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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혜근 Sep 30. 2015

토터스 : 정보생성자 (5)

TOTERS : Who making information

아프리카 아비시니아 고원


“워터리그? 이 자식 거기 소속이었어?”


 타그니토 D. 암스트롱(Tagnito D. Armstrong)은 국제 수사 기관 (NIA)에서 지정한 2급 범죄자로서, 겉으로 알려진 바로는 워터리그(Water League) 네덜란드 소속이라는 것이 전부였다.

 레이슈터는 그에 대한 프로필을 보고 있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였지만, 워터리그라는 말에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터리그는 말 그대로 ‘물 연합’ 으로서 세계의 생수 생산 공장을 손아귀에 놓고, 물의 생산량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세계자본의 70%라는 엄청난 점유율을 자랑하는 회사연합이었다. 

 레이슈터는 자신의 고향이었던 나라가 이 연합에 의해 파산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재 그 나라는 복구 불가능의 폐허 상태였다. 과거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였던 그 나라는 워터리그의 터무니없는 물값책정으로 인해 점점 적자를 기록했고, 급기야 파산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은행의 구제도 소용없었다. 다른 나라의 원조도 소용없었다. 모두 워터리그의 압박에 굴복하고 말았다. 결국, 그 나라 국민들은 나라의 고위 공직자들을 비난했고, 공직자들은 비난의 화살을 마주보고 있는 국가에 돌렸다. 마침내 남과 북은 서로 으르렁 대기 시작했고, 전쟁이 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이 종결된지 30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전쟁을 주도했던 1세대들은 역사로 남게 되었고, 지금은 2세대가 주도하는 시대였다. 점점 잊혀져가고 있었다.


“국장. 무슨 냄새라도 맡은 거야?”


 그는 현재 아프리카에 있었다. 게다가, 옆에는 토터스 파워 국장인, 에드워드 J. 화이트베어(Edward J. Whitebear) 와 함께 있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 있는 토터스 자료 국 본사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헬기를 타고 말이다.


“내가 무슨 동물인가.”


“무슨 생각에 자료 국 본사를 가냐고. 자료 국장과는 안 좋은 사이 아니었어?”


“일에 사적인 감정은 개입시키지 말라는 것이 누구 말이었지?”


“지금 자료국에 가는 거잖아. 여긴 예외지.”


 레이슈터는 끝끝내 말을 돌리는 에드워드 국장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상호견제기관이자 적대기관인 토터스 자료 국에 달랑 혼자서 간다는 소식에,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얼른 따라 나선 것이었다. 그래서 처형인과 제대로 회포를 풀지도 못한 채 이 곳 아프리카로 날아오지 않았는가.


‘국장. 당신 나이도 생각해야지. 80이 넘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직접 출장을 다니냐고.’


 그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걸 간신히 넘겼다. 우선 국장이 하는 일을 믿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곤 하지만, 에드워드 국장이 그의 눈초리를 모를 리 없었다. 국장은 그를 안심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걱정마라. 위험한 일은 아냐. 단순히 거래만을 하러 가는 거다.”


“거래? 누구하고?”


“당연히 자료 국장이지.”


 그때마침 헬기가 자료 국 본사에 도착했다. 


“오랜만이군. 토터스 자료 국.”


 토터스 자료 국 본사. 

 아프리카 아비시니아 고원에 위치한 덕분에 산을 넘어가지 않고서는 본사의 모습을 보기는 불가능 했다. 지도에서도 산으로만 표시된 곳. 그렇기 때문에 헬기나 비행기로만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적도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만년설 덕에, 주변 부족들 사이에서는 신의 땅으로 일컫어 지는 곳이었다.


“자연과 어울려 있는 인공물. 그 극치가 이곳에 있지.”


 화이트베어는 과거에 자주 왔던 곳이었지만, 레이슈터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한 번 왔던 것을 빼면 기억에 있는 곳이 아니었다.


“3번 게이트. 3번 게이트에 착륙바람.”


 건물 상층부의 마이크에서 헬기를 향한 방송이 나왔다. 토터스(Toters)의 두 수뇌부가 움직이는 비밀접촉이었기에, 같은 채널의 방송을 이용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때문에 헬기와 건물간의 통신은 불가능했다. 혹시라도 워터리그(Water League)가 통신을 도청한다면 자료 국 본사의 위치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헬기는 5개의 커다란 건물 중 3번 게이트라고 쓰여져 있는 곳에 착륙했다. 강한 바람에 잠시 뒤뚱거렸던 헬기는 조종사의 능숙한 실력으로 안전하게 착륙했다. 착륙장엔 벌써 그들을 마중 나온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먼 길하셨습니다. 파워 국장님.”


인사를 건내는 이는 자료 국의 부 국장인 레스텔로 네프코(Nestello Nepco).


“블랙은 있나?”


 블랙이란 자료 국장 필립 블랙타이거를 줄여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토터스(Toters)에서 몇 되지 않았다. 그의 이름조차 비밀이었기에 호칭을 부른다는 것은 보통 사람은 꿈꾸지도 못할 일이었다.


“예. 안에 기다리십니다.”


“계호. 따라오게. 안으로 들어가지.”


 만년설로 뒤덮인 주변 경치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던 레이슈터는 그제서야 에드워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을 접은 채로.

 건물 안은 의외로 따뜻했다.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실내온도가 높았다. 활화산인 이곳의 온천 덕이라고 네프코가 설명해 주었다. 활화산 이라는 말에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 활화산이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건물 안의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에 걸린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었다.

 건물은 총 5개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각의 건물은 높이가 달랐는데, 그 중 자료 국장이 위치한 제 1 건물은 층수가 240층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 게다가 이곳엔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책 보유량을 자랑하는 도서관이 있었다. 


 론(Loan) 도서관.


 그것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세계 최대의 책 도둑 스티븐 블룸버그가 세운 이 도서관은 토터스 자료 국이 인수할 때까진 일반 사람들에게도 공개되고 있었으나, 토터스 자료 국에서 인수한 뒤로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은 토터스를 원망했지만, 토터스 자료 국은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주장하고 있는 말이 있었다. 워터리그로 인해 도서관이 없어질 위기에 놓여, 그대로 방관할 수는 없어 인수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수한 후에 토터스 자료 국은 책 보유에 힘을 쓰면서 엄청난 양의 희귀한 책을 보유하게 되었고, 세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도서관이 되었다.


“론(Loan) 도서관이라. 이름이 참 아이러니 하군요. 빌렸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우리는 지식을 빌릴 뿐이죠. 진리(眞理)로부터요. 그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 가는 우리 인간에 달려 있죠.”


“진리로부터?”


“북 마스터 스티븐 블룸버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진리로부터 지식을 훔쳤다.’ 라고요.”


 희대의 책 도둑으로 유명한 스티븐 블룸버그를 북 마스터라는 생소한 직위까지 붙여가며 치켜세우는 부 국장의 모습이 계호에겐 웃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적대기관의 사람에게 설명해주고 있었으니, 자신감에 들떠있는 것도 이해가는 일이긴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일행은 자료국장이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부 국장이 비밀번호를 입력하자 방문이 열렸다. 어두운 복도와는 분위기부터 다른 방 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엔 반기는 한 사람이 있었다.


“화이트. 어서오세요.”


 턱살이 인상깊은 토터스 자료 국장 필립 블랙타이거. 여자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녀의 엄청난 풍채에 느껴지는 힘은 블랙이란 이름마저 무색하게 만들었다.


“블랙. 오랜만이야.”


그들은 서로 악수를 했다. 토터스 역사 사상 3번째로 만나는 순간이었다.


“우선 앉으시죠.”


하지만, 앉아서 천천히 이야기 하기엔 그들은 너무 바빴다.


“뭐 마실거라도?”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아는가?”


“시칠리아산 커피가 있는데요.”


 필립은 커피를 흔들어 보이며 에드워드에게 말했다. 


“타그니토가 다시 나타났네.”


“그 이야기. 커피 마시고 하실래요? 하고 마실래요?”


 그사이 레이슈터는 부 국장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온천이 뿜어내는 증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며, 그것을 이용하는 난방 장치와 그것을 이용해 전기를 생성하는 시설 등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활화산이 만든 온천 하나 만으로 이 거대한 5개의 건물이 유지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수증기. 물의 다른 형태죠. 물은 기화상태가 되면서 수천 배까지 부피가 증가하게 되요.”


“물이라.”


“몸의 6 ~ 7할은 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구성요소의 대부분이 '물'이고, 단백질의 재질로 되어 있는 껍데기를 덮어쓰고 걸어 다니는 존재라는 말이 됩니다. 인간은 수많은 형태의 수분을 평생에 걸쳐 섭취하며 각 기관에 소용시키죠.”


 그가 잠시 숨을 골랐다.


“인간이 보유해야 하는 수분의 적정량을 100으로 놓았을 때, 약 2%가 부족하면 갈증이라는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경험을 당하게 됩니다. 5% 가량이 모자라면 인간은 혼수상태의 초입에 들어선다고 하죠. 물은 인간에게 이 정도의 관계입니다. 관계라기보다는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로병사 어디 한 구석 물이 빠지는 순간은 없어요. 가장 위급할 때 찾는 것이 물이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축복하기 위해 치켜드는 것도 물의 변형된 것이고, 다양한 음식이 체내로 갈 때 훌륭한 파트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도 물인 것입니다.”


 이때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뭔가를 노려보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이런 신성한 물을 가지고 세계를 쥔, 물로 인해 이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인간 탐욕의 끝을 보여주는 우리의 적인, 워터리그(Water League). 전 그들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린 그들을 이 세계에서 몰아낼 의무가 있습니다. 이제 방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 토터스 - 자료는 워터리그에 대항해나갈 것입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레이 슈터 씨.”


 토터스의 적. 나아가 세계에 불필요한 존재인 워터리그(Water League). 회의장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자료국장 필립이나 파워국장 에드워드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기에 워터리그의 작은 움직임이라도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타그니토가 스페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네. 그 사실은 당연히 알겠지? 블랙.”


“당연하죠.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원래 우리 쪽으로 오게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럼 대책을 세웠겠군? 이번엔 어떻게 할텐가.”


“무슨 대책이요?”


“그를 잡을 방법 말이야.”


“아아. 그거야 당연히...”


블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하나 물어볼게 있어요.”


에드워드는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꼭 워터리그(Water League)를 붕괴시켜야 할까요?”


“무슨 뜻이야.”


 애석하게도 에드워드는 이미 80이 넘어가는 고령이었다. 눈치가 좀 느릴 법도 했다.


“워터리그는 세계 경제를 손에 쥐고 있어요. 그들을 무너뜨리기엔 너무 힘들죠. 세계는 변했어요. 돈이 전부인 세상이 됐죠.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어요. 정의 때문에 살고, 정의 때문에 죽는 시대는 갔어요. 우리도 변할 수밖에 없어요. 시대에 뒤쳐질 수는 없잖아요.”


 에드워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슬슬 뒷걸음질 쳤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 설마.”


“설마라뇨. 새로운 시대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한 법이죠. 변화는 당연한 거예요.”


 에드워드 화이트베어는 문을 향해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더 그곳에 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문은 잠겨있었다. 도망갈 방법은 없었다. 그곳은 자료 국장이 일하는 곳인 만큼 보안이 철저한 곳이었다. 나갈 수 있는 곳은 들어왔던 문뿐이었다.


‘이 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 계호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제 친구를 소개하죠.”


 에드워드는 필립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가 가리키는 한쪽 어두운 곳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화이트베어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군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에드워드의 놀란 두 눈이 그 사람이 틀림없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의 눈에 그 사람의 모습이 비쳐졌다.


“타그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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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각 계호는 부 국장과 4 건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부국장의 말에 열심히 귀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을 때, 갑자기 레이슈터의 시계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에드워드 파워 국장이 준 시계였다.


‘이 시계를 주지. 만약 내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시계에 표시될 걸세. 그러면 앞뒤 쳐다보지 말고 도망쳐. 내 안위는 걱정 마. 난 누구한테 지는 사람이 아니니까.’


‘정말 위험한 일이 아닌 거야?’


‘간단한 거래라니까. 자꾸 한말 또 하게 그럴래?’


‘알았어. 알았다고. 그러니까 진정하세요.’


 그는 계속 시계를 쳐다봤다. 빨간 불이 끊이지 않고 깜박이고 있었다. 틀림없이 에드워드 국장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네프코 부국장님. 지금 국장님은 어디 계시죠? 급하게 일이 생겼는데요.”


“급한 일이라뇨?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순간 네프코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보였다. 사진사인 계호가 이 장면을 놓쳤을 리 없었다. 그는 미소의 의미에 대해 순간적으로 생각해봤다.


‘웃었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어.’


“그런 걱정 마시고. 천천히 즐기다 가세요. 조금 있으면 끝날 겁니다.”


“끝나다니 무엇이 말이죠?”


“당신들 목숨이.”


 말이 끝나자마자 네프코는 허리에서 권총을 꺼냈다. 레이슈터를 공격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미 레이슈터가 손등에 숨겨놓은 총을 꺼내 그의 배를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움직이지마. 부국장. 당신을 인질로 잡아야겠어.”


 레이슈터는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토터스(Toters)가 분열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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