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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퓰러 Aug 24. 2022

연희동 반차여행

날은 좋고 어디 답답한 내 업무 스트레스를 토로할 곳은 없다.

때마침 오후에 큰 일은 없을 것 같다.

에잇! 오후에 반차나 내고 반차 여행이나 가야겠다!


업무로 인한 짜증에 답답함을 얹고, 연희동으로 반차여행을 떠난다.



 

연희동에 갑자기 꽂힌 이유는 지난 주말, 스스로를 골목 경제학자라고 칭하는 모종린 교수의 책을 많이 읽어서다. 연희동에 있는 연세대학교 교수인 모종린 교수는 아무래도 연희동에 대해 많이 아는 듯했다.


사러가 쇼핑센터

모종린 교수는 책 속에서 유독 '사러가 쇼핑센터'를 많이 얘기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사러가 쇼핑센터'를 가 봤다. 사러가 쇼핑센터가 성공한 이유는 골목 상권에 주차공간이 넉넉해서라고 하는데, 뚜벅이인 내 입장에서는 약간 세련된 마트 느낌 나는 슈퍼여서 지역주민들에게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걸어서 쉽게 이렇게 커다랗고 근사한 마트를 방문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근처에 대형 쇼핑몰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연희정원과 독립서점 유어마인드  

연희정원도 구옥 여러 개를 개조한 느낌이다. 장소 대여 공간인 것 같으면서, 여러 상점이 모여 있다. 옛 구옥이 세련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이중 2층에 있는 독립서점, '유어마인드'의 책들은 연희동 느낌을 한껏 살려주는 듯했다. 책 제목이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 솔직히 이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다. 독립서적 스럽다. 연희동에 서점 차린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쓴 책처럼 보이기도 한다.



에브리띵 베이글

친구가 추천하는 베이글 맛집. 에브리띵 베이글이라는 곳도 들렀다. 솔직히 이곳이 왜 인기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베이글이면 베이글이지. 먹어보니 뭐 그다지 특별한 것도 없다. 그냥 뉴욕에 있는 어느 베이글 전문점을 흉내 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인스타 성지라고 하니, 외국 느낌 나는 곳을 찾는 젊은 친구들에게는 인기가 많지 않은가 싶다. 여자친구와 온 어떤 남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오빠가 미국에 있을 때 많이 먹어봤던 치즈크림 느낌 난다."


각종 전시 - 우드랏, 연희 아트페어     

연희동은 예술가들의 성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특이한 목공 소품을 파는 우드랏도 있었고 연희동 갤러리들이 함께 '연희 아트페어'라는 전시 행사도 하고 있었다. 골목골목의 갤러리를 찾아다니면서, '연희 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전시되어 있는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젊은 작가들의 열정과 골목 갤러리들의 콜라보를 통해 예술을 사람들의 마음들이 느껴지니 팍팍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어느덧 상쇄되는 것 같다.


카페 오디너리핏

연서중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다. 연서중학교. 어릴 적 많이 들어봤는데 이런 언덕에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하긴 옛날 내가 다녔던 학교들은 다 이렇게 산에 있었던 것도 같다. 초등학교도 그랬다.

높은 곳의 넓은 구옥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 오디너리핏은 뷰가 참 좋다. 높은 지대에 있는데 주변 건물이 다 낮아 연희동 뷰가 한눈에 보이는 것 같다. 마음에 든다. 파란 하늘 아래서 잠시 감상에 젖어든다.


밤의 서점

저녁 5시에 열어서 밤 9시에 닫는다. 뚜벅이도 쉽게 찾기 어려운 옛 성산회관 뒷길에 있다. 사진도 찍지 말라고 한다. 이래서 장사가 되나 싶다. 하지만 방송에서 소개되어 본 적이 있다. 방송에서 느꼈던 신비감에 사로잡혀 어둠 속에 찬찬히 큐레이션 된 책들을 본다.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땐 마법의 공간에 잠시 초대되었다가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다.






우리 아버지는 연희동 근처에 있는 대학의 교수였다(명문대는 아니다). 그래서 나의 생애 첫 거주지는 연희동 근처 동네의 단칸방이었다. 단칸방으로 시작해 조금씩 집의 규모가 커진 아버지와는 달리 아버지의 선배 교수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있었던 부자였다. 4명 중 3명이 전 대통령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희동 부잣집에 살았다. 어릴 적, 막내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연희동에 사는 선배 교수들의 집을 방문해 그들의 자녀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차고가 어마어마했고, 정원은 으리으리했고, 푸른색 거대한 수영장이 있는 집도 있었다. 1층 거실은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넓은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창 앞에 놓인 회전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도는 재미가 있었다. 내게 연희동은 그런 이미지였다. 부자 교수 아저씨들이 사는 부자 동네. 어려서 금수저 은수저 개념조차 없었지만 연희동 모든 집의 담이 한없이 높아 보인 기억은 있다. 저 담 너머에는 어떤 모습의 집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과장해서 근 30년 만의 방문이랄까. 연희동 골목길을 걷고 있으니 옛날 생각도 많이 난다. 그런데 오늘 본 연희동은 담벼락이 많이 낮다. 그동안 나의 자존감이 낮아졌으면 더 낮아졌지 올라간 것은 아니니 담벼락이 유독 낮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담벼락은 낮추고, 그럼에도 서로의 사생활은 존중하지만, 두 팔 벌려 누군가와의 교류를 환영하는 동네. 연희동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동안 연희동은 너무나도 외로웠나 보다. 그래서 어디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새로운 분위기와 독특한 개성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동네가 되었다. 그러니 짜증 나고 답답한 내가 무작정 찾아왔음에도 이렇게 반겨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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