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쓰담 May 12. 2022

엄마가 들떠있다. 기분이 좋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요즘은 문득 한 번씩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엄마에게 그리 살갑지 않은 무뚝뚝한 딸이지만 이제는 남편도 엄마도 없는 내 엄마 걱정에 한 번씩은 전화를 걸게 된다.


"저녁 먹었어?"

"뭐해?"

"기침은 좀 어때?"


전화해서 묻는 말은 항상 같다. 일상적이면서도 의무적 물음이다 보니 엄마랑 통화는 항상 짧다. 어쩌다 통화를 길게 하는 날도 가끔 생긴다. 전화하는 횟수가 전보다 늘어서 그런가 보다.


엄마는 코로나가 지나간 이후로 계속 기침을 한다. 그래도 전보다 나아진 것 같아서 말을 꺼냈는그때부터 기침을 계속하시는 것 같은 건 그저 기분 탓겠지. 그래도 좋아지기는 해서 다행이다.



"내일 제주도 가."


제주도로 여행 간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는 살짝 들떠있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친구분들하고도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아빠랑은 바람 쐬러 가까운데 한 두 번씩은 가셨던 것 같긴 한데, 아빠도 멋없는 사람이라 사실상 어디 뭐 먹으러 갔던 게 전부였지 않았을까 싶다.


가족들하고만 다녀온 마의 여행은 거진 10년이 다 되어간다. 바쁘게 살았던 것 같은데 엄마랑 이렇다 할 추억도 얘깃거리도 없이 살았나 싶다.



아, 아빠랑 다 같이 3년 전에 좌구산 휴양림에 다녀왔었다. 생각났다. 1박 2일이었고 친정에서 가까운 거리였어서 여행으로는 기억이 잘 안 났나. 작다가 아기띠에 매달려있던 시절이었다. 크다가 지금의 작다보다도 어릴 때였다.


아빠가 컨디션이 좋진 않았어서 멀리는 못 가고 '여기가 좋다더라'라고 엄마가 얘기해줘서 다녀왔었다. 사진이라도 많이 찍을걸 그랬다.


지나고 보니 사진이며 동영상이 가장 아쉽다. 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이면서도 사진에 찍히는 것이 익숙지 않다 보니 남아있는 게 많지 않다. 동영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엄마 아빠 세대는 더 익숙지 않으니 사진조차도 더더 없다. 동영상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가들만 열심히 찍어줄게 아니라 엄마 아빠도, 나랑 남편도 열심히 찍었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노력해봐야겠다.



엄마는 목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배로 제주도에 들어간다고 했다. 회비를 덜 걷어서 그렇다고 했다. 제주도로 가는 여정 자체도 여행으로 볼 순 있겠지만 그래도 좀 아쉽다. 엄마는 멀미도 심한데 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무튼 엄마는 여행을 간다.


비행기 타고 가는 줄 알았던 여행이었어서

"엄마, 비행기 탈 때는 신발 벗도 타야 돼. 알지?"

라며 엄마에게 장난도 걸었다.


엄마는 예능을 다큐로 받았다.

옆에 있는 막내한테 물어보니 막내가 그저 웃는다.


배 타고 간다길래,

"배 타기 전에 신발 벗고 큰 절하고 타야 하는 거야."

했더니 그제서야 엄마도

"응, 그럼 돗자리 가져가야겠다." 하신다.



사실 여행 가서 쓰시라고 남편 몰래 용돈을 조금 더 드렸다. 어버이날 용돈으로 되었겠지 싶었는데 둘째가 얘기를 꺼내서 아차 싶었다. 이럴 때 보면 속이 참 깊다. 언니보다 낫다.


"고마워. 잘 다녀올게."

엄마의 말에서 고마움과 들뜸이 동시에 느껴졌다.


엄마가 제주도로 여행을 가는 날에 향기 좋은 꽃을 만났다. 어지러워서 터덕터덕 걷고 있었는데 마스크 안으로 가득 꽃내음이 어왔다.


엄마의 여행도 꽃내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잔인한 4월이 지나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