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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Dec 20. 2016

김윤아│타인의 고통

음악은 당신의 고통을 위로하지 않는다

김윤아│타인의 고통│㈜인터파크, 2016.

음악가 : 김윤아

음반명 : 타인의 고통

발매일 : 2016.12.08.

수록곡

1. _

2. 강

3. 유리

4. 키리에

5. 독

6. 은지

7. 꿈

8. 타인의 고통

9. 안녕

10. 다 지나간다


 "대중적인 록 음악 추천해주세요."라는 요청의 단골손님 중 하나였던 자우림은 그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일부 극단적 마니아에게 비난도 종종 받긴 했지만, 글쎄. 나에게 있어 자우림은, 김윤아는 '기인'이었다. 절망 속에서 나를 받아줄 그곳으로 떠나기 위한 날개를 갈구하던 이("샤이닝")가 어느 순간 긍정의 미소를 띠고 "하하하쏭"을 부르는 그 모습에서 괴리가 느껴졌던 탓이다. 하지만 야누스 같은 모습을 지닌 김윤아를 두고 오히려 나는 그가 진정으로 '나의 노래'를 부르는 음악가임을 직감했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기도 하는 우리 인생사에서 김윤아의 음악은 그의 내면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그야말로 '김윤아 그 자신'이었다.


 때문에 김윤아의 네 번째 솔로 음반은 특별하다. 지금까지의 음악과 다르게 그가 노래하고 있는 것은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다. 고통 그 자체가 아닌 고통을 느끼는 주체의 문제로 관심을 옮겨간 것이다. 음반의 아트워크가 유독 눈에 들어온 것은 그런 까닭이다. 흐릿한 초점 너머로 보이는 무언가는 고통을 노래하는 우리의 모습일까, 아니면 우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고통받는 타인'일까.


"타인의 고통을 노래하다"

 희미한 노이즈를 지나 처음으로 마주하는 트랙은 "강"이다. 피아노에 의지해 속삭이듯 시작하는 노래는 현악기의 등장과 함께 점차 격해진다. 그러나 화자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외로움과 그리움이 비집고 들어온 마음은 마치 강처럼 넘쳐 흐른다. 저 멀리 흘러가는 강을 따라간 곳에 '네'가 있을까. 너의 고통을 느낄 수 있을까. 고통받는 너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화자의 바람이 드러난다.


[MV] 유리 - 김윤아

 화자라고 해서 세상 모든 고통을 감내할 만큼 강인한 인물은 아니다. 흐르는 강의 하류에 있을 '너'만큼이나 나 또한 '유리처럼 나약한' 존재다. 하지만 그렇기에 화자는 '위로'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때로는 서로를 할퀴어 상처 내는 '우리'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삶의 고통으로 인해 뒤틀린 마음을 가진 이들끼리 뒤엉키며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을 화자는 "유리"를 통해 그리고 있다.


 배우 유아인이 "키리에"를 가리켜 김윤아의 이전 곡에 비해 직접적인 고통을 노래한 것 같다고 물은 바 있었는데, 김윤아는 이에 대해 '타인의 고통이라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그의 답변은 "키리에"의 노랫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를 남긴다.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과연 온전한 화자의 언어일까? 어쩌면 그것은 "나도 너만큼 고통받고 있어. 난 네 고통을 헤아릴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일지 모른다. 때문에 화자는 보다 보편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완전한 이해란 없다"
[MV] 꿈 - 김윤아

 하지만 공감을 위한 화자의 노력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누구의 체온으로도 단단한 너의 외로움'은 녹일 수 없었고("독"), '은지'로 표상되는 '너'를 안타까워하며 운명의 비극성에 대해 생각한다("은지"). 공감의 실패로 좌절한 화자에게 '너'가 "꿈"에서 처음으로 말을 건넨다. 꿈을 갖고 다시 한번 일어서라 말하는 이들의 위로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오히려 그것이 '벗어둘 수 없는 굴레'가 된다는 사실을 그는 털어놓는다. 또한 자신이 품고자 했던 건 그저 '작고 따뜻한 꿈'이었음을 밝히는 '너'의 태도는 그전까지 우리가 건네고자 했던 위로가 위선에 불과했음을 보여준다.


"음악은 당신의 고통을 위로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에서 시선은 고통의 주체 '너'에서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함부로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고 꿈이라는 이름으로 그것을 포장하려 했던 과거에 대한 사과를 건넨다. 하지만 사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의 위로를 거절한 모양이다.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생각은 결국 착각에 불과했던 것이다("안녕"). "다 지나간다"라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며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지막 장을 향한다'.


 <타인의 고통>은 우리가 주고받는 위로의 메시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당신의 그 위로는 진정한 공감에서 우러러 나온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내 마음대로 타인의 고통을 재단하고 있지는 않았나. 이 또한 위로받는 이에게는 강요이며 폭력이 아닐까? 깨지기 쉬운 유리와 같은 타인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음악가 김윤아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에게 음악이란 '위로'가 아닌 '공감'을 향한 발걸음이다.


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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