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퓰러 Sep 04. 2022

폭우 속 공덕으로! 추억의 반차여행

6월이 되었다.

상반기 리추얼 결산도 할 겸, 함께 리추얼을 하는 슈앙과 나는 한 달 전부터 반차여행을 계획했다.

계획한 날이 되었는데 야속하게도 올 들어 가장 심한 폭우가 쏟아졌다.


이렇게 비가 심하게 오는데, 반차여행 가도 될까?

슈앙은 심지어 그날따라 화장도 진하게 하고, 구두도 신고, 스커트도 입고 왔는데, 가도 좋을까?

슈앙이 꼭 가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래서 우리는 폭우 속으로 돌진했다.




폭우 속 사시미 정식 코스와 사케 먹기

첫 번째 코스로 횟집에 들렀다.

비 오는 날 횟집이라니. 우리도 참 우리다.

일단 지르고 보자며 55,000원 정식 코스를 시켰다.

사케도 시켰다. 아이스로 나오길래 따뜻하게 데워달라고 했다. 그때그때 요청할 때마다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냐고 확인까지 받았다. 이런 요란 법석한 요청사항과는 달리 결론적으로 사케는 반도 못 마셨다.


55,000원의 값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싸고 풍족한 식사를 마쳤다. 이제 본격적으로 반차여행을 하러 떠나야 한다. 반 이상 남은 3만 5000원짜리 사케를 사장님께 킵해달라고 했다. 다 먹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들고 가기엔 비가 너무 심하게 왔던 것도 있었는데, 킵해달라고 하기가 너무 민망하기는 했다. 나중에 사케를 찾으러 가보니 너무 내 명함을 다 드러내 놓고 냉장고에 보관해 두셔서 더 민망했다.




마포 한강뷰가 보이는 북카페 - 채그로

슈앙은 이렇게도 심하게 폭우가 쏟아지는 날. 잠깐만 나가도 옷이 다 젖는 이 날씨에 굳이 산이나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했다. 한 달 전 가기로 계획했던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도 쉽게 갈 수 있었던 인천 앞바다였어서 그랬던 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폭우에 모든 길은 통제되고 막힌다고 모두가 말렸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것이 한강이다.  

한강에는 채그로라는 한강뷰가 보이는 북카페가 있다.

작년 겨울 떠난 나의 첫 번째 반차여행 코스이기도 했다.


마포역에서 내려 비를 뚫고 한강변 옆에 있는 채그로를 찾았다.  

이 사진은 작년 겨울,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나를 돌아보는 리추얼, 상반기 결산을 했다.

내 올해 목표는 2억 버는 것이었는데...

슈앙은 아직 1년의 반이 남았으니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주식이 한참 마이너스다.



공덕 카페 일야(Ilya)

슈앙과 내가 처음 만난 건 2010년. 공덕에서였다.

그동안 공덕은 경의선숲길도 조성되고, 집값도 폭등하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공덕으로 반차여행을 오니 우리가 함께 프로젝트했던 장소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 근처에는 우리가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기억을 더듬어 자주 가던 카페를 찾아보기로 한다.

여전히 카페가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찾았다!

근데 우리가 서로 찾고자 했던 카페는 달랐다.

슈앙이 말했던 곳은 카페 일야.

내가 슈앙에게 말했던 곳은 이곳이 아니다.

프로젝트 건물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더치커피 전문 카페다.


기억을 더듬어 프로젝트를 했던 곳을 찾아갔다.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는 건물 두 개를 썼다.

나는 오른쪽 오래된 건물에서 일하다 왼쪽 신축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신축 건물에서 슈앙을 만났다.  

우리가 있었던 두 개의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그 건너편 내가 찾던 카페는 없어졌다.

아쉬웠다.

 

슈앙에게 더 추억이 많은, 슈앙이 처음부터 말했던 공덕 카페, 일야로 발걸음을 옮긴다.

슈앙이 말했다. 이곳 사장님이 일야의 건물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맞는 것 같다.

카페 문을 7시에 닫는 배포는 직영이어야 가능할 것 같다. 느지막히 찾은 우리는 7시까지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슈앙은 여기서 2010년, 처음 아포가토를 먹어봤다.

추억에 빠진 슈앙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아포가토를 주문했다.

나도 따라 주문했다.



추억 속으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010년에는 카페에서 담배를 필 수 있었다.

이곳은 담배 피우는 아저씨들의 성지였다.

남들 따라 아포가토를 먹은 기억도 났다.

지금은 잠시 출입을 통제한 지하공간에는 당구대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당시의 느낌은 세계여행에서 막 돌아온 선원이 차린 카페였다.    

의자도 테이블도 옛 느낌 그대로인데 그러니 더 멋져 보인다. 오래된 것이 더 빛나 보인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린다. 창 밖으로 내리는 비도 운치 있고,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클래식도 지금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스커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비에 홀딱 젖은 슈앙.

머리카락도 젖고 마스카라도 번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너무 좋다는 말을 연신했다.


우리가 공덕에 있었던 2010년.

슈앙과 나는 2010 월드컵을 보겠다고 야근을 재끼고 (당시에는 거의 매일 늦은 밤까지 야근을 했다) 한강변에 앉아 대한민국을 외쳐댔다. 한여름에는 여름휴가를 얻어 굳이 공덕보다도 훨씬 더운 경주로 여행을 떠났다. 첫날에는 업무에서의 피로를 푸느라 낮부터 호텔에서 연신 잠만 잤다. 슈앙은 나와 월드컵을 봤을 때보다, 경주로 여행을 떠났을 때보다, 호텔에서 잠만 잤을 때보다 오늘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가장 최근 일이니까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나도 오늘의 반차여행이 좋다. 추억여행이어서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이곳에서 함께 프로젝트를 했고, 종종 힘겹게 업무를 했던 젊었던 우리에게 이곳 일야는 가끔 안식처 같은 곳이기도 했다. 많은 것들이 세월 속에 사라졌지만, 그리고 기억 속에서도 지워져 버렸지만, 슈앙과 나는 이때의 프로젝트 이후로 여전히 함께 만나고 있고, 같은 곳에서 존재하고 있고, 그때 함께 갔던 카페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아포카도를 먹으면서 나도, 그리고 아마 슈앙도 바랐을 것이다.

이 카페가 영원히 이 자리에서 이대로 남아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언젠가 또 추억여행을 올 수 있기를.



-2022년 6월의 반차여행, 공덕 추억여행



매거진의 이전글 휴식의 필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