁘고 말끔하지 않아서 힘든 것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드러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아질 수 없다는 사실—

그 모든 것이 상상으로는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이었다.




서랍 하나가 안대로 가득 찼다. 조금씩 다른 모양, 다른 색깔.

시중에 나와 있는 안대는 대부분 하얀색이다. 하얀색은 청결해 보이고, 눈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기 좋기 때문일 것이다. 정작 안대를 쓰는 사람의 심정은 알지도 못하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눈에 덜 띄는, 피부색에 가까운 녀석을 찾아서, 오늘도 하나씩 사 모은다.




안대뿐일까. 방 한편에는 선글라스가 잔뜩 쌓였다.

평소에 써 본 적도 없던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선글라스에는 무척 유용한 기능이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쓴 사람이 다가오면 본능적으로 눈이 아닌 입이나 몸으로 시선을 돌린다.

짧은 시간에 참 많이도 샀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을 돈으로 사듯이.


습관처럼 피부색 안대를 붙이고 선글라스를 쓴다. 비가 오는 날에도, 깜깜한 밤에도.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라지만, 사실은 이게 더 눈에 띄고 수상해 보인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차라리 수상한 사람으로 여겼으면 좋겠다. 조심스러운 눈길을 주는 대신, 먼지 뭉치를 본 것처럼 그냥 피해 갔으면 좋겠다.



마음의 병이 깊어진다.

처음에는 세상의 불운이 모두 나에게 쏟아진 것처럼 억울하더니, 그다음에는 남들도 다 같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썩어 문드러진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를… 먼지처럼 보이기를 빌며 나 혼자 세상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렇게라도 해결할 수 있다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텅 빈 눈구멍이 채워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시간이 내 마음의 구멍이라도 메꿔 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이것도 다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텨야 한다.

시간이 해결해 줄 내가 존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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