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까지 일하는 날은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 있다.
'대체 왜 퇴근을 못하는 걸까'
독일에 있는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하는 시간이 뒤로 밀린다. 서머타임도 (진작에) 끝나서 오후 4시가 되어야 독일은 오전 8시가 된다. 퇴근 준비를 해야 할 시간에 저짝은 이제 "굿모닝"하며 출근한단 소리다. 지금은 서머타임의 그 한 시간이 아쉽다. 너무! 완전! 매우!! 독일 놈들은 9시 반에서 10시 반 사이에 회의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작 한국에 있는 나는 1도 배려해주지 않는단 얘기다. 어쩌겠는가. 갑님께서 그리하시겠다는 것을. (나도 해보고 싶다)
오후 3시부터 5시 30분까지 회의했고, 오후 6시 30분부터 30분 정도 또 다른 회의를 했다. 회의 마치고 남은 업무를 정리하고 나니 시간은 어느새 오후 10시 26분. 남편이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갔는데 다 같이 잠들었는지 집안이 매우 고요해졌다. 연말정산을 해볼까 하다가 어떻게 하는지 잊어버려서 그만뒀다. 매년 하는데, 10년째 하는데, 할 때마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정리해뒀던 메일이 있었는데 (매년 그것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클라우드 PC로 변경하면서 그 메일이 날아갔다. 올해 연말 정산하면서 다시 정리해볼까.
사실 오전엔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농땡이를 부린 것도 아니었다. 되려 집중해보겠다며 내가 좋아하는 밀크티를 내게 사줬다. 내자신아 힘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어김없이 늦게 퇴근했다.
복직한 지 이제 만 2년이 되었다. 1년은 전에 없던 업무분장으로 인해 전혀 바쁘지 않았다. 그때라도 제대로 놀고 쉴 걸. 눈치 보면서 제대로 쉬지도 놀지도 못했던 것이 이제 와서 아쉽다. 그다음 해에는 원래대로 되돌아온 업무분장 때문에 6개월은 밤낮없이 아이들 잘 때 나와서 잠 들고나서야 들어가는 생활을 했고 (남편아 미안해) 나머지 6개월은 지금처럼 일주일에 못해도 3일은 야근하는 신세가 되었다.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는 날에 아이들은 오롯이 남편 몫이 되었다. 재택이면 아이들이 "엄마!" 하면서 내게 자주 오기는 하는데 되도록 남편이 방어해준다. 아이들도 이제는 적응이 되었는지 전처럼 많이 오지 않기도 하지만. 잠자러 들어가면서 "엄마 힘내세요"하고 들어가고, 자러 들어갔다가 한 번씩은 꼭 다시 나와서 "엄마 힘내세요" 또 얘기하고 들어간다. 고맙다, 뽀시래기들. 덕분에 힘냈다. 물론 남편이 제일 고맙다. 사랑해, 여보♥
상황적으로 늦게 퇴근할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시차 때문에 하나만 더 넘기자, 하나만 더 넘기자 하는 내 성격도 한 몫하는 것 같다. 남은 일이 뻔히 보이는데 그걸 덮지 못하는 탓도 있다. 내일의 나에게 넘기면 될 일인데 나는 내일의 나를 덜 힘들게 하고 싶다. 내일은 내일대로 일이 또 많이 생길 텐데 오늘 일까지 얹기 싫다. 그러면 안 된다. 그럼 정말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고생 좀 했다. 오늘은 일을 마치고 잘했다 내자신 하며 스스로 격려라는 걸 해봤다. 잘했다, 잘했다.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