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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May 11. 2022

잔인한 4월이 지나갔다

시간은 말없이 흘러간다.

근길이 이르다. 겨울에는 깜깜한 길이어서 춥다, 어둡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던 길이, 해가 많이 길어지고 난 뒤부터는 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 중순이 지난 어느 날은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 한눈에 보였다.


매일같이 걸어 올라가는 버스정류장도 이제는 중간에 쉬지 않고 한 번에 끝까지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숨을 고르지 않아야 되는 건 아니다.



'너무 쉼 없이 살았던 건 아닐까'


가끔 생각한다. 살면서 쉼표를 한 번씩은 거하게 찍었어야 했는데, 되짚어보니 그런 게 없는 듯하다. 그래서 요즘은 길을 잃어버린 듯, 갈 곳을 잊어버린 듯 멍하게 지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4월 초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일주일 뒤에는 시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 뒤, 같이 일하는 책임님께 슬픈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 달 동안 휘몰아치듯 일어났다. 참 잔인했다.


외할머니는 언제부터인가 어깨 등이 결리고 아프다고 하셨단다. 지병이 있진 않으셨다. 엄마랑 이모들은 그저 담이겠거니 생각하셨었는데, 검사를 받아보니 폐암이다. 오래지 않아 할머니는 자식들 곁을 떠나셨다.


할머니를 이모 댁으로 모시고 가신 다기에 인사드리러 갔었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할머니는 아이들을 보시면서 예쁘다, 어쩜 이렇게 하얗라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자고 가라고 하셨는데 그러질 못해서 못내 아쉬워하셨던 모습도 선하다.


상복만 안 입었을 뿐 상주와 다름없는 3일을 보냈다. 엄마, 이모들, 삼촌은 물론이고 이모부들까지. 말씀드릴 어른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하나 쉬이 결정되고 결론 나는 일이 없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도 많았지만 상주도 아닌 그저 손녀딸 불과해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다.


아이들은 남편에게 부탁하고 동생네와 내내 빈소를 지켰다. 그리도 많은 손자 손녀들은 다들 조문객처럼 왔다가 갔다. 엄마는 내게 외할머니 생각해서 하는 거지 않냐며 어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나랑 딱 열흘만 살자고 하셨단다. 그로부터 딱 열흘 뒤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아는 걸까.


할머니는 할아버지 옆에 자리하셨다. 십 년 넘게 쌓인 이야기들을 이제는 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은 몸살이 났다. 장염에도 걸렸다. 한 번은 탈이 날 것 같았는데 어김없었다. 장염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죽을 며칠 먹었으면 조금은 빨리 나았겠지만 그래도 그때그때 먹고 싶은 거 먹은 덕분에 버텼다 싶다.


엄마가 걱정됐다. 잘 버티실 수 있을까, 행여 병이 나지 않을까. 결국 엄마도 몸살이 나긴 했지만 엄마는 내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니, 괜찮아 보인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요즘은 옛날에 왜 3년상을 치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쩌면 그 시간은 이미 떠난 사람을 떠나보내는 남겨진 사람들의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다 마주하고 나면 지금보다 편하게 떠올리며 추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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