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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근 Sep 30. 2015

토터스 : 정보생성자 (2)

TOTERS : Who making information

스페인 - 산페르민 (San Fermín)


 하늘에도 닿을 듯한 함성.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고함은 도시 전체에 열리고 있는 축제의 규모를 짐작캐했다.

 스페인의 산페르민(San Fermín) 축제.   투우 소 수십 마리를 도시 한 가운데에 풀고, 그 앞에 빨간 스카프를 입은 사람들이 소떼를 피해 달아나는 축제였다. 전날 벌어진 토마토 축제의 후유증에서인지 건물 벽면이 토마토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걸 지금에서야 주는 센스는 뭐야."


 행사요원들이 늦게 가져다주는 바람에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있는 이 남자. 


"촌스럽긴 하지만, 이 지방 전통 폼이라니. 어쩔 수가 없군."


 그다지 짧지 않은 머리에 태양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사람. 한 눈에 봐도 여행을 많이 하고 다닌 듯 했다. 재빨리 옷을 입는 모습만을 봐도 그랬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뭐라는 거야. 난 에스파냐 어 할 줄 몰라."


"유의사항 알려드릴게요. 만약 죽을 것 같다 싶으면, 목에 두른 빨간 스카프를 집어 던지세요. 그러면 소들이 쫓아오지 않을 겁니다. 소들은 그 빨간 스카프에 열광하는 거니까요. 이해하셨죠?"


"이봐요! 난 에스파냐 어 할 줄 모른다고! 무슨 말을 지껄이는 거야!"


 그런데 그때. 


탕. 

하는 철이 부셔지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골목에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땅이 울리며 투우 소들이 나타났다. 좀 전에 난 둔탁한 소리는 이들을 가두고 있던 철제 울타리가 부셔지면서 나는 소리였던 것이었다.


"뭐야. 아직 시작하려면 30분 남았잖아! 왜 벌써 시작인데!!!"


 이렇게 말을 하긴 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엄청난 박력으로 달려오는 소들이 그의 발을 있는 힘껏 움직이게 했다. 옆에 있던 수십 명의 다른 참가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살기위해 있는 힘껏 달렸다.


"젠장. 아직 카메라 작동도 안 시켜놨다고."


 그의 사진기는 La Grande 대로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투우 축제를 취재하러 온 그는 웬만하면 자신의 모습이 포함된 사진을 찍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떼에 쫓기고 있는 지금, 그는 엄청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차분히 기다리지 못하고 찍는 촬영은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죽음을 담보로 하는 작업이었다.


‘La Grande 대로에 설치한 카메라는 총 5대. 타이머는 30분 후에 작동하니. 직접 켜야겠는데... 하는 수 없군. 손목에 있는 이 리모콘으로 그 중에 한 대만이라도 작동시켜야겠어.’


 남자는 달리기 시작했다. 사진작가로서 카메라에 찍힐 장면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소떼의 모습이 좋겠지만, 목숨이 걸린 달리기를 하는 이 상태에서, 그는 단지 소떼들이 찍혀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투두두두.

 집안에 있는 도시 사람들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충격을 감당하고 있었다. 소떼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는 싶었지만,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어서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구경이라도 할 셈으로 문을 열었다간, 문짝과 함께 소뿔에 찍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2층 집이 생존에 유리했다. 


"열어줘요. 제발 빨리 열어줘요."


 다급한 어떤 여성은 달려오는 소떼와의 달리기를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다가오는 소떼들의 엄청난 박력을 몸이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에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열어줄리 없었다. 


 쿠당탕. 끼이이익. 

 소뿔이 문에 긁히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오던 다급하게 들려오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문을 열어달라고 했던 그 여자는 이미 소떼에 찍혀 사람 몰골이 아닌 형상이 된 상태였다. 어제 열린 토마토 축제 중 남은 것인지 아니면, 여자의 혈흔인지 모를 시뻘건 자국이 문에 남아있었다. 끔찍한 모습이었다. 매년 참가자 500여명 중 평균 15명 정도가 죽어나가는 이 축제는 사망률이 무려 3%에 달했다. 극단의 스릴을 즐기는 자만이 도전한다는 명성에 걸맞은 통계치였다.


"스페인의 산 페르민 축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달라?"


 몇 일전, 그는 의뢰를 받았다. 토터스 - 자료 엘리펀트(Elephant) 팀에서 요청해온 의뢰였다. 엘리펀트 팀에서 나온 사람은 카메라 렌즈를 살펴보고 있는 이 남자에게 말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는 렌즈를 닦으면서 짐짓 관심이 없는 체 하고 있었지만, 양복입은 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축제 사진과 그 밖에 여러 가지겠죠?"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원을 해 줄거냐고."


"서계호 팀장님께서 요청하시는 만큼입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계호. 서계호였다. 토터스(Toters) 내에서의 이름은 레이슈터(Ray Shooter). 거의 모든 물질을 투과하는 엑스 레이(X-ray) 처럼 그의 카메라는 못 찍는 것이 없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디서 친절한 척이야. 그리고 내 본명 부르지 말랬지."


"죄송합니다."


"그런데 내가 달라는 만큼 준다고? 도대체 이 의뢰를 해온 사람이 얼마를 주기로 했길래 그래?"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요?"


"됐다. 난 다른 곳을 여행할 돈과 카메라만 있으면 돼. 일에 대한 보수는?"


 그는 다른 렌즈를 집어 들었다.


"루마니아 피의 축제 건의 4배입니다. 저희 팀장님이 약속하신 것이니 확실합니다."


"4배? 전 번의 4배? 의뢰자가 무슨 왕국 딸이라도 되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아?"


"구체적으로 말씀드려요?"


"그만. 이 이상 물어보는 것은 관두마. 굳이 알 필요 없잖아. 다음 주 화요일에 여기로 다시 찾아와. 그 날이 축제 당일이니까 저녁에 오도록 하고. 그때까지 자료 수집을 끝내놓지."


"그럼 다음 주에 뵙죠."


 검은 양복을 입은 자는 홀연히 방을 나갔다. 계호는 여전히 렌즈를 닦을 뿐이었다.


‘5배를 불렀어야해. 아니야.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5배도 모자라. 10배. 그래. 10배를 불렀어야해.’


 그때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터라 속도가 늦춰진 그에게 소 한 마리가 추격해 왔다.


"이게 어디서!!!"


 계호는 녀석의 뿔을 피해 각도를 틀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소떼들이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계산 하에 취한 행동이었지만, 그들은 의외로 날씬했다. 여전히 맹렬히 쫓아오고 있었다. 골목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면서.


 ‘다음 골목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La Grande 대로 다. 거의 다 왔군.’


 그의 눈에 표지판이 보였다. Avenue La Grande 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었다.  확실했다. 자신이 카메라를 설치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의 앞에 펼쳐진 광경이 그를 멈추게 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이미 소떼들이 지나간 후였기 때문이었다. 벽면에 나있는 선명한 대각선의 줄은 이미 소떼들이 긁고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계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 찍어봤자, 사진엔 황폐화된 거리만이 나타날 뿐이었다. 


‘후...어쩐다.’


 하지만, 그는 운이 좋았다. 생각할 시간도 잠시, 그를 뒤따라오던 소떼들도 La Grande 대로에 들어섰다. 계호는 그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렇지. 쟤네들을 찍으면 되겠군."


 그는 다시 달렸다. 카메라가 설치되어있는 도로 깊숙한 곳으로 말이다.


"로프."


 계호는 허리춤에 달려있는 로프를 꺼냈다. 끝에 세 갈래로 갈라진 갈고리가 있는 로프였다. 세 갈래로 갈라져 있어 어디에 던져도 잘 걸릴 것 같이 생겼다. 그리고는 시계에 달려있는 카메라 리모콘을 작동시킬 준비를 했다.

 1번 카메라는 신호등에 달려있었다. 리모콘 작동 거리가 20m정도 되었기에 횡단보도 정도에서 버튼을 누르면 될 것이었다. 횡단보도 앞에 도착한 계호는 리모콘을 작동시켰다. 번쩍하는 플래쉬와 함께 셔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대로 찍힌 것이었다. 

 2번 카메라는 대로변 가로등에 설치되어 있었다. 나머지 3,4,5 번 카메라도 각각 제 위치에 온전히 걸려있었다.


 찰칵. 

 마지막 5번 카메라도 제대로 작동했다. 이제 자신이 피하기만 하면 모든 일은 끝나는 것이었다. 계호는 근처 건물의 옥상으로 로프를 던졌다. 다행히도 한 번에 걸린 갈고리 로프 덕에 그는 여유있게 소떼들을 피할 수 있었다. 


 투두두두. 

 소떼들은 여전히 대로변을 지나가고 있었다. 심장을 울릴 정도의 충격이 건물 옥상에 누워있는 계호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는 그 진동으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역시 그는 찍지 못하는 것이 없는 레이슈터였다.


"내가 다시는 이 따위 일을 맡나봐라. 헉. 헉."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거친 말을 내뱉으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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