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 에스터 <보 이즈 어프레이드> - 무의식이 들여다본 의식의 나약함
아리에스터 영화의 장점은 공포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보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잔인한 장면은 더러 나오지만 공포스러운 이미지는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보'의 불안과 동기화되고 '보'가 마주하는 당혹감이 피부를 스치는 느낌을 준다.
영화 속에서 '보'는 항상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뛰어다닌다. 영화가 난해하고 헷갈릴 수 있는 지점은 '보'라는 인물이 어떤 특정한 트리거 없이 둘 사이를 오간다는 점이다. 가족은 무의식이 가장 많이 축적되는 관계고 그렇기에 무의식과 의식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 이 더더욱 영화 속 이미지의 뚜렷한 위치를 알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아리 에스터는 의식과 무의식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를 아예 터트려 버린다. 그렇게 머릿속에 존재하던 무의식의 댐이 터지고 의식보다 훨씬 거대한 무의식이 의식과 뒤엉키게 만들어 관객들을 그 홍수 속에 수몰시킨다. 영화 속 이미지들은 무의식 한편에서 통제되고 있던 생각들이 의식과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고개를 들이미는 공포와 불쾌함을 제대로 전달한다. 어떤 시선으로 보면 의식이 무의식에 사냥당하는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코렐라인이 실사화된다면 이런 느낌으로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엄마 눈에, 그리고 상담사와 로저부부 눈에 왠지 단추가 달려있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코미디의 장르를 내세우는 이유는 구조적으로 코미디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함정은 공포영화에도 똑같은 형식과 구조가 있다는 점이다. 즉 이 영화는 공포 영화와 코미디 영화의 교집합 사이에서 태어난 혼찍한 끔종인 것이다. 영화는 모든 순간 관객들의 예상을 뒤집는다. 누군가 예상할 만한 모든 상황들에서 예측 가능한 답이 아닌 아리 에스터만의 답이 나온다. 코미디라면 웃어야 할 상황이고 공포라면 놀라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감정이 섞여 당혹감을 준다. 이 부분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보라는 인물과 관객들이 동기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솔직히 코미디 영화지만 웃기진 않다. 공포영화지만 무섭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웃긴 점은 아리 에스터 감독이 관객들 웃으라고 만든 영화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아리 에스터 감독에게 기대하는 웃음의 저점이 낮아서 웃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영화가 웃기진 않지만 기가 막히게 좋은 영화인 점은 부인할 수 없다. ( 그래도 몇몇 장면들은 웃긴 부분이 있다. )
전체적인 스토리는 보가 엄마를 찾아가는 내용이다. 장소적으로는 보의 거처에서 엄마의 집으로 이동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스토리의 흐름보다 중요한 것은 보의 시선에서 보와 얽힌 관계들의 흐름이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보'와 엄마와의 관계일 것이고 보와 일레인, 보와 아빠 등등 보는 자신의 불안감의 근원이 되는 무의식 속 이야기들을 엄마를 찾아 나서는 길 속에서 하나씩 풀어 나간다. 보의 불안감의 근원은 엄마로부터 온다. 엄마의 집착과 엄마가 했던 이야기에서 오는 '보'의 무의식 속 환상들이 '보'라는 인물을 수동적인 인간으로 내몬다. 그중 대표적인 이야기는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관계 중에 목숨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보'는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보의 엄마를 보며 봉준호 감독이 만든 마더에서 나오는 광기의 모성애가 살짝 겹쳐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 영화에서는 광기가 증오의 형태로 보를 향한다. 그리고 세상 많은 엄마들이 아빠들을 깎아내리며 자식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하는 것도 생각이 났다. 어른이 됐을 때 엄마의 말들을 조각해서 아빠를 떠올리면 아빠는 괴물이 돼있다.
의식은 무의식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없으면 너무나도 나약하게 무너진다. 보는 엄마에 의해 생겨난 무의식들이 끊임없이 의식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무너진 방파제 너머로 자신의 무의식과 엄마가 떠넘기는 무의식이 파도처럼 떠밀려와 보라는 인물을 수몰시킨다. 엄마와 보의 관계는 아리 에스터가 극단적으로 그려내긴 했지만 생각보다 보편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특히 많은 아이들이 일거수일투족 부모의 통제 아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 영화에서 모나가 말하는 장면들은 많은 엄마들의 무의식에 내재된 말들을 잘 표현한 대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무의식의 말들은 수많은 '보'를 생산해 낸다. 사실 영화의 시작에서 관객들은 이미 '보'로 재탄생해서 의자에 앉아있게 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보'의 불안감 덩어리를 함께 짊어지고 가게 되는데 이 감정이 생각보다 낯설지가 않다.
이 영화는 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공포와 불안이라는 원초적인 감정을 이해하게 한다. 이해라기보다는 우리가 막연하게 느낌으로 알고 있던 공포와 불안을 선명한 이미지로 경험하게 된다. 그럼 막연했던 감정이 선명해지면서 그 감정을 다시 마주해야 하는 순간에 더 큰 불안을 만들어 내게 된다. 아리 에스터의 불안과 공포는 이렇게 선명한 경험이 쌓이면서 스노우볼이 된다. 영화 안에서 시퀀스를 지날 때마다 선명한 경험들이 쌓이고 함께 짊어지고 가는 불안감 덩어리가 끊임없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결말에 그렇게 끌고 가던 불안감 덩어리를 놓아 버렸을 때의 허무함과 카타르시스가 함께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체험들은 영화의 기가 막히는 사운드와 함께 극대화되고 영화가 끝나면 거대한 공허함이 극장 안에 돌덩이처럼 떨어진다.
p.s 와킨 피닉스의 연기는 말이 필요가 없다. 조커와 연기적으로 차별점을 두려고 했겠지만 보의 집 주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조커를 떠올리게 한다. 조커를 닮은 배경 근데 아리 에스터식 코미디를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