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분석]
“여보, 일어나봐. 이거 실화냐?”
아내가 급하게 흔들어 깨웠다. 두통 때문에 약을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던 참이었더랬다. 몽롱한 채 끌려 나오듯 TV 앞에 앉았다. 윤석열 씨가 비상계엄을 선포했단다. 믿기 힘든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그 밤을 꼬박 새웠다. 외신 인용 보도를 찾아 보며 주변 강대국들의 논평도 챙기면서. 2024년 12월 3일. 3급 과장 공무원으로 정부 위원회에 출근한 다음 날이었다.
다음 날 출근한 회사 분위기 역시 심상치 않았다. 모든 홍보와 외부행사 중단이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국민통합을 추구하는 조직의 소통 부서장을 맡은 지 고작 사흘째. 계엄으로 이미 국민에게 통합을 말할 명분을 잃은 이 모순적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어차피 윤석열 씨의 탄핵과 파면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나는 ‘내 할 바를 짧고 굵게’ 해내고 떠나기로 했다.
내가 새로 세운 계획은 이랬다. ▲산산이 분열하기 시작한 대한민국의 국민통합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혼자 기획하고 진행하되, ▲3개월 안에 완료할 것.
우선, 언제나 그렇듯 홍보는 ‘상황 분석’부터. 마침 난 매일 일과를 ‘형광펜 칠’로 시작하게 됐는데, 언론 보도 스크랩 내용을 파악하고 중요 부분에 체크 해 ‘위원장이 읽기 편하도록’ 하는 식이었다. 30분 일찍 출근해야 했던 이 피곤한 일 덕분에 나는 국회의원 비서관, 청와대 행정요원, 문체부 사무관-서기관을 거쳐 오며 습관처럼 배어버린 여론 모니터링을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었다. 계엄 후 여러 언론에서 국민이 대한민국 최우선 과제로 ‘국민통합’을 꼽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이미 형광 응원봉과 태극기, 성조기가 맹렬하게 거리를 뒤덮은 상황이었다.
다음, 나 혼자서 일당백 하려면 가장 자신 있는 방법으로 해야 했다. 새 조직에 오기 전 나는 창의적인 캠페인을 해온 것으로 소문난 문화체육관광부 ‘디지털소통팀장’이었다. 5년간 대한민국광고대상, 부산국제광고제, 클리어스포츠어워드 등 국내외 31개 시상식에서 수상하며 정부 내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참이었다. 결국, 나의 선택은 ‘국민통합 캠페인’이었다. 마침 새 조직에도 캠페인 예산이 책정되어 있던 터. 바로 캠페인 기획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배경의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캠페인. 나는 이 위원회가 출범한 이후 2년 반 동안 정책제안을 해온 사회적 약자 계층이 참여하는 캠페인을 고민했다. 노년층과 청년층, 북 배경 주민과 이주 배경 주민, 자립 준비 청년과 장애인, 한부모 등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아트’를 기획했다. 그리고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가를 주름잡다 사람들 눈에서 잊힌 ‘걸개그림’을 소환했다.
예전 같은 팀원들의 집단지성이 없지만 뻔한 건 싫었다. ‘화합’과 ‘통합’을 떠올리면 으레 머릿속에 그려지는, ‘남녀노소 둥글게 원을 그리며 손을 잡은 모습’은 금물. 좀 더 세련되고 현대미술 같은 느낌을 위해 밑그림은 캐릭터 전문 아티스트에게 맡겼다. ‘모두 다르지만, 함께 밝은 얼굴’을 주제로 작업을 부탁했다.
이제 걸개그림을 설치할 장소만 정하면 큰 계획은 마무리될 거였다. 공직자들부터 보며 행정을 할 때 마음에 새기라고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을 점찍었지만, 확신이 서진 않았다. 곧바로 외부 전문가 기획 자문회의를 요청했다.
내게 캠페인의 길을 알려주신 이종혁 광운대 교수님, 김혜옥 서강대 커뮤니케이션센터 기획실장님, 서남수 사사연 고문님을 모셨다. 의견이 모아진 설치 장소는 내 마음속 2순위 후보였던 서울 광화문광장이었다. 격동기마다 민심이 하나 되어 촛불을 밝혔던 공간이자,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다양한 목소리가 용기 내던 곳. 국민과 함께 국민통합 캠페인을 실행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는 데에 모두 공감했다. 이외에도 캠페인 계획 전반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나온 캠페인 메시지 ‘모두가 국민입니다’를 모티브로 ‘우리’와 ‘이웃’, 그리고 내가 마지막에 욱여넣은 ‘함께 사는’을 조합해 최종 메시지는 ‘모두가 이웃-함께 사는 우리’로 정해졌다.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진 12명의 시민이 함께 국민통합의 바람을 담아 커뮤니티 아트 채색에 참여했고, 이 디지털 콜라주 작품은 걸개그림 안에 담겼다. 광화문광장 전시는 서울시청의 흔쾌한 협조로 넉 달간 성사됐다. 2025년 2월 26일,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걸개그림이 걸렸다. 당시는 여의도 국회 앞, 한남동 관저 앞에서 모였던 탄핵 찬반 물결이 광화문광장에서 부딪히는 시기였다. 간혹 응원봉과 성조기가 걸개그림 앞뒤를 오가는 주말이면 긴장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캠페인 과정을 담은 영상은 위원회의 지원 덕분에 조회 수 87만여 회(2025. 9. 기준)를 기록 중이다.
윤석열 씨의 비상계엄은 새 직장 출근 이틀 차인 내게 조기 퇴사의 결심을 선사했다. 하지만 국민 분열의 대혼란기에, 국민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캠페인 실행의 기회가 됐다. 나는 이제 다시 구직활동에 나서야겠지만, 대통령도 예상대로 조기 파면됐으니 덜 억울하다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