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푸른 바닷속을 닮은 음악
음악가 : 소마(SOMA)
음반명 : Somablu
발매일 : 2017.02.21.
수록곡
1. Dive
2. LIE (Feat. Hanscur)
3. Midnight In Paris
4. Pale Blue
5. Midnight In Paris (Reggae Remix)
음악을 이야기하는 일의 가치를 믿어 왔지만 그 신념이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느껴지는 음악과 글, 그 사이를 가로막은 커다란 벽의 존재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청각과 시각이라고 하는 서로 다른 자극의 간극을 메우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까닭은 불가능에 도전하는 우리에게도 가느다란 빛 한 줄기가 드리운 덕이다. 바로 음악을 색으로 옮기는 일이다. 감각의 전이라고도 불리는 놀라운 도구는 진동으로만 전달되었던 소리를 색으로, 때로는 형태로도 옮길 수 있게 돕는다. 당신이 싱어송라이터 소마(SOMA)의 음악에서 검푸른 바다로 침잠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면, 이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잔잔히 이는 물결 같은 신스 사운드 너머로 노이즈가 들려온다. 파도 소리, 아니 누군가의 호흡 소리 같기도 한 것이 사라지고 나면 소마의 목소리가 "Dive"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촘촘히 소리의 층을 쌓아 올리진 않았지만 허전함은 없다. 비트가 빚어내는 음의 여백 사이로 공간감을 가득 머금은 보컬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아의 죽음'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깊은 곳으로 침잠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다음 곡 "LIE (Feat. Hanscur)"에서는 이야기의 초점이 자아(나)에서 연인 관계(너와 나)로 옮겨간다. 하지만 보편적인 사랑 노래의 그것과는 다르다. '죽기 전의 연인과 헤어지는 과정'이라는 음악가의 소개가 무색할 정도로 두 사람의 언어는 차갑기만 하다. 오늘도 어김없이 거짓말을 뱉는 여성, 그리고 여기에 지쳐버린 남성은 무심하게 상대를 대한다. "Dive"에서 자아의 죽음을 맞이한 화자가 기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였던 것('I'm going down, feel like higher')은 거짓말만 늘어놓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혐오 탓이리라.
이어지는 "Midnight In Paris"는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흘러나오는 스윙 리듬이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매력적인 곡이다. 그러나 곡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주목하는 순간, 평가는 뒤바뀐다. 앞선 두 곡이 그려내고 있는 화자와의 비교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이다. "Dive"와 "LIE (Feat. Hanscur)"를 통해 소마는 인간관계에 있어 미숙했던 과거의 자아와 이를 향해 보내는 안녕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Midnight In Paris"의 화자는 다르다. 모두가 잠든 시간, 음악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의 화자는 앞서 제시된 '나'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소마라는 음악가 본인에 더 가까운 듯한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별개의 인물의 이야기라는 의미다. 리믹스 버전인 마지막 트랙을 제외하고 실질적인 마무리에 해당하는 "Pale Blue"가 묵직함을 더함으로써 개연성을 확보하려 하지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은 감출 수 없다. 단 4곡만으로 음악가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엔 퍼즐 조각의 수가 턱 없이 모자랐다.
미완이라는 인상이 남고 말았지만 <Somablu>가 남긴 의의 또한 있다. 눈여겨볼 만한 음악가의 등장을 알렸다는 점이다.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아트워크와 어울리는 소마 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는 성공했다. EP가 아닌 앨범 분량의 넓은 캔버스 위에서 그가 더 좋은 이야기를 갖고 돌아올 순간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