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워커 <로큰롤 인생>
리허설 시간에 졸고 있는 할머니의 코털이 보였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의 코털은 아주 검고 생기가 있었다. 할머니의 숨이 오가는 리듬에 맞춰 할머니 대신 노래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누가 잠을 죽음의 연습이라고 했을까. 이 장면에서 잠든 할머니의 모습은 누구보다 평온하게 그렇지만 강렬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장면이었다.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오페라든 락이든 머리카락이든 코털이든 무슨 상관일까. 졸음에 겨워 정신이 맑지 않아도 혹은 너무 정신이 맑아 잠을 잘 수 없어도 경쾌한 숨소리에 맞춰 유쾌하게 흔들리면 그만이다. 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젊은 사람들에게 노래하고 춤추는 법을 알려준다. 그래서 그런가 호흡기를 달고 Coldplay - Fix you를 불러주던 프레드 할아버지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평균연령 81세의 할머니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영앳하트>라는 코러스 밴드의 다큐멘터리다. 이들의 공연 연습부터 공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로 전체적으로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여기에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죽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죽음은 모두가 거쳐가야 하는 관문이자 인류의 두려움을 한껏 담은 단어이지만 이들은 죽음도 노래할 것 같은 아주 가볍고 상쾌한 태도로 죽음을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에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자 같은 상투적인 문장도 이들의 행보를 통해 듣게 된다면 아주 뜨거운 울림을 주는 문장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죽음을 에너지가 사라지는 순간이 아닌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뜨겁게 자신을 달궈나가는 사람들 같다.
말은 심각하게 했지만 영화는 전체적으로 코믹한 톤을 잃지 않는다. 시종일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농담 섞인 말들을 담고 그들을 소개하기 앞서 인물들이 가진 병명을 읊는 것은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게 만드는 요소였다. 영앳하트에서 노래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락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클래식이나 오페라를 듣고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는 그들이 락을 노래하게 된 것도 하나의 아이러니이자 삶에 대한 농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래한다는 행위에 있어서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음악이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게 되는 건 나이, 성별, 인종, 지위 등이 만드는 벽들을 늘 무너트리며 편견과 고정관념을 돌파해 왔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런 의미에서 돌파구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이 사람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벽까지 무너트리며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느낌까지 받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인물들이 기억력 이슈로 가사를 까먹거나 들어가는 타이밍을 까먹어 같은 라인만 수없이 반복하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가사와 타이밍을 기억해 내고 성공적인 공연을 해낸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가 어떤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끊임없이 기억해 내려고 발버둥 치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게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삶에서의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도 내가 숨 쉬고 있다는 것,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느끼고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살아있음을 정의하는 건 가사를 외우고 음을 외우고 그것들을 입으로 부르는 행위였다. 그들의 기억력이 나빠지고 당장 병 때문에 죽음과 아주 가까이 직면해도 자신에게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노래를 부름으로써 죽기 전까지 내가 죽지 않고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그리고 쉽게 우리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요소를 끝없이 기억해 내려고 해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던가 한 번뿐인 인생을 즐기라던가 하는 속 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위로 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생존을 삶으로 만들어 주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껴도 즐겁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나를 즐겁게 만드는 요소라고 할지라도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살아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누가 나를 위해 정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삶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면 우리 가까이 다가온 죽음 앞에서도 경쾌한 웃음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극 중에서 프레드라는 할아버지가 폐에 물이 차서 노래를 그만둔 상황에서 특별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Coldplay의 Fix you를 부르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정말 뭉클하게 다가왔는데 노래의 제목, 가사와 호흡기를 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한데 어우러져 할아버지의 마지막 생명력을 노래에 담아 전달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래의 Fix you는 I will fix you가 아닌 I will try to fix you로 사용된다. 이 부분을 할아버지가 부르는 장면에서 삶이나 죽음 같은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무기력한 인간이지만 어찌 됐든 살아있음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가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러한 거대한 흐름보다 더 커다란 희망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여기에 나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는 노래가 삶을 유지시켜 주는 호흡기다. 폐에 산소를 공급해서 생명을 유지하게 만드는 호흡기만큼이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이 호흡기 또한 우리 삶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이들의 노래가 감동적인 이유는 이러한 것들을 삶의 마지막에서 자신들의 치열했던 긴 세월을 장작 삼아 다시금 불태우며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