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사무실 출근했던 날.
어제 하루를 정리해보면 출근하는 길부터 시작된 팀 회의는 점심시간 직전에 끝났고,
오후에는 팀장님께서 면담을 한다고 부르셔서 또 한참을 얘기했고,
퇴근하기 직전에 "미안한데, 5분만 줄 수 있나"로 시작된 또 다른 면담으로 또 한 번의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올해 면담은 마친 터라 오후에 호출하실 때는 무슨 일인가 싶었더랬다.
고과 오픈 전에 하는 면담이었고, 내 고과를 말씀해주시는 거였다.
10년 넘게 회사 생활했지만 고과에 대한 기대는 크게 없었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내가 1년 동안 한 일에 대해 평가를 받는 것이지만 회사라는 것이 어디 그렇게만 평가를 줬던 적이 없었다. 상황적으로 정치적으로 항상 복잡 다양한 이유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간 그렇게 지내왔었다.
그치만 올해는 달랐다. 상반기에는 말 그대로 나를 회사에 갈아넣었고 당시에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나왔다가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들어가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내 최대치였다. 다시 그 생활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을 만큼. 그러면서 올 해는 처음으로 고과에 대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하면 A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S까지는 바라지도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올해 고과는 B.
다들 열심히 해서 그건 평가하기가 어려웠고 누가 더 depth 있게 일했느냐가 평가의 요소라고 말씀하셨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게 기회는 없겠구나 싶었다. 못해도 앞으로 2~3년은 이 거지 같은 생활을 해야 여기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생활을 앞으로 더해야 한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싫었다.
팀장님은 기회가 있을 거다, 이제 1년한거니까 조금 더 힘내보자, 내가 생각했던 A의 풀에는 너도 있었다. 그러나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후 팀장님과 나는 평행선상의 이야기만 주고받다가 긴 면담을 끝냈다.
퇴근 직전 면담에서는 팀장님께서 다시 물어보셨다. 이동 의사에 대해서는 조직책임자와 면담 후 합의를 도출한 것으로 봐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다시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다. 올해 다른 조직 산하로 들어온 것이 아무래도 영향이 있었나 보다.
"네, 이동하겠습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이렇게 대차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던가.
결국은 덜 힘든 데로 가겠다는 거고, 이러면 불이익이 있을 순 있지만 나는 그러고 싶진 않고, 이런저런 말씀을 해주셨지만 예상했던 이야기였던지라 크게 놀랍진 않았다.
어찌 코멘트를 써서 보내실지에 대한 우려와 궁금증에 자리를 찾아가 슬쩍 한 마디 더 얹었더랬다.
물리적인 시간으로 여기는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고객사가 독일이고 지사도 유럽에 있으니 여기 4시면 저짝은 출근해서 나오는 시간이다. 독일 퇴근 시간에 맞춰 나도 퇴근한 날이 하루 이틀은 아니다.
결국 어찌 써주셨는지 보지는 못했다.
집에 와서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 코멘트로 인해 권고사직을 당할 수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나는 어떤 마음일까, 어떤 결정을 내릴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크게 동요치 않는 내 모습에 나도 조금은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