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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케 Aug 26. 2023

나에게도 시를 쓰던 과거가 있었다

<늦은 7월 리뷰> 달에 대한 리뷰③

 7월은 꽤 바쁘게 돌아갔다. 아직 회사 생활에 완벽하게 적응한 느낌도 아니었기 때문에 바쁘게 돌아가는 사이클에 맞춰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스타트업 특성상 조직 편제가 순식간에 바뀌었다가 다시 되돌아갔다가를 반복해서 그러한 흐름에 적응하려면 경험이 더 쌓여야 할 것 같다.


  회사를 출근하면 라운지에서 누군가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커피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을 했다가를 반복한다. 그나마 내가 생각했던 회사 생활보다는 훨씬 낭만이 남아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욱더 확실하게 내가 조직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함께 예비군을 다녀오고 친분이 생긴 동료가 있는데 나에게 본인이 쓴 시를 몇 편 읽어주었다. 시에는 자신의 연애담에서 오는 진한 여운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요즘 시를 쓰거나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시를 썼었다는 말을 했다. 난 내가 쓴 시를 누군가에게 읽어 주거나, 보여 주거나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기본적으로 언제나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지배적인 사람이라 내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나 내 진지한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최대한 아낀다. 시라는 것은 가장 무의식에 있는 감정과 이미지들을 단어로 치환하는 일이기에 이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 자체로 굉장히 벌거벗은 느낌을 준다. 그런 나에게 당당하게 시를 읽어주는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 신기함의 기원에는 내 주변에 시 쓰는 사람이 처음이었던 것도 한 몫했다. 이 경험은 내가 시 혹은 어떤 창작물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없는 내용의 이야기들이라면 나 스스로에게도 떳떳하지 못한 생각들을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하게 됐다.


 최근에 박보영 배우가 출연한 유퀴즈 온 더 블럭을 시청했다. 박보영 배우는 자신의 일기장을 아주 부끄러워하면서도 그 일부를 방송에서 공개한다. 누군가 보거나 문제가 될까 봐 지난 기록들을 태우기까지 하는 사람이 왜 이런 부끄러움을 불사하고 숨어있던 기록들을 발표했을까. 가끔 난 일부러 내 부끄러운 것들을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런 감정들이 원동력이 되는 순간들이 있긴 하다. 그런 건가. 혹은 위에 말한 것처럼 좀 더 떳떳하고 올바른 생각들을 위해서 기강 한 번 잡고 가는 건가. 어찌 됐건 감정이나 기록, 혹은 시나 가사, 머릿속에 이미지, 이런 것들을 너무 오래 담아두면 고여서 부패해 버린다. 그걸 말하고 발표하고 공유하는 행위는 그나마 내가 가진 것들을 덜 고이게 만든다. 깊이를 위해서 숙성의 시간은 분명 필요하지만 너무 깊게 파고들어 가다 보면 지구 반대편이 나오거나 그 깊이와 수심에 매몰돼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난 고이는 것이 싫다. 항상 어디로든 무엇으로든 흘러가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렇기에 회사라는 조직을 생각하면서도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난 남들보다 기준이 짧다. 목표로 두고 있는 기준이 있지만 그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오만한 말일 수 있지만 이러한 생각이나 성격 덕분에 어딜 가든 고여있는 부분들이 꽤 선명하게 보인다. 아마 내 속에 고인 것들이 많아서 그런 것들을 보는 행위가 더 선명하게 괴로움으로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생각들은 딜레마나 아이러니를 극복하지 못해 고이는데 그렇게 고이다가 썩은 이미지들이 들어와 내게 고여있던 생각들과 함께 뒤엉키고 섞여 아주 우스꽝스러운 춤을 춘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고통을 조금은 덜기 위해 내게 고여있던 생각들을 배설한다. 앞으로 그간 고여있던 시들도 차근차근 빼낼 예정이다. 이게 깊어지다 지구에 구멍을 내거나 그곳에 물이 차 내가 잠겨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난 수영을 못한다.


<고인다는 표현은 감정적으로나 사고적인 것들이 한 곳에 고정된다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모든 포커스가 회사에 맞춰지거나 이미 갖추어진 업무적인 사고방식 자체에서 관성적으로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이 지나오고 있을

세월의 발자국을 세어봅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오지 않는 봄의 따뜻함을

그리워합니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이 속한 세월에

내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낍니다


오지 않을 세월 속에서

당신과 나는 함께 서있습니다


<자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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