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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Oct 22. 2016

강이채│Radical Paradise

한 사람의 음악가가 보여주는 자기 치유의 여정

Echae Kang(강이채) "성냥" [유지원의 뮤직쇼]


음악가 : 강이채(Echae Kang)

음반명 : Radical Paradise

발매일 : 2016.10.12.

수록곡

1. The Violin

2. Radical Paradise

3. L.A.

4. 성냥

5. Terminal (Feat. 김필)

6. Something Cold

7. Gyp (Feat. 고상지 & Mathias Minquet)

8. Now I See (Feat. 고상지 & Mathias Minquet)

9. When Memories Are The Poison

10. Will The Moon

11. Maybe I Did

12. Everything Will Be Alright

13. 안녕 (My Sweet Lunatic)



* 편의상 경어체는 생략합니다.


 처음 궁금증을 자아낸 것은 제목이었다. '급진주의(자)의 천국'. 어떠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줄로 알았건만, 음반을 수 차례 반복해서 들어도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대여섯 번쯤 되었을 때 깨달았다. <Radical Paradise>란 지극히 개인적인, 사색적인 음반이라는 것을. 당연히 그 사색의 중심에는 강이채 본인이 있다.


 1번 트랙 'The Violin'에서부터 직접적으로 그 힌트(라고 하기엔 너무 노골적이다)를 던지고 있다. 강이채가 그의 바이올린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는 이 곡은 노래 대신 내레이션이 이끌어 간다. 바이올린의 놀라운 소리에 운명적으로 끌린 그는 단 한순간도 바이올린을 품에서 떨어뜨린 적이 없다. "내가 그(바이올린)와의 시간을 즐기는 만큼, 그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러나 이 운명적인 조우가 마냥 고무적이지 만은 않다. 음산한 분위기의 곡 진행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어지는 동명의 타이틀곡 'Radical Paradise'의 시작과 함께 필자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인트로 격인 'The Violin'은 그렇다 치더라도, 타이틀곡을 주도해나가는 것이 트립합(Trip-Hop)을 연상시키는 전자음일 줄은 미처 상상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 음산함 혹은 신비로움 못지않게 노랫말 또한 주목할만하다.


조금씩 흩어져 간 동화 위로
끝없는 도시들을 채워 넣고
필 곳 없던 그대의 하얀 꽃이
그대를 불러주길 바라나요
- 'Radical Paradise' 中 -


 바이올린과의 운명적인 조우 이후, 화자의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동화로 채워 넣은 세계는 점차 흩어지고 그 위를 차가운 도시가 채워간다. 화자에게 말을 건넬 하얀 꽃은 뿌리내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얀 집'이란 차가운 도시의 한 부분일 터. 모두 '갖고 있던 얼굴을 잃어가는' 급진주의자의 천국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는 화자 본인만이 알 것이다.


 'L.A.'에서 화자는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구름 넘어 안아줄 너'의 존재 덕분이다. 소리의 중첩을 통해 몽환감을 더한 보컬이 화자의 황홀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그러나 황홀함이 만개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어느 봄도 꽃을 피우지 못했으며' '외로움' 만이 내 안을 채운다('성냥'). 결국 '한 겨울날에도 내 어깰 감싸려던 너'를 화자는 '서랍 속 깊은 추억'으로 남기려 한다. 김필이 마이크를 함께 잡은 'Terminal'은 이러한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작별의 말을 건넬 타이밍을 살피는 입술, 현실을 직시하는 눈동자, 터미널에서 오고 가는 무언의 신호는 화자의 마음을 더욱 깊은 곳으로 잡아끈다.


 마음이 깊은 곳으로 침전하는 순간, 화자와 함께 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바이올린이다. 'Something Cold', 'Gyp', 'Now I See'까지 강이채의 바이올린은 그 어느 때보다 주도적으로 음악을 이끌어 간다. 'The Violin'이나 'Radical Paradise'의 음산함과는 다르다. 불안함, 공포 따위의 것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대신 바이올린과 혼연일체가 된 강이채가 그곳에 있다. 블루스, 클래식 등 다양한 세계를 넘나드는 격렬한 연주 속에서도 존재감을 뿜어내면서 바이올린은 비로소 강이채(혹은 화자)의 완전한 페르소나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그러므로 'When Memories Are The Poison'의 불길함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기억 한 구석에 영원히 자리 잡는다고 해도, 이미 화자는 치유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Will The Moon', 'Maybe I Did', 'Everything Will Be Alright'로 이어지는 여정이 바로 그것이다. 불안감, 트라우마 따위를 완전히 딛고 일어선 것은 아니다. 그가 발견한 치유의 길이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언제 길의 끝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모든 게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을 뿐이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이면 또 어떤가. 달콤했던 한 때의 광기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안녕 (My Sweet Lunatic)')만으로 강이채의 의지는 증명된 셈이니.


4.0/5.0


Echae Kang(강이채) "Something Cold" [유지원의 뮤직쇼]


Echae Kang(강이채) "Will The Moon" [유지원의 뮤직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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