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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Feb 13. 2023

배달이 왔다

디스크 이야기 #9

집에서 찜질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막내였다. 어쩌다 한 번씩 연락이 온다. 대체로 조카들이 생각났거나 집에 무슨 일이 있을 때 그렇다.

"목소리가 왜 그래? 다 죽어가네?"

소리에 신경 쓰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기운 없는 채로 누워있어서 더 그렇게 들렸겠다 싶었다. 내 목소리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유난히 힘이 없었다.

"장녀라며~ㅎㅎ"

"야! 장녀는 안 아프냐?!"

동생은 아마도 '아파도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스스로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던데 내가 볼 땐 말주변이 참 없다. 가족한테라서 그런가.




"오늘은 좀 어때?"

일주일 정도 뒤에 다시 가 왔다.


"나아진 것 같기도 하다가 금방 또 아니야."

"그거 약발이야."

막내의 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맞다, 약발이다.


"애들 어린이집 갔어? 뭐 좀 시켜줄까?"

누나가 아프다니까, 그것도 며칠씩이나 거의 누워있다니까 신경이 쓰였던 걸까. 원래 잔정이 있었는데 그동안 잘 몰랐던 건가.


"연말에 친구네서 일했어."

이런저런 생각에 바로 답을 못했는데 잠깐의 공백이 신경 쓰였는지 막내가 덧붙여 말했다.


"애들은 아침에 어린이집 갔지.

 점심 먹으러 왔는데 마음만 받을게."

"그래, 알겠어."

"그래, 너도 점심 챙겨 먹어."


동생 마음에 답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너도 챙겨 먹어'라고 말했다. 원래 서로 다정한 말을 주고받는 남매는 아니었지만 순간 얼추 흉내는 낸 것 같았다. 처음이 어렵다고 했는데 앞으로라도 하게 되려나.




다음 날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조카들이 보고 싶은 게군. 아이들과 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삼촌은 아이들과 몇 마디 나누다가 이내 누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물었다. "애들 당근 케이크 좋아해?"


얼마 안 있다가 배달이 왔다.

벨이 눌리니 둘째 작다가 해맑게 외쳤다.

"문 앞에 놔주세여~!!"


며칠 동안 성사가 되지 않았던 동생의 숙제(?)가 드디어 도착했다. 아이들은 삼촌 덕분에 신이 났다.

고마웠다. 아파서 힘들지만 덕분에 알게 되는 것들이 생겨서 좋다.


"엄마, 이거 내꼬야?"라며 발 얹는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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