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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Feb 15. 2017

시드│FIN

'자아의 죽음'이 빚어낸 새로운 음악가의 탄생

Syd│FIN│Columbia, 2017.

음악가 : Syd(시드)

음반명 : FIN

발매일 : 2017.02.03.

수록곡

1. Shake Em Off

2. Know

3. No Complaints

4. Nothin To Somethin

5. All About Me

6. Smile More

7. Got Her Own

8. Drown In It

9. Body

10. Dollar Bills

11. Over (Feat. 6LACK)

12. Insecurities


 묘한 제목이다. 음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음반의 제목과 아트워크를 언급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번엔 경우가 좀 다르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발걸음을 내딛기 직전 시드 더 키드(Syd tha Kyd)의 커리어가 인터넷(The Internet)의 <Ego Death>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자아의 죽음'이라는 비장한 이름이 노랫말을 통해 드러난 보컬리스트 시드의 정체성(시드는 레즈비언이다)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역설적 장치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2016년 3월, 시드가 자신과 인터넷이 속해 있던 음악 집단 오드 퓨처(Odd Future)로부터 독립을 선언 이후 이야기가 달라졌다. '자아의 죽음'이란 하나의 예언이었던 것이다. 팀의 일원이라는 과거의 자아에게 작별을 고하고, 음악가 시드라는 독립된 자아로 싹틀 것을 알리는 예언 말이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난 2017년, 그는 첫 번째 정규 음반 <FIN>을 통해 예언을 현실로 만든다.


Syd - All About Me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리듬 라인 위로 들려오는 허밍이 "Shake Em Off"의 시작을 알린다. 자신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목소리를 향해 'It's just the life that I choose(내가 선택한 삶일 뿐이야)'라며 일침을 가하는 모습이 음악가의 자의식을 드러낸다. 이렇게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는 랩과 가창의 중간지점에서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No Complaints", 촘촘한 리듬 너머 신시사이저가 공간감을 자아내는 "Nothin To Somethin" 등을 거치면서 점차 확신을 얻는다. 하지만 시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트랩의 영향이 짙게 묻어나는 "All About Me"에서는 자신의 위대함을 신에 견주면서도 가족으로 상징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강조한다. 정체성이라는 탑을 공고히 하면서도 외연을 확장해가는 순간이다.


 시드는 한 사람의 자아 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외연의 확장을 꾀한다. 낮은 목소리로 단호한 어조에 힘을 싣는가 했더니 "Know"에서는 청자를 도발하기 시작한다. 숨이 끊길 듯 말 듯 여린 목소리가 비밀스러운 사랑을 나누자며 상대방을 유혹한다. 공간감은 덜고 선명함을 더한 목소리가 전달하는 선율은 달콤하다 못해 치명적이다. 스스로가 항상 팝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결코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말 그대로 '팝적'이다. 이 외에도 떠나가는 연인을 붙잡고 싶은 마음을 나른한 선율에 녹여낸 "Smile More", '네 몸에 너 자신을 맡'기라는 메시지와 함께 보컬의 지분을 극대화시킨 "Body" 또한 주목할 만한 트랙이다.


 음반의 마지막 트랙, "Insecurities"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의 시작으로 되돌아간다. '자아의 죽음' 말이다. 불안감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음악 속 화자는 완성된 인격이 아닌, 어딘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에게 내재되어 있던 불안감으로 인해 당신의 곁을 떠날 수 없었노라고 이야기한다. 팀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있던, 아직은 겁 많은 자아의 자기 고백이다. 그런데 곡이 중반부를 넘어서자 반전이 일어난다. 날카로운 전자 기타 소리가 변화를 알린다. 'But something's gotta change(하지만 뭔가 변하기 시작했어)'. 자신을 둘러싼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즉 자아의 죽음을 깨달은 것이다.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FIN>은 시드라는 인간이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정체성을 획득해가는 순간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반의 결말부가 남기는 미완(未完)의 여운은 청자로 하여금 찝찝함보다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과거의 자아를 벗어던지고 새로 태어난 음악가가 내딛을 발걸음에 대한 기대 말이다. 알은 이제 막 깨졌을 뿐이다.


4.0/5.0


Syd - Body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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