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엑스엑스│I See You
미니멀리즘이 선사하는 달콤한 음악적 경험
The XX│I See You│Young Turks, 2017.음악가 : The xx(디 엑스엑스)
음반명 : I See You
발매일 : 2017.01.13.
수록곡
1. Dangerous
2. Say Something Loving
3. Lips
4. A Violent Noise
5. Performance
6. Replica
7. Brave For You
8. On Hold
9. I Dare You
10. Test Me
악기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에서는 여백이 중요하다'라는 식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니, 조금이라도 화려한 연주를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면 어쩌자는 거야? 이런 식의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여백(혹은 쉼표)은 청자에게 여유를 제공한다. 쏟아지는 음표의 융단폭격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정을 추스르고 되짚어 볼 시간을 말이다. 모두가 소리를 채우기 급급한 와중에 디 엑스엑스(The xx)가 내세운 미니멀리즘은 사실 기본 중의 기본에 충실한 전략이었다. 모두가 잊고 있었던 그 기본.
3번째 정규 음반 <I See You>에서도 미니멀리즘이라는 기조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백에만 집중하던 이들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볍게 스쳐가던 캔버스 위에 좀 더 선명한 색을 입히기 시작한 것이다. 첫 트랙 "Dangerous"를 재생하자마자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시작을 알리는 것은 다름 아닌 자극적인 음색의 브라스다. 오래지 않아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에 의해 탄생한 미니멀한 리듬 라인이 흘러나오지만 어딘가 낯설다. 깊은 곳으로 침잠하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단출하지만 풍성하다'라는 모순적인 명제가 이 순간만큼은 참이 된다.
풍성해진 것은 소리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보컬, 올리버 심(Oliver Sim)과 로미 크로프트(Romy Madley Croft)가 빚어내는 선율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다. 말 그대로 팝적인 선율을 쉼 없이 뽐내는 "Dangerous", 다정한 말 한마디를 바라는 목소리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Say Something Loving" 등은 올리버와 로미의 목소리, 제이미가 낳은 선율이 유기적으로 작동한 결과다. 미니멀리즘에 입각해 소리를 병렬적으로 나열할 뿐이었던 이전 음반과의 결정적 차이점이다. 즉, '세 청년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던 이들이 이제는 온전한 '하나의 팀'으로 기능하게 된 것. (실제로 피치포크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와 관련된 멤버들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팀으로 거듭난 디 엑스엑스는 그저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드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40분 남짓의 시간 동안 이들은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간다. "Lips"에서 "Performace"까지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이들의 세계는 다시금 반전을 꾀한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은 "Replica", 로미가 고인이 된 부모님을 기리며 만든 "Brave For You" 등은 재도약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선공개 싱글이었던 "On Hold"은 그 결정체와도 같다. 업템포의 비트 위로 경쾌하게 샘플링된 홀 앤 오츠(Hall & Oates)의 "I Can't Go For That (No Can Do)"가 따뜻한 정경(情景)을 연출한다. 미숙했던 지난날을 회고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뜻깊은 순간이다.
여러모로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철저하게 필요에 의해 구축된 <I See You>의 세계는 음의 여백 사이로 청자의 깊은 이입을 유도한다. 세 명이 하나의 팀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진솔한 서사에 어느 누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 하물며 보다 강한 자극을 좇는 것이 유행인 시대다. 기술의 발전이 낳은 소리의 범람에 지친 청자에게 이보다 달콤한 경험은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