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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Oct 02. 2016

구텐버즈│Things What May Happen...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생각의 파편들

구텐버즈 Guten Birds - 다를 나를 만나는 날 Across the Black Tunnel [Official Audio]



음악가 : 구텐버즈(Guten Birds)

음반명 : Things What May Happen On Your Planet

발매일 : 2016.9.27.

수록곡

1. 어디선가 어딘가에서

2. 가나다 별곡

3. 울렁이는 밤

4. 밤신호

5. Readiness (Sailing Out Prelude)

6. Sailing Out

7. 킬빌 혹은 우울한 달

8. 여기저기 상처 난

9. Rolling In The Air

10. 다를 나를 만나는 날 (Remastered)




*편의상 경어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불확실성에 관한 이야기다. 아니,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이별, 가난, 전쟁 같은 삶, 존재의 의미, 누구도 알려준 적 없는 길. 하루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침대에 뉘이는 순간, 스멀스멀 사지를 타고 기어올라 가슴을 옥죄는 것들. 무엇 때문에 이런 불확실한 느낌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지는 모른다. 월급날은 잘도 알고 빠져나가는 공과금, 얼굴에 서류 뭉치를 집어던진 직장 상사와의 회식 자리 따위의 구체적인 현실 탓은 아니다. 현실 너머 어딘가,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의 가치, 무가치에 대한 경계심. 그것들이 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때문에 끊임없이 이런 물음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구텐버즈의 첫 정규 음반은 구체적인 메시지를 건네지 않는다. 그들의 음악은 인과관계가 명확한 서사 혹은 메시지보다는 파편화된 이미지를 아무렇게 툭 던질 뿐이다. 'A는 B다'와 같이 확실하게 정리될 수 있는 명제가 아닌, 인간의 머릿 속에서 어지러이 떠다니는 생각의 조각들 말이다. 그렇기에 <Things What May Happen On Your Planet>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그저 느낄 뿐이다.


 공간감을 머금은 기타를 통해 서정성을 강조하려는 줄로 알았건만, 이내 묵직한 베이스 리프와 드럼이 첫 트랙 '어디선가 어딘가에서'를 이끌어 간다. 두 악기가 단단하게 다져놓은 지반 위에서 기타는 반복적이지만 중독성 있는 리프를 통해 몰입을 더한다. 5분 가까이 되는 곡이지만 보컬은 '아아아아'하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가 전부다. 본래는 가사가 있는 곡이었다곤 하지만 이런 식의 연주곡으로 간 것이 곡의 본질에 더욱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노랫말의 첫 음절이 가, 나, 다의 순서로 진행되는 '가나다 별곡'은 하드코어 펑크 계통의 음악에서 들어봤음 직한 드러밍이 3박자 리듬 위에서 펼쳐진다. 공격적인 패턴의 전반부가 3분 즈음에 마무리 되고 나면 잔잔한 정박 리듬의 후반부가 이어진다. 같은 곡이 맞나 싶을 정도로 대조적인 두 부분이 빚어내는 부조화가 제법 재미있다. 불안감, 공포 따위의 것들을 격하게 토해내고 잠시 진정이 된 덕분일까, '울렁이는 밤'은 앞선 두 트랙보다는 잔잔한 시작을 보인다. 그러나 결코 안식을 얻은 것은 아니다. 조금씩 변화하는 리듬을 타고 화자의 마음은 조금씩 일렁이며, 일렁임은 다시 울렁임으로 확대된다. 마치 숙취처럼.


 숙취에서 깬 것일까, 피로를 잠시 덜어낸 화자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반짝이는 별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생사의 신호'임과 동시에 별 볼일 없는 '먼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 볼일 없다는 것이 결코 무시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인지 모를 존재가 끊임없이 곡의 말미에서 생사의 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신호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는 항해를 시작한다('Sailing Out'). 미래에 대한 확신, 희망 같은 건 없다. 그곳이 내가 가야할 길이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길을 잃는다 해도 그저 나아가는 것이다. 인트로 격인 'Readiness (Sailing Out Prelude)'부터 이어지는 이 곡이야말로 삶을 둘러싼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혹은 취할 수 밖에 없는) 자세를 보여주는 곡이다.


 항해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때로는 '가난의 함정'에 빠지고 '더러운 전쟁'이 발목을 잡는다('킬빌 혹은 우울한 달'). 하염없이 걸음을 옮기는 몸은 '여기저기 상처 난' 상태다. 하지만 허공에서 헤엄치는 듯한 항해를 구텐버즈는 멈추지 않는다(Rolling In The Air). 비록 누군가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알려준 적이 없다해도. 이유는 단순하다. 어디인지, 언제 다다르게 될 지 몰라도 '다를 나를 만나는 날'에 대한 확신이 있으므로. 어둠은 과정에 불과하다. 길고 긴 불확실성의 터널이 언젠가는 끝나리란 확신을 그들은 갖고 있다.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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