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과 함께 찾아온 진정한 이지은의 세계
음악가 : 아이유(IU)
음반명 : Palette
발매일 : 2017.04.21.
수록곡
1. 이 지금
2. 팔레트 (Feat. G-DRAGON)
3. 이런 엔딩
4. 사랑이 잘 (With 오혁)
5. 잼잼
6. Black Out
7. 마침표
8. 밤편지
9. 그렇게 사랑은
10. 이름에게
돌이켜보면 아이유는 항상 무언가가 되고 싶어 했다. "좋은 날"에서는 '오빠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 "너랑 나"에서는 시간을 뛰어넘어 "어른인 그대와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어른"이 되길 바랐다. 그런가 하면 "분홍신"에서는 '너'를 찾아 아예 흑백영화 속으로 들어가 버리지 않았던가. 상황은 그가 대중에게 뮤지션 아이유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꽃갈피>를 지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CHAT-SHIRE>에서 스물셋이 된 아이유는 끊임없이 '어느 쪽이게'란 물음을 던지지만 결론은 '사실은 나도 몰라'다. 인형 옷을 갈아입히듯 시작된 자아 찾기의 여정이 혼란만 남긴 채 끝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스물다섯의 아이유는, 아니, 이지은은 다르다. 재즈를 머금은 팝 트랙 "이 지금"에서부터 위화감은 찾아온다. 자아 찾기의 발걸음을 떼기 직전, 불안한 마음의 화자는 이제 없다. '나 실은 말이야 / 저기 아득한 미래로부터 날아왔어'라는 고백과 함께 말을 건네는 목소리는 오히려 여유롭기까지 하다. 곡의 마지막 노랫말인 '지금부터 시작될 더 놀라운 것'의 정체는 이어지는 "팔레트 (Feat. G-DRAGON)"에서 밝혀진다. 코린의 음악, 보라색, 파자마와 립스틱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늘어놓는 화자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명확하다. 스물셋까지 이어진 혼란의 종식을 알리는 순간이다. '되고 싶은 나' 따위는 찾을 필요가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야말로 지금껏 찾아 헤매던 모습임을 <Palette>의 화자는 깨달았다.
이어지는 트랙에서도 아이유의 팔레트를 지탱하는 건 이야기다. "이런 엔딩"에서 잔잔한 건반과 보컬의 풍부한 표현력 간 대비를 통해 그의 목소리를 음악의 중심으로 가져온 것은 이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권태를 느끼는 연인을 화자로 내세운 "사랑이 잘 (With 오혁)"은 그러한 의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툭툭 내뱉듯 독백을 하는 연인의 대화는 평행선을 달린다. 후반을 넘어서서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지만 결론은 '사랑이 잘 안 돼'다. 사랑을 찾아 시간을 뛰어넘던 그 때 그 시절의 아이유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다음 트랙 "잼잼"에서 변화는 더욱 과감해진다. 선우정아의 영향력이 짙게 배어있는 신스팝 넘버에서 화자는 무심한 목소리로 단어를 던진다. 건조하기 그지없는 '사랑, 사랑, 사랑'. 아이유라는 이름의 환상은 완전히 깨졌다.
껍질을 깨고 모습을 드러낸 진짜 아이유의 목소리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냄으로써 음반에 통일성을 부여한다. 다만 유감스러운 점은 각각의 수록곡이 형성하고 있는 정서가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인데, "마침표"에서 "이름에게"까지 이어지는 발라드 성향의 곡들이 특히 그러하다. 단출한 구성 위로 호흡 하나까지 허투루 쓰지 않는 "밤편지"가 빛을 발하곤 있으나 슬로 템포의 연속에 의해 그 진한 감성이 희석되고 말았다. 사적(私的)인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던 의도는 충분히 알겠으나 40분에 가까운 시간을 장르 문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 감성에만 의존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신곡을 발표할 때마다 차트를 석권하고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아이유지만 <Palette>가 음악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이뤄낸 음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온갖 색깔이 제각각 흩뿌려진 팔레트처럼, 감정의 편린은 조직되지 못한 채 부유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작의 존재는 고무적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환상 속으로 뛰어들었던 아이유가 이제는 자기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덧 데뷔 10년을 바라보는 그는 여전히 변화하고 있다. <Palette>가 미처 채우지 못한 빈자리를 무엇으로 채워나갈 것인가? 우리가 아이유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