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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케 Jul 13. 2023

<NOWITZKI>
빈지노가 쓰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주관밖에 없는 빈지노 <NOWITZKI> 리뷰

 빈지노가 그간 내왔던 노래들은 '젊음' 그 자체를 수반하고 있다. 힙합LE 인터뷰에서 빈지노는 자신이 이제는 꿈, 열정, 청춘 그런 것들을 노래하기엔 좀 징그러운 나이가 됐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빈지노는 본인이 앨범 내는 시기에 뱉을 수 있는 가장 현재에 충실한 단어들을 노래해 왔다. 과거의 젊음을 끌어와 현재인 것처럼 포장한다던가 현재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자신은 남들보다 앞서갔다고 우긴다거나 하는 객기를 부리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나이는 지금이니까 현재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자신다운 모습을 포착하여 노래에 담는다. 젊음이라는 단어를 해석함에 있어서 사람마다 의견이 갈리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들을 하는 것이 젊음이 아닐까. 현재라는 단어의 멋스러움은 상황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미래를 두려워하거나 과거를 후회하는 감정이 담길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빈지노의 음악은 빈지노라는 래퍼가 몇 살에 앨범을 내든 젊음이고 청춘일 것만 같다.


빈지노 <NOWITZKI> 앨범 커버

 살다 보면 꼭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질문이 '좋아하는 가수 누구예요?'인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질문들을 받지는 않지만 그런 질문이 있을 때마다 '빈지노요.'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상대방이 빈지노가 누구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거나 '그게 누구예요.'라고 반문하면 그것도 모르냐는 눈빛으로 바라봐준다. 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씹덕이고 혼모노였을 텐데 말이다. 그랬던 빈지노는 이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MZ라면 혹은 음악 좀 듣는다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최고의 래퍼다.


 사실 음악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다루는 악기도 없다. 그렇지만 주변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아이돌 노래든 발라드든 힙합이든 뭐든 열광적으로 좋아할 때 나도 그런 것들을 좋아해야 하는 건가 하는 물음에서 여러 음악들을 찾아 듣다가 빈지노의 음악이 내 음악적 세계관의 중심이 됐다. 지금은 재즈도 좋아하고 힙합도 좋아해서 이것저것 듣기도 하고 외국 노래들을 더 많이 찾아 듣지만 이 모든 시작이 빈지노라는 가수의 노래에서다. 빈지노가 Jazzyfact라는 그룹으로 <Lifes Like>이라는 앨범을 냈고 그 앨범은 내가 재즈를 듣게 된 계기이자 힙합이라는 문화에 빠지게 된 계기가 됐다.

Jazzyfact <Lifes Like> 앨범 커버

 최근 제목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제목은 사실 빈지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소년인데 책은 3인칭으로 진행되지만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시간의 경계나 장소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가 스티븐이 작가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 3인칭이지만 읽으면서는 작가의 1인칭 시점을 보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빈지노의 노래는 반대다. 빈지노는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노래 안에 존재한다. 하지만 빈지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1인칭이지만 3인칭으로 작품 속 세계를 관망하는 느낌이 든다. 이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작품 속에 있지만 작품 밖 세계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특히 더 좋았다.


 이 앨범은 빈지노라는 인물의 모든 서사가 담겨있다. 우울함, 죄책감, 고민이나 즐거움, 자유로움까지 그걸 멜로디와 가사를 이용해 한 권의 책으로 묶은 느낌이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나오는 스티븐은 예수회 사제로서 성적인 타락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예술적인 것들, 종교적인 고민들, 가족 관계 등에 대해서 고민한다. 빈지노는 이 앨범에서 예술가로서의 역할과 남편으로서의 역할, 힙합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솔직하게 담았다. 빈지노라는 래퍼를 훌륭하게 만드는 점은 이러한 솔직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함이란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하면 몸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는 법이다.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의 영역과 본인이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고 모두에게 자신의 깊숙한 곳까지 보여도 당당할 수 있는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바이브가 솔직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은 그가 만드는 음악들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만든다.


 빈지노의 앨범은 항상 서사가 있다. 내가 이 글의 제목을 빈지노가 쓰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라고 적은 이유다. 빈지노의 서사는 고민에서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내놓는 고민에 대한 대답까지다. 빈지노의 고민은 이번 앨범에서 그의 아내인 스테파니로 귀결된다. 정서적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빈지노가 힘들 때 옆에서 힘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스테파니라는 인물을 다시 찾아 떠나는 여정같이 느껴졌다. 어찌 보면 빈지노의 정신적인 로드트립 같은 느낌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장고가 떠오르는 부분도 있다.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장애물들과 역경을 극복한 뒤 말 위에서 시가를 물고 애인을 보며 미소 짓는 그런 그림이 떠오른다.


장고 보다 보면 이 장면에서 감동받아서 눈물 나온다.


 내 돌아오지 않을 지난날들은 빈지노의 음악들과 함께 했다.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을 채워주는 존재가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빈지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로 남았고 앞으로도 그런 존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빈지노 믹스테입부터 지금 앨범까지, 내 중학교 시절부터 20대 후반까지, 내 기억과 현재에 음악으로 존재하는 빈지노는 여전히 젊다. 힙합LE 인터뷰에서 다 똑같은 거 할 거면 뭐 하러 예술하냐고 했던 빈지노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은 빈지노가 처음 만들었던 음악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똑같이 적용되어 그의 작품들에 담겨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러한 생각과 사고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번 앨범은 특히 더 반갑고 감사하다.


마무리는 이 모든 것을 있(잊)게 해준 빡빡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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