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반복되더라도
'미니홈피'라는 작은 공간에, 감성이라는 감성은 다 끌어 모아 올리는 것이 유행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그때는 눈만 마주치면 누가 더 허세니, 누가 더 오버하느니 하며 놀려대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시 1차에 붙은 걸 미니홈피에서 뻐기기 있냐?"
"얘, 또 뭐 했는데?"
"싸이월드에 이상한 감성 사진이랑 '행운과 불운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올렸어! 아, 소름 "
"허세 쩐다! 떨어진 사람들 놀리는 거?"
"아니, 그건 아니고… 기쁜 일 뒤에는 항상 슬픈 일이 쫓아오니까. 미리 준비하는 거야. 실망하기 싫어서."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대도 그럴 줄 알았다고 말할 것 같은 안정감. 웬만한 일에는 실망하지 않는 데다, 애초에 기대라는 것을 해 본 적 없는 듯한 표정과 말투. 그 친구는 늘 그랬다.
아이들은 그 친구를 '허세'라고 불렀고, 그다음에는 '센치병'으로, 또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해탈', '도사'라고 했다.
스무 해가 훌쩍 지난 요즘,
이제야 그 친구가 자꾸 떠오른다.
그 아이는 어떤 경험을 했길래 그렇게나 빨리 알았던 걸까.
난... 암이라는 지독한 녀석을 만나고 나서야 조금씩 배워가고 있는데.
"아직도 출혈이 좀 있네요. 계속해서, 하루에 한 번씩 요오드 연고를 적신 거즈를 갈아주세요."
"저… 선생님. 눈구멍을 거즈로 채운 상태로는 에피테제를 부착할 수가 없는데,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아… 에피테제요… 지금 이 상태로는 감염 리스크도 있고, 안와 피부가 건조해지면 회복이 더 늦어질 수 있어요.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는 지금처럼 하셔야 합니다. "
그럼 그렇지.
그렇게 속고도 또 기대한 내가 바보다.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일수록, 애써 기쁜 일을 찾는다.
—겨우내 손끝에 기쁨이 닿으려 하면, 슬픈 일이 나를 낚아채 저 멀리 던져 버린다.
—그래도 힘을 내 슬픔의 고개를 넘어가면, 저 앞에서 다른 기쁨 이리 오라며 손짓한다.
—서둘러 다가가는 순간, 다시 다른 슬픈 일이 튀어나와 나를 가로막는다.
눈에 구멍이 난 뒤부터,
매일이 이런 식이다.
눈 하나를 제거해야 한다는 슬픔 속에서도 '에피테제'라는 것이 있다기에 아주 조금은 안도했었다.
그래서 눈구멍의 수술 부위가 조금씩 회복될 즈음, 병원의 허락을 받아 에피테제의 제작을 시작했다.
기다렸다는 듯, 바로 다음날부터 원인 모를 염증과 출혈이 다시 심해졌다.
유니콘처럼 예쁘다는 에피테제가 완성되었지만, 나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조용히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안대뿐인가.
어릴 적, 눈병이 나서 안대를 한 친구를 후크 선장이라고 놀리지 말 걸.
반지의 제왕에서 나온 매드아이 무디를 보고 재밌는 비주얼이라며 웃지도 말 걸.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어젯밤 세수할 때 따끔거렸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도 조금 간지럽기는 했다. 아니, 한참 전부터 그랬던 걸, 다른 증상들에 정신이 팔려서 모르고 지나쳤던 건지도.
서둘러 일어나 손거울을 찾았다. 눈구멍 언저리가 울긋불긋 부어올라 있었다. 손을 갖다 대니 따끔거리면서도 간지러웠다.
제발 아니길 바랐던,
접촉성 피부염이었다.
수술 뒤 처음으로 약국에서 안대를 샀던 날.
흔히 파는 의료용 안대는 눈에 닿는 패치가 딱딱해 얼굴의 굴곡을 따라 밀착되지 않았다. 안대와 피부 사이로 텅 빈 눈구멍이 그대로 드러나, 흉측한 수술 부위를 가린 것도 가리지 않은 것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이 되고 되었다.
'나는 눈병이나 가리지, 너 같은 사람이 쓰는 용도가 아니야'
다음으로 선택한 건 접착식 안대였다. 일본에는 붙이는 안대(貼る眼帯)가 다양한 편이라, 이 동네 저 동네 드럭스토어를 돌며 하나씩 사 모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덜 띄고 자극이 적은 녀석을 골라 100개 들이 박스를 사 두었다. 넉넉한 재고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놓여서, 잠시나마 행복해하기도 했다.
매일매일 이삼십 개쯤 썼을 때였을까. 아무리 순한 제품이라 해도 반복되는 피부 마찰에 자극이 되었는지, 접착면 모양 대로 빨갛게 염증이 올라왔다.
'너처럼 나를 매일 쓰는 사람이 어딨어. 내 탓 아니다!'
결국 그것마저 포기하고,
하얀색 멸균 거즈에 민감성 피부용 테이프를 붙인, 셀프 안대로 버티기 시작했다.
그렇게 반년.
찾고 찾은 방법이지만, 매일같이 같은 자리에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니 그것마저 접촉성 피부염이 또 찾아온 거다.
'에피테제도, 안대도…
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지?'
설마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하나뿐일까? 매일 눈 한쪽을 가려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부드러운 소재와 고무로 안대를 만드는 사람이 어딘가에는 있지 않을까? 가까이에 없다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어디라도.
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간혹 코스프레나 분장용으로 안대를 만드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매일같이 착용해야 하는 사람의 피부와 일상을 고려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나마 유럽에는 비슷한 질환으로 직접 안대를 만들어서 판매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러나 문화의 차이인지 취향의 문제인지, 비즈나 보석을 이용해서 더 화려하고, 더 눈에 띄게 만든 디자인이 대부분이라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코로나로 마스크 대란이 있었을 때, 핸드메이드 마켓에서 순면으로 만든 마스크를 구입했던 기억이.
검색어를 바꾸고 또 바꿔 가며 핸드메이드 마켓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개인이나 소규모 공방이 대부분이라,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도, 지금도 운영 중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찾고 또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발견했다.
[왜 '안대'냐고요?
그 이유는… 일상복처럼 부담 없이 착용할 수 있는 안대가 있으면 좋겠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분들의 마음에 쏙 드는, '눈에 입는 옷' 같은 안대가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기대.
또 반복되겠지만—
다시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