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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근 Aug 10. 2015

토터스 : 정보생성자 (1)

TOTERS : Who making information

거꾸로의 시대(Opposite Age) 57년.    

 

 흐린 하늘 만큼이나 회색 빛인 도시인 뉴욕. 기댈 것 없이도, 외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표정의 사람들. 언제나처럼 한결같이 움직이는 사회. 언제부턴가 이 땅을 바라보고 있는 하늘도,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도 살아갈 목표를 잊어버린 채, 이 세상은 하염없이 가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시를 가로 질러 가는, 검은 광택이 눈에 띄는 밴이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꽤나 유명세를 치르는 연예인이 타고 있거나, 사회에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회사의 차였다. 그 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차고 있었는데, 그중 한 여자는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윤기가 있어 찰랑 거리는 머릿결과 달리, 그녀의 미간은 있는 힘껏 주름져 있었다. 손은 떨고 있었고, 눈엔 초점이 없었다. 


“아직 멀었나요?”


 떨리는 말투가 그녀의 상황을 짐작 캐했다. 너무나 작은 그녀의 말소리가 남에게 들리기는 했을까.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의 상태와 달리 의외로 밴 안의 분위기는 침착했다. 아니, 그녀를 무시하는 분위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들은 항상 말이 없었다. 그것이 의뢰자에 대한 예의였고, 일의 정확성에도 기여하는 행동이었으니까. 무엇보다도 그녀의 물음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원칙에 어긋났다. 받은 만큼만 정보를 제공한다는 그들의 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었다.


“내리시죠.”


 어느새 목적지인 월스터(Walster) 호텔에 다다른 밴. 검은 양복을 입은 그들은 그녀를 데리고 밴에서 내렸다. 그리고 목적지인 호텔로 들어갔다. 그녀를 부축하다시피 하면서...

 의뢰자인 여자를 데려가기 삼십 분 전, 그들은 먼저 이곳에 도착했었다. 사전 준비를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그들이 준비한 계획의 크기를 고려해볼 때, 30 분은 짧은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전혀 서두르지 않는 걸로 봐선, 한 두 번 해온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능숙했다.


“354호. 여기군.”


 앞서가던 사람이 354호 실에 다다르더니, 주머니에서 공구를 꺼냈다. 길고 얇은 그것은, 열쇠 구멍에 들어가기에 꼭 알맞았다. 얼마간의 작업 끝에 뭔가 걸리는 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일행은 즉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현재 시간 10시 23분. CB-4 카메라 6대 중 3대는 천장에 설치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샹들리에, 시계, 그리고 소파에 부착한다. 어서 빨리 시작하자. 10시 27분까지는 끝내야 한다.”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이가 지시를 내렸다. 곧, 각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환영합니다. 실제로 뵙는 건 처음이군요.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알랜 쿼터메인(Allan Quatermain)이라고 합니다.”


 알랜 쿼터메인(Allan Quatermain). 영국 동화책에 나오는 전설의 사냥꾼 이름을 자기 이름이랍시고 떡하니 내뱉는 그를 그녀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고개를 끄덕여 간신히 인사만할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쿼터메인은 손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를 부축이고 있는 남자들이 그녀를 소파에 앉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커튼이 젖혀지면서 가려져 있던 디스플레이들이 나타났다. 총 6개의 화면은 VIP룸의 한 쪽 벽면을 꽉 채울 정도로 커다란 크기였다. 그것이 보여주는 화면은 바로 옆방. 30분 전 설치된 카메라는 355호로 연결된 화면으로 354호의 상황을 송출하고 있었다.


"저기예요. 어서 가요."


"너무 취했군. 몸을 가누지 못하겠는걸."


 호텔 복도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아, 354호. 여기군. 빨리 열어야지."


 타이를 풀어헤친 중년의 남자는 상대적으로 젊어 보이는 여성의 허리를 잡고 354호의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이미 분위기 있는 조명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그리고 탁자에는 와인과 양주가 준비되어 있었다.


"현재 시간 11시 8분. 벌이 꽃을 물었습니다."


"알아. 지금 보고 있잖아. 조용히 해."


 6개의 화면에 2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좀 전에 복도에서 들리던 목소리의 당사자들이었다.


"더워. 빨리 하자고."


"뭘 그렇게 서둘러요? 시간도 많은 걸요."


 그들은 함께 침대위로 올라갔다. 그 장면이 옆방의 사람들에게도 보여졌다. 보다못한 쿼터메인이 분위기를 바꿔보고자 했다.


"이봐 터틀. 자네 미성년자 아냐? 어서 눈가려."


 쿼터메인은 민망하다는 듯이 손으로 눈을 가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나름대로는 자신의 옆에 있는 여자의 눈치를 본 것인데, 정작 그녀는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관심사는 오직 화면 속 사람들에 있었다. 그 중에서도 화면 안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하늘이 꺼질듯 한 표정을 하고서 말이다. 쿼터메인은 무슨 말을 해줘도 그녀의 마음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 보시겠습니까?"


 남편의 불륜. 그걸 목격하고 있는 아내되는 사람에게 무슨 위로의 말이 필요할까. 쿼터메인은 매번 이 순간이 제일 싫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사람에게 위로하지 못할망정 자신의 할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계산할건 해야 하는 것. 그것이 그의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것이 있기 싫은 그곳을 빠져나갈 구실을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청구서 여기 있습니다."


 쿼터메인이 그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제 울 힘도 없는 그녀에게 말이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분노만이 남아있을 터였다. 마음만 먹으면 옆방으로 가서 그곳을 뒤집어 놓을 수도 있었다. 그녀의 떨리는 손이 청구서에 사인을 했다. 그 청구서는 쿼터메인을 비롯한 사람들의 인건비, 장비설치비, 차량이용비 등등 지금까지의 경비에 대한 것이었다.


"영수증 필요하십니까?"


 웃으라고 한 멘트였지만, 역시나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도리어 농담으로 한 말에 오히려 대답을 하고 있었다. 쿼터메인은 잠시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손을 흔들어 일행을 소집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주십시오. 부인."


 그는 그녀의 손에 명함 한 장을 쥐어주었다. 받을 힘조차 없다는 것을 알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의 행동이었다. 그 명함에는 이렇게 씌여 있었다.     


Toters - 파워 Spring 팀장

알랜 쿼터메인 (Allan Quater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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