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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Dec 31. 2021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늘도 내가 퇴사를 접는 이유

칭얼거리는 작다를 안아서 재우고는 크다와 소소하게 과자 한 봉지씩 했다. 그리고는 크다에게 얘기했다. "우리 씨유 갈래?" 올해 마지막 날인데 춥다는 이유로 집에만 있기는 (나는) 싫었던 것 같다. 그래서 크다에게 나가자고 유혹한 거였는데 예상대로 넘어왔다.


밖에 나왔는데 생각보단 춥지 않아서 버스를 타고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오기로 했다. 예상대로, 계획대로. 바람을 쐬고 싶기도 했지만 다섯 살 마지막 날에 크다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코딱지만큼 있긴 했다.


"엄마, 오늘은 제가 안내할게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크다가 얘기하며 손을 잡고 몸이 앞서간다. 신이 나서 부릉부릉인가보다.

이렇게 나오면 보통은 돌아다니는 코스가 비슷한데, 예상대로 안내하지만 모르는 척 따라가 본다.


"여기서 두 개만 더 가면 6층이에요!"

크다가 좋아하는 오락실이 6층에 있어서 오자마자 직행한다. 엘리베이터보다는 에스컬레이터 타고 가는 것이 더 좋단다. 올라가는 방법도, 가는 곳도 항상 같지만 아이는 항상 새롭다는 듯이 신나 한다.



화장실에 들렀다. 손을 씻는데 크다의 입에서 흥얼흥얼 노래가 나온다. 기부니가 좋으신 모양이다. 청소하시는 분께서 노래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니 고맙다고 인사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근데 아빠랑 작다는 집에 있어요. 아빠는 집안일하고요, 작다는 자고 있어요."라고 아주머니께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건넨다. 네 살 되면서부터 사회성이나 사교성이 차츰 올라가기 시작한 듯 보였는데 최근에는 처음 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근데 크다야, 그런 얘기는 안 해도 된단다.



오락실 구경이 끝나고 나니 "구경 많이 해서 배고파요"라며 와플을 사달라고 한다. 사실 그냥 먹고 싶은 마음이 컸을지도 모른다. 여기 오면 늘 와플을 먹고, 그게 우리의 코스이기 때문이다. 와플 먹고 서점에 가자고 유혹해본다. 서점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퍼즐, 스티커북, 장난감들이 있어서 역시나 뿌리치지 않는다.


입구에서부터 "이거 마음에 들어요"라고 얘기했지만 한 바퀴 다 둘러본 뒤에 결정해보자고 말한 뒤에 천천히 둘러봤다. 두세 번 정도 결정이 바뀌긴 했지만 오늘은 캐치티니핑 스티커 색칠놀이를 골랐다. 크다와 작다, 하나씩 선물하기로 한다. 올해 마지막 날이니까.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지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한참을 본다.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엄마가 퇴사는 조금 더 넣어둬 볼게'



"오늘 나랑 다녀오니 어땠나 오버"

돌아오는 길에 크다가 물었다. 보통은 내가 (또는 남편이) 물어보는 말인데 아이가 먼저 물어봐서 놀랬다. "같이 다녀와서 행복했다 오버"라고 말하니 돌아오는 답에 더 놀랬다.

"그렇게 얘기해주니 내가 뿌듯하다 오버"

"(!!).. 그래, 엄마도 크다가 그렇게 말해줘서 흐뭇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때가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오늘 크다는 더욱 그랬다. 엄마는 화도 많이 내고 성질도 많이 부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고 예쁘게 잘 자라 주는 크다가 대견하고 기특하다.

남편 혼자 벌어도 살 순 있다. 그치만 지금처럼 아이가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고민하지 않고 해 줄 수 있는, 넘치진 않지만 넉넉한 환경에서 계속 아이가 커가는 걸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퇴사는 살포시 접어본다. 출근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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